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시드폴만의 음악으로 표현해 낸 자연의 ‘반복 없는 반복’들의 여여함과 다채로움
- 파도도, 빗방울도, 그리고 계절도 그 무엇 하나 똑같지 않은 자연의 수많은 반복에 대한 이야기
고즈넉한 멜로디와 투명한 가사로 듣는 이들에게 무한한 아름다움과 소담한 위로를 전하는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의 <Dancing with water>.
2020년 봄, 루시드폴은 매일 물 속을 걸으며 자연에 존재하는 수많은 ‘반복’들에 대해 생각했다.
똑같은 듯 똑같지 않은 ‘반복 없는 반복’들의 여여함과 다채로움.
그 순간은 커버 아트워크에도 담겨있다. 실제 루시드폴이 물 속을 걸으며 촬영한 사진으로 가득 채워진 커버 아트워크와 푸른 빛이 퍼져나간 듯한 마블 아트는, 보는 이로 하여금 일렁이는 물결 속을 직접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처럼 루시드폴은, 자유로운 템포들의 루프로 이루어진 ‘Dancing with water I ‘를 포함하여,
총 4곡으로 구성된 싱글 [Dancing With Water]에 자연의 수많은 반복을 담아냈다.
1. Dancing with water I
이 곡은 1978년에 태어난 로즈 (Rhodes Mark I) 피아노 하나로 만들어졌습니다.
올 봄, 거의 매일 물 속을 걸으며 운동을 했습니다. 수영장을 빙빙 돌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자연에 존재하는 수많은 ‘반복’은 왜 단조롭지 않을까. 똑같은 듯 똑같지 않은 이 ‘반복 없는 반복’들은 어째서 여여하고 다채로울까. 메트로놈에 기대지 않고 녹음을 했기 때문에 곡 속의 수많은 루프(loop)들은 모두 템포가 다릅니다. 정해진 템포가 없으니, 템포가 어긋날 일도 없었습니다. 멜로디 루프는 ‘카피-앤-페이스트’가 아닌, ‘Blooper’라는 페달과 낡은 조믹 (Joemeek) 프리앰프를 거쳐 녹음되었습니다. 단선율의 루프, Blooper가 랜덤하게 조합한 루프, 여러 이펙터로 소리의 폭을 넓히거나 변형한 루프가 뒤섞여 쌓이면서 곡은 어딘가로 향해 갑니다. 시작과 끝이 맞닿은 이 곡은, 그 자체로 또 하나의 긴, 8분 30초 짜리 루프가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합니다.
2. Dancing with Water II
내가 만들어내지 않은 음률은 내 것일까. 내 마음과 몸에서 비롯되지 않은 음악은 내 것이 아닐까. 우연히 건드린 소리는 나의 것일까, 아닐까. 이 곡은 브라이언 이노(Brian Eno)의 앱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시작하는 것’ (triggering) 밖에는 없습니다. 어떤 음가가 나올 지, 어떤 패턴으로 진행될지 저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전원을 끄기 전까지 소리는 멈추지 않으리라는 것만 알 뿐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triggered), 지극히 단순한 음률을 몇몇 층위로 담아두고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 단선율의 로즈 소리를 녹음하고, 신시사이저 패드를 입혔습니다. 패드는 모듈러 신시사이저의 필터링과 모듈레이션을 거쳤는데 손이 가는대로 디지털-아날로그-디지털-아날로그 도메인을 여러 번 넘나들다보니 소리가 계속 변해갔습니다. 여러 레이어로 소리를 겹치다보면 재미있는 순간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짚지 않은 음가가 들리는 (듯한) 경우도 있고, 겹쳐진 소리들이 전혀 다른 질감으로 변하기도 합니다.
솔직히, 몇 번에 걸쳐 어떤 작업을 어떻게 했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다만, 미시적으로 바라보면 변하지 않는 듯 해도 어느새 큰 변화로 이끌리는, 거대하게 흐르는 그 ‘무언가’가 자꾸만 떠오른 것 같습니다. 아마도 계절, 조수, 세상의 역사, 아물어 가는 상처, 혹은 나이 들어 가는 나의 얼굴 같은, 그런 것들이겠지요.
3. Moment in Love
신시사이저와 진귤 나무(Citrus sunki hort. ex Tanaka), 그리고 저까지- 셋의 즉흥 연주가 합쳐진 곡입니다. ‘Fundamental' 이라는 소프트웨어의 소리를 여러 가지 세팅의 확률 알고리즘에 따라 녹음했습니다. 그리고 진귤 나무의 전기 신호를 받아 미디 노트로 기록했습니다. 나무는 여타 다른 랜덤 시그널 제네레이터와 다르다는 걸 알았습니다. 주변의 여러가지 자극에 매우 민감하고 상호적으로 반응했기 때문입니다. 이틀에 걸친 연주 패턴도 서로 완전히 달랐습니다. 신호를 내고 싶지 않을 때엔 몇 십초 넘게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수다스럽게 소리를 낸다든지, 기계에선 기대할 수 없는 패턴으로 연주를 했습니다. 이렇게 녹음해 둔 미디 노트를 몇 가지 가상 악기 음색으로 구현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녹음된 음악을 들으며 여러 레이어의 소리를 즉흥적으로 덧입혀 녹음을 마무리 했습니다.
4. Fledglings
저의 과수원은 온갖 기계 소리로 시끄럽습니다. 도시 사람들은 과수원이라 하면 고요하고 평화로운 풍경만 상상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만해도 그랬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이 곳도 개발의 광풍 앞에서 무력해져, 어떤 사람들은 휴일도 없이 땅을 파고 돌을 깨고 나무를 베고 집을 지어 올립니다.
그래도 여전히 많은 생물들이 저의 과수원에 찾아옵니다. 꿩도 오고 동박새도 오고 뱀도 오고 두견이와 뻐꾸기도 옵니다. 인간의 굉음을 뚫고 멧새와 방울새도 노래를 합니다. 반딧불이도 찾아옵니다. 모두 저의 과수원을 은신처로 삼은 듯,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으며 삶을 이어갑니다.
이 곡은 과수원에서 녹음한 포크레인 소리로 시작됩니다. 무력한 저는, 이런 굉음들을 녹음해서 음악으로 만들어내는 작업을 해나갈 생각입니다.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자 치유의 방법인 것 같습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