한희정 4년만의 새 앨범 [두 개의 나]
한희정은 친절했다. ‘우리 처음 만난 날’의 달콤한 사랑을 노래하며, 어쿠스틱 기타를 기저로 서늘한 목소리는 늘 한결같았다. 그러나 앨범을 들여다보면 그것만이 지향하는 사운드의 전부는 아니다. [너의 다큐멘트]는 온갖 악기들이 뒤엉켜 변박과 변조가 난무했고, [날마다 타인]은 마치 공포 영화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 같았으며, [Slow Dance]는 단조롭고 반복되는 소리의 향연이었다.
2001년 밴드로 데뷔한 한희정은 2008년 첫 솔로 앨범부터 모든 소리를 직접 디자인하기 시작한다. 드림팝 듀오 푸른 새벽에서도 앨범의 반을 담당했지만 드림팝이라는 장르 내에서 가능한 일이었다. 전곡을 작사, 작곡, 편곡, 연주, 프로듀싱하는 그녀에게 궁금한 화법과 작법이란 한 곳에 머물러 있지 않았고, 끊이지 않는 호기심으로 1, 2년마다 새 앨범을 발표하며 변화와 호기심을 토해냈다. 그에 비해 [두 개의 나]는 4년만의 새 앨범이지만, 여러 일들을 하고 지냈다. 2016년에는 기존 곡들을 기타와 보컬만으로 재편곡 하여 악보 앨범을 발매하고[NOTATE], 2017년에는 여러 작가들과 협업하는 전시와 공연을 기획했다[가시적 파동]. 2018년에는 추후 작업할 정규 3집 [가능한 일]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상암 문화비축기지에서 쇼케이스를 마쳤다. 또한 틈틈이 드라마와 영화 음악 작업을 병행했다.
그러나 그간의 보람찬 시간들을 뒤로한 채, 새 앨범 [두 개의 나]는 노래 제목부터 이상하다. 자아 분열이라도 했다는 말인가. ‘불안‘도 어떤 곡일지 의심스럽다. 그나마 ‘어느 겨울’은 이전에 발표한 ‘어느 가을’의 겨울 버전인가 싶지만 가사는 단 두 줄뿐이고, 한 줄은 내레이션이다. 대부분의 노랫말이 구체적 상황과 결과를 이야기로 드러내지 않고, 어떠한 찰나만을 제시한다. 기존의 어쿠스틱한 성향은 그대로이나 기타가 사라지고 바이올린과 첼로가 전면에 나섰다. 한희정의 현 편곡은 정격에서 두어 걸음 벗어나 듣는 재미가 있다. ‘불안’, ‘두 개의 나’, '어느 겨울'은 보컬이 나오기까지 30초 이상 지속되는 전주에서 바이올린과 첼로, 피아노가 멜로디를 주고받는다. 그녀는 더 이상 친절하지 않기로 한 모양이다. 싱어송라이터 김사월과 함께 부른 ‘비유’는 에로스 너머의 ‘좀처럼 존재하기 힘든 표상’을 노래하고, 저음이 매력적인 싱어송라이터 이아립과 함께 부른 ‘걱정’은 걱정이 되기도 하고 걱정이 되지 않기도 하는 관계를 노래한다. ‘두 개의 나’는 ‘작업을 해야 하는 나‘와 ’작업을 하지 않는 나‘가 꿈속에서 충돌한 이야기를 위트 있게 풀어낸다. ‘불안’은 불안했던 상태를 비로소 인지하고 인정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어느 겨울’은 낮게 속삭이는 목소리와 빠른 비트로 반복되는 드럼, 멋대로 불고 있는 듯한 피콜로가 바이올린과 첼로를 보조하며 따뜻했던 어느 겨울을 그린다.
늘 변화했던 한희정에게는 이전의 자신이 가장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그리하여 어젯밤 꿈처럼 생생하지만 한껏 낯설게 하고, 하나의 장르로 규정되지 않기를 택한다. 어둠과 불안을 거쳐 두 개의 나를 만나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것은 앞으로도 깊이 나아갈 중요한 힘일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