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율(書律)' 2nd [그랑투르: 바람과 길과 눈]
'서율'의 정규 2집 앨범 [그랑투르: 바람과 길과 눈]의 음악적 모티프는 문학이다. 일상의 불안과 욕망, 사랑 등을 깊이 있는 성찰로 다룬 시와 소설을 어쿠스틱한 감성으로 표현한다. 이번 앨범의 주제는 '삶과 여행'이다. 타이틀 "바람과 길과 눈"은 삶과 여행의 공통점을 노래한다. 여행을 통해 만나는 낯선 풍경과 인연 등을 풍부한 시적, 음악적 언어로 풀어낸다.
'서율'이 여행을 노래하며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바로 자존, 즉 삶에 대한 긍정이다. 이를 위해 서율은 시인의 눈을 빌린다. 먼저 이문재 시인의 동명의 시에 곡을 붙인 "자유롭지만 고독하게"는 극단이 만연한 세계에서 어떻게 중용과 자존을 지켜 나가야 하는가를 노래한다. "봄길(정호승 시)"은 길이라는 삶의 메타포를 통해 인생을 긍정하는 우리의 자세를 담고 있다. 낯선 여정 혹은 외로운 일상에서 우리는 '사랑'을 기대하기도 한다. "꽃바람"(김용택 시)을 비롯해, "겨울 끝에서", "록산", "우리 1년", "사랑이란" 등의 수록곡은 연인에 대한 감정 뿐 아니라 일상에서 아름다움과 긍정을 발견하는 순간의 사랑을 노래한다. 연주곡 "시인의 왈츠"는 김재진 시인의 산문집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에서 모티프를 얻은 곡으로, 삶에 대한 사색과 통찰, 그 아름다운 시간에 대한 찬가다. 실내악 분위기의 이 곡은 앨범 편곡에 참여한 지휘자 박재형의 따뜻한 해석이 돋보인다.
한예종 출신으로 국내에서 활발한 지휘, 편곡 활동을 벌이는 박재형 감독은 이번 앨범에 클래시컬한 깊이를 더했다. 앨범 전체에 흐르는 웅장함과 유려한 느낌은 그의 작업을 통해 완성됐다. 기존 서율의 음악이 어쿠스틱을 바탕으로 한 잔잔함과 섬세함이 특징이었다면, 그의 참여로 서율의 음악은 한층 더 무게감을 가졌다. 2015년 3월 25일 서초동 흰물결아트센터 화이트홀에서 쇼케이스를 겸한 '다시, 봄'콘서트를 올린다. 이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후원하고 하이트진로가 협찬한 대중음악지원사업공연으로 조금 더 대중적이고 깊이 있는 무대를 펼친다.
수록곡 소개(Track Comments)
1. 바람과 길과 눈
타이틀곡. 여행(삶)에서 마주치는 낯설고도 다양한 풍경과 인연, 그리고 이를 통한 단상을 시적 언어로 노래한다. 여기서 서율이 말하는 여행(삶)은 짧은 관광이 아닌 때론 길을 잃거나 풍찬노숙과 짙은 향수에 시달리기도 진짜 여행이다. 그 여정은 자체로 하나의 작은 세계이다. 이를 음악으로 표현하기 위해 서율은 전조와 변박, 리듬변화 등을 다양하게 활용해 드라마틱한 구성을 만들었다. 어쿠스틱 기타와 피아노의 서정적이고 차분한 분위기로 시작. 중반부에는 단조로 바뀌며 아련하면서도 음울한 감성을 끌어낸다. 후반에는 초반의 선율을 그대로 가져오지만, 초반과 다르게 12/8박자를 4/4박자의 활기찬 리듬으로 변화를 주어 웅장한 마무리를 향해 달려간다. 그리고 마지막은 다시 12/8박자의 서정적인 분위기로 돌아가 끝맺는다. 한번이라도 자신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내던진 여행을 해 본 이라면, 음악을 통해 그때 겪었던 내면의 변화와 감정의 소용돌이를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모티프가 된 책은 이병률 시인의 산문집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2. 겨울 끝에서
경쟁과 불안을 부추기는 세상. 타인에 대한 조건 없는 사랑, 따뜻한 시선이 사라진 팍팍한 세상이라고 사람들은 말하지만, 서율은 이면의 밝은 모습을 노래한다. 고통에 빠진 사람의 눈물에 감응하고 그들의 손을 잡아주는 이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 존재한다고 말한다. 혹독한 겨울의 끝에서 봄을 믿고 기다리는 마음을 담아, 음악은 한없이 밝고 따뜻하다. 모티프가 된 책은 이철환 작가의 연작소설 '연탄길'이다.
