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imal Divers [Monsoon]
자연과 테크놀로지, 유희적 추상이 완성한 또 하나의 언어
음악은 말이나 글 못지않게 유창한 언어다. 구체적인 정보나 구상이 아닌 모호한 인상과 감정을 전달할 때 더할 나위 없이 그렇다. 지금, 이 순간에는 Animal Divers의 음악이 가장 적절한 예 중 하나일 것이다. 인디 씬에서 벌써 오랫동안 활약하며 잔뼈 굵은 애쉬와 ‘디저리두’ 및 ‘핸드팬’ 연주자로서 국내에 생소한 악기 보급에 앞장서는 조현의 만남은 서로 전혀 다른 두 세계가 맞물리는 접경 지역을 다졌고, 치열한 의사소통을 거쳐 그곳에 다채로운 매력의 새로운 추상을 피어나게 하며 음악 씬의 새로운 활력이 되고 있다.
지난해와 올해, 앞서 발매한 싱글들은 Animal Divers의 생소한 정체성과 확장성을 익히 짐작하게 하는 힌트였다. 많은 사람에게 그 이름부터 낯선 관악기 디저리두는 큼지막한 울림통에서 뿜어져 나오는 굵고 웅장한 저음과 지글거리는 소리의 신비로운 변화가 인상적인 호주 전통 악기다. Animal Divers 이전에 조현의 활동에서 짐작할 수 있듯 다른 악기와 음악 간 지극히 일시적인 접점이나 실험적인 무대가 가능했을 따름이다. 하지만 Animal Divers에서만큼은 달랐다. 이들이 처음 발표한 'Horizon Noir'와 뒤이은 ‘Liveaboard’의 인트로부터 그 존재감을 충분히 발휘하는 디저리두는 뒤이어 합류하는 애쉬의 기타 연주나 일렉트로닉 비트 위 자연스럽게 묻어나며, 이들의 조합이 일시적이고 제한적인 역할에 머물지 않을 것을 확신하게 했다. 디저리두가 빈틈에 가세하는 핸드팬 사운드는, 디저리두와 기계적인 밴드 사운드의 어둡고 강렬한 색채를 무마하고 영롱하고 환상적인 색감을 더해, 이디오테잎이나 글렌체크, 애쉬 자신이 속했던 루디스텔로 등 적지 않은 밴드가 각양각색으로 시도했던 기계적이고 록킹(rocking)한 일렉트로닉 음악과 또 다른 형태임을 과시했다.
긴 준비 기간을 거쳐 이번에 발표한 Animal Divers의 첫 정규앨범 [Monsoon]은 이들의 지난 싱글을 포함해 총 10곡을 담고 있다. 디저리두의 매력이 덥스텝 사운드와 뒤엉키는 'Elephant Shower'나 오리엔탈 풍 리프로 출발해 비장한 훅을 거쳐 트랜스로 나아가는 'Humanimals', 퓨전재즈의 그루브를 품은 'Jackfish Storm'와 하우스 뮤직 'Descent into blue water', 어쿠스틱 트랙 ‘Under the moonlight’ 등 수록곡의 매력은 실로 다양하다. 게다가 애쉬가 마련한 여러 장르 사운드 저변에서 부지런히 점멸하거나 시종일관 그림자를 드리우며 육중한 존재감을 발휘하는 디저리두의 존재감은 앨범에 일관성을 부여한다. 핸드팬의 사운드를 유독 강조해 수록곡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는 자연과 물 이미지에 대한 집요한 지향과 실제 그것의 몽환적 묘사를 정합적으로 완성한 ‘Air’, ‘West Lake’, ‘Openwater’에까지 이르면 다채로움 가운데 통일성을 갖는 Animal Divers의 개성은 더욱 뚜렷해진다.
애쉬와 조현의 음악이 조합된 방식을 생각할 때 Animal Divers의 신선한 추상은 사실 정합적일 수밖에 없다. 슈가도넛과 솔로 활동에서 익히 들려준 애쉬의 창쾌한 연주와 풍부한 감성, 달콤한 멜로디를 기억한다. 루디스텔로에서 그는 우주적 환상을 그려내는 상상력과 이를 선명하게 구현하는 세련된 프로듀싱 감각을 선보이기도 했다. 이처럼 대중의 언어로서 진화를 거듭해 우주까지 나아간 애쉬의 음악은, 난해하고 복잡한 미지의 영역이나 심연을 탐구하지 않는 이상 신대륙을 발견하기 어려운 시기에 봉착했을 것 같다. 그러나 이때 애쉬는 뜻밖의 만남을 통해 기존의 미학 노선을 크게 뒤틀지 않은 채 새로운 시대성과 장소성을 획득한다. 그가 다뤄온 디지털 사운드와 전혀 다른 디저리두와 핸드팬의 원시적 사운드를 자유로이 구사하는 조현의 가세는 Animal Divers의 만남이 단지 이들만의 개별적인 ‘사건’에 머물지 않게 했다.
서로의 영역을 인지하고 존중한 채 조금씩 서사를 변주하며 각 곡마다 드라마를 만들어내는 방식이나 매번 비슷한 추상을 색다르게 완성하는 입체적인 송라이팅, 낯선 악기의 소리와 호흡을 때로는 차분하게, 때로는 흥겹게 설득하는 퍼포먼스의 유창함까지. 마치 영화 [아바타]처럼 기계적인 테크닉과 원시적 주술의 자연이 한 화면에 어우러지는 환상적인 풍경은 그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이들이 얼마나 좋은 파트너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는 Animal Divers의 공연에서 단 한 줄의 가사도 필요 없이 무국적의 음악 속에 몸을 맡긴 채 흥겹게 춤을 추는 외국인들을 봐도 알 수 있다. Animal Divers가 몰고 온 계절풍 [Monsoon]에 계절과 지형이 분명 변화하고 있다.
/ Written by 대중음악평론가 정병욱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