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힙스터’, ‘플렉스’. ‘트렌드세터’, ‘인플루언서’, ‘YOLO’. ‘MZ제너레이션’... 이런 단어들을 만든 사람들은 스펠링을 알까? ‘트위터’, ‘인스타’, ‘유튜버’, ‘V-Log', 'ASMR', ‘해쉬태그’, ‘페이스북’... 머리가 복잡해 온다.
21세기를 지배한 이 경이로운 단어들은 우리를 형형색색 젤라틴 필터 조명이 비추는, 공장 벽돌로 된 뷔페로 데려와 다양하고 먹을 것 없는 ‘취향’이라는 음식을 나열해 놓고 선택을 강요한다.
테이블 한 가운데, 가장 잘 보이는 데 있는 ‘트렌드’라는 접시를 집어든 누군가는 입가에 침을 묻혀가며 떠들기 시작한다. 선택을 미루던 누군가는 이미 긴 줄이 선 ‘트렌드’ 접시 테이블로 향한다. 그 왼편 45도 각도 뒤에 서 있던 누군가는 ‘근데, 내가 왜 저런 얘길 듣고 있어야 하지?’하고 스스로에게 묻기도 한다. 그 뒤에 팔짱을 끼고 선 누군가는 고르지 않는다. ‘맛없는 걸 왜 먹어’하면서.
러브엑스테레오는 이들 중 ‘트렌드’라는 접시를 고르지 않은 이들에 주목했다. 그중 일부는 21세기 언어로 ‘제니얼 세대’라고 부른다. 물론 스스로 붙여본 적 없는 이름이다. 신조어 제니얼 세대(Xennials)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초반까지 태어난 세대를 칭하는 단어로 이들은 아날로그 시대의 흥망과 디지털 시대의 입문을 동시에 겪었다.
러브엑스테레오는 앨범 ‘Xennials’을 통해 21세기의 파도에 스스로 몸을 떠밀지 못한, 여전히 끓고 싶은 이들을 달콤하게 자극한다. 타오를 줄 만 아는 이들에게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하듯이.
노스탤지아 가득한 첫 트랙 ‘Sixteen'은 크리스마스 캐롤 ‘북치는 소년’ 만큼의 고요함과 외로움이, 겨울의 찬 어두움이 아닌 밝은 내일의 새벽빛을 향한다. 흘러갈 방향을 정하는 건 시간의 흐름이 아니라 ‘나’와 ‘나의 세대’라고 말하듯이. 요한 세바스찬 바흐의 ‘크리스마스 오라토리오’를 전자음과 밴드 셋으로 해석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러브엑스테레오 특유의 뚜렷한 질감과 무게를 가진 경쾌한 비트가 돋보이는 ‘Wondrous’의 경이로움은 또 어떠한가. 신디사이즈 소리의 입자조차 아날로그로 차려 내보이겠다는 이들의 고집스런 위트를 엿볼 수 있다.
황금빛 실크로 만든 로브가 몸에 닿을 때의 고급스럽고 부드러운 촉감을 녹여놓은 듯한 타이틀 곡 ‘Push the Play'는 애절함조차 세련된 화법으로 표현해내는 러브엑스테레오의 노련함이 충분히 담겼다. 곡 전반의 분위기를 결정짓고 있는 실크 텍스처 같은 애니의 보컬과 곡을 관통하며 곡을 전면에서 끌어나가는 토비의 베이스 플레이가 황금비율을 이뤘다. 적당히 속도감 있는 곡의 그루브는 마이클 잭슨의 첫 앨범 'Off the Wall'을 연상케 한다.
4번째 트랙 ‘Rebel Dress’는 ‘마돈나’, ‘뉴웨이브’, ‘1980년대’, ‘블랙 레더’ 같은 단어들이 머리를 스친다. ‘장 폴 고티에’ 같은 파격적인 디자이너 브랜드의 런웨이에서 들었다고 해도 위화감 없을 이 곡은 상대적으로 공격적인 무드가 인상적이다. 러브엑스테레오 특유의 단호하고, 거칠지 않은 세련된 목소리 공격성을 드러내는 화법이 두드러졌다. ‘크리스찬 루부탱’이나 ‘알렉산더 맥퀸’의 스터드 박힌 가죽 굿즈가 생각나는 이 곡은 다양화 됐지만 획일적인 2020년대의 패션과 문화를 꼬집는다.
문화적으로 부유했던 90년대의 향수가 담긴 ‘Kid From the Future’는 ‘스마트’해져버린 21세기의 편리함이 등가 교환한 것들은 어떤 것들인가 하는 의문을 던져준다. 이펙터 들어간 공격적 보컬과 퍼즈 걸린 신경질 적 베이스는 ‘제니얼 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한다.
6번 트랙 ‘Cell Theory’는 드라이브 감 충만한 펑크록 사운드에 공격적인 랩이 더해져 공격성의 정상 고지를 밟는다. ‘세포설’이라는 학설에 의한 과학적 접근도 흥미롭다. 이들이 시스템 안에서 0과 1로만 구분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는 않지만.
조지오웰은 ‘1984’를 통해 정보가 권력이 되는 시대, ‘빅브라더’의 출현과 그로 인해 감시당하는 사회를 예견했다. 마지막 트랙 ‘VS’의 어두움은 각종 소셜네트워크 낭인들의 시대에 피해와 가해 사이에 위치하게 된 암울함과 닿아있다.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사람들은 ‘거짓 행복’, ‘폭로전’, ‘내용 없는 사죄’와 같은 사회의 미덕들을 배우게 됐다.
한편, 이번 앨범은 ‘브리트니 스피어스’, ‘앨리샤 키스’, ‘로비 윌리엄스’, ‘블랙 아이드 피스’ 등 슈퍼스타들과 작업해온 영국 메트로폴리스 스튜디오 출신의 엔지니어 ‘아드리안 홀’의 검증이 있다. 러브엑스테레오의 지난 싱글 ‘We Love We Leave, Part 2’를 함께 작업했던 이들은 이 앨범을 통해 다시 한 번 뭉쳤다.
우정호 (위클리서울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