3.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자유와 고독의 의미, 그것을 바라보며 사람이라면 지향해야 할 우리의 자세를 이야기한 이문재 시인의 '자유롭지만 고독하게'에 곡을 붙였다. 이 시를 이루는 시어는 강하고, 메시지는 분명하다. 곡 역시 시의 정서를 따랐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빠르고 격렬한 곡으로 파워풀한 연주와 노래가 돋보인다. 일반 대중가요에서는 듣기 힘든, 화려한 바이올린 솔로도 주목할 만한 부분.
4. 봄길
정호승 시인의 시 '봄길'에 곡을 붙여 스윙 재즈 분위기로 만든 곡. 시인이 전하는 희망적 메시지를 녹여냈다. 이 곡에는 트럼펫이 등장한다. 이는 봄을 여는 꽃봉오리가 활짝 깨어나는 모습을 악기의 형상으로 표현하여 작곡했다. 트럼펫과 콘트라베이스, 첼로와 드럼이 피아노와 함께 봄을 깨우고 화자의 인생을 찬양한다.
5. 사랑이란
사랑이란 무엇인지 묻는 노래. 다양한 상황, 감정을 예로 들며 사랑의 정의와 의미를 찾는다. 우리1년과 함께, 자극적이고 직설적인 가사의 사랑 노래에 싫증이 난 이들에게 권할 만하다. 모티프가 된 책은 린 판덴베르흐의 동화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걸 어떻게 알까요?'
6. Roxanne
에드몽 로스탕의 희곡 '시라노'의 여주인공 록산의 이야기를 담은 곡. 시라노는 평생 그녀의 곁을 맴돌던 남자다. 그가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 자신을 진정 사랑해준 남자가 시라노였음을 깨닫는 희곡의 결말을 노래로 재구성했다. 음악은 희곡에서 보여주는 록산의 감정선을 따라간다. 극적 구성과 화려한 감정 표현은 뮤지컬 넘버를 연상시킨다.
7. 꽃바람
어느 봄날 한 여인의 순간적인 몸짓을 포착한 김용택 시인의 아름다운 시와 서율 특유의 서정적인 멜로디가 조화를 이룬다. 잔잔하게 흘러가다 절정을 맞이해 고조되는 바이올린과 첼로의 조화는 마치 봄의 개화를 연상시킨다. 또 투명한 음색으로 저음과 고음을 오가는 보컬에서는 봄날의 공기, 꽃, 바람 등의 사이를 수줍게 오가는 감정의 일렁임이 느껴진다.
8. 우리1년
사귄지 1년이 되는 날을 기념하고 추억하는 여자의 설렘, 풋풋한 정서를 담았다. 후반부 생소하고 장난스러운 의성어의 반복을 통해 연인 사이에서만 공유할 수 있는 풋풋한 감정을 표현했다. 기존의 자극적인 사랑 노래에 지친 이들에게 쉼을 주고, 한창 사랑 중인 이들에게 달콤함을 더해 줄 수 있는 노래다.
9. 시인의 왈츠(Waltz from the poet)
실내악 분위기의 연주곡. 김재진 시인의 산문집 '사랑할 날이 얼마나 남았을까'에서 모티브를 얻은 곡으로, 힘들어하는 타인을 향해 손을 내미는 시인의 정서를 음악으로 표현했다. 시인은 첼로를 전공했는데 곡에서 흐르는 첼로는 시인이 독자에게 말을 거는 듯하다. 또한 바이올린과의 조화는 듣는 이들에게 토닥여주며 따뜻하게 흘러간다. 악기간의 조화와 현장감, 시인이 독자와 왈츠를 추듯 감성의 정밀감을 살리기 위해 원테이크 녹음을 한 점도 특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