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노이의 2집 정규 앨범 [ILLUMINATION]
신노이 4인의 음악가에 부쳐: 새로운 소리의 사각형
한국 전통음악의 맥락에서 볼 때 신노이는 민요와 거문고를 주축으로 하여, 베이스와 전자 사운드가 만난 창작국악 그룹 계열에 속한다. 한편, 점점 장르의 다양화가 진행되고 있는 한국음악씬의 기준으로 보면 독특한 음향과 음악을 연출하고 있는 미래 지향형 그룹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들의 음악과 음향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사실 신노이가 위치하는 음악적 좌표는 묘한 지점이기 때문에 정해진 답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들을 어느 좌표에, 어떤 음악으로 정의해야 할까 하는 코드나 지점이 없는 것이다. 그만큼 신노이는 새 음악을 만들고, 밀고, 나아가며 새로운 음향의 지대를 간척한다. 새로운 소리의 건물로 지은 신(新)도시인 셈이다.
새롭게 제시하는 청각적 원근법
이러한 신노이의 음악을 듣기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도 기존의 청각적 원근법을 폐기해야 한다. 잠깐 원근법에 대해 말하자면, 원근법이란 3차원의 물체를 2차원적 평면에 묘사하는 회화적 기법을 뜻한다. 2차원 평면에 3차원의 입체성을 드러내기 위해 화가들은 평면성 위에서 구현할 입체성을 고민했고, 이로 인해 묘사된 풍경과 물체는 평면성을 거부하고 입체성을 획득하게 된다. 이를 위해 원근법은 회화를 바라보는 이에게 ‘중심’과 ‘주변’을 파악하게 한다.
음악을 들어보면 신노이의 ‘중심’이 성악과 인성(人聲)을 연출하는 김보라에게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더불어 거문고-베이스-전자음악은 프런트보컬(김보라)을 보조하는 기악으로만 국한하여 생각할 수 있겠다. 사실 이러한 구도는 창작국악을 일삼은 앙상블들이 오랜 시간 동안 고수해온 형식이다. 1980년대부터 전통음악을 이용·응용한 그룹들은 성악가를 앞세운 이 형식으로 대중과 호흡해왔다. 그 이유는 민요나 판소리 등에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가사’와 ‘내용’이 있기 때문이다. 흔히 ‘대중음악’이라 부르는 음악이 ‘가요’와 같은 의미로 통용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해될 것이다. 따라서 가사를 전달하는 성악가(가수)가 중심을 잡고, 기악은 그의 주변을 꾸미고 메우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상황하에 그들의 음악을 감상하는 관객은 청각의 원근법을 성악가에 맞추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지만 신노이의 음악에는 이러한 중심과 주변부의 구도가 해체되며, 목소리-거문고-베이스-전자음악이 묘한 균형감을 이룬다. 김보라의 목소리도 가사를 전달하는 데에 국한되지 않고, 악기 소리처럼 추상적인 소리로 연출되며 ‘가사 없는 악기’들과 편한 대화를 나눈다. 한마디로 목소리의 악기-되기라고 해야 할까.
음악적 자유를 위해 전환·순환·변환·치환하는 소리들
이러한 신노이의 음악적 매력을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환’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환’은 여러 뜻을 담지한 한자어다. 고리를 뜻하는 환(環), 바꾸고 교체되는 환(換), 돌아올 환(還), 둘러쌀 환(圜) 등이다. 이러한 ‘환’으로 신노이의 음악을 해석하면, 이들은 서로를 통해 자신의 소리를 바꾸고 교체하고(換), 하나의 소리가 다른 소리를 둘러싸는가 하면(圜), 음향의 묘한 고리로 기원과 뿌리가 다른 음악들이 연결시키고(環), 각자가 지닌 음악적 기원으로 다시 돌아오기도 한다(還). 한마디로 교환하고, 전환하고, 순환하고, 변환하고, 치환하는 음악이 신노이 음악의 매력이다. 따라서 어떤 소리 하나를 바라보고 중심이라 생각하게 하는 원근법적 듣기는 이러한 전환-순환-변환-치환의 순간과 함께 무효화된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이들의 그룹명이 왜 ‘신노이’인지 짚고 넘어가 보자. 신노이는 신아위, 신놀이, 신방곡, 심방곡(心方曲) 등과 함께 시나위를 일컫는 말이다. 시나위가 어떤 유래를 지녔는지 학설적 기원은 다양하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시나위는 예부터 자유의 음악이었고, 자유로운 음악이었다. 여러 악기와 성악의 소리가 모여 있지만, 정해진 위계나 체계가 무의미해지는 음악. 신노이는 이러한 시나위적 정신과 의지를 부여잡고 나아가는 그룹으로, 더 많은 자유와 움직임을 담기 위해 끊임없는 환술(幻術)을 실천하고 있다(환술은 예부터 연희자가 신체, 재빠른 손놀림, 특수도구, 과학적 원리 등을 활용하여, 불가사의한 광경을 보여주는 기예를 뜻한다).
신(新)시나위, 소리들의 자유로운 환술
신노이는 이렇게 자유로운 음악을 향해 진화 중이다. 2019년에 나온 1집 앨범 [The New Path]에 비해, 2022년에 발매된 2집 [ILLUMINATION] 에서 이들이 추구하는 자유로운 음향과 연출력은 더욱 배가된 듯하다. 1집 음반의 경우 김보라(보컬), 하임(전자 사운드), 이원술(더블베이스)이 단단한 삼각형을 만들고, 그 도형 안에 전통음악을 위치시키는 ‘고정’의 환술을 보여주었다면, 멤버 교체와 영입의 과정을 거쳐 새롭게 만든 이번 2집 음반(2022)은 이원술(더블베이스), 김보라(보컬), 이정석(거문고), 고담(전자 사운드)이 딱딱하고 단단한 사각형을 만들기보다 둥그런 환, 즉 원환(圓環)에 새겨진 길을 통해 소리들의 ‘자유’로운 환술을 보여준다.
수록된 8곡의 음악이 각각 지닌 개별적 완성도도 훨씬 높아졌다. 여기서의 완성도란 음악의 좋고 나쁨을 뜻한다기보다는, 하나의 곡 안에서 음악가 4인이 보여주는 색채의 다양성이 놓아졌다는 뜻이다. 따라서 어떤 곡을 들어도, 한 곡의 음악을 통해 듣는 이는 여러 음악/음향적 색채를 경험하는 청각의 오디세이를 경험하게 된다. 전통음악적 ‘선’으로 시작한 음악이, 적당한 지점에서 전자사운드가 소리의 ‘면’을 물들이고, 더블베이스가 묵직한 ‘점’을 찍으며, 이들의 음악은 점-선-면을 응용한 자유로운 그림을 그려나간다. 따라서 이들의 음악은 여러 소리가 공존하는 ‘겹’의 음악이고, 이러한 겹 사이로 난 틈새를 통해 다가올 음악, 즉 ‘21세기적 시나위’를 가늠하고 바라보게 한다.
글 송현민(음악평론가)
[Track List]
ILLUMINATION
01. 동방의 노래 Song of the East
일정한 패턴의 전자 사운드 위에 한국 전통 성악인 범패의 발성을 차용하여 한국 전통미와 동방의 신비스러움을 보여주는 곡이다.
02. 쾌 Kwae
신쾌동류 특유의 기법과 농현이 함께 어우러지는 곡으로, 강렬한 메인 선율이 품은 에너지는 곡이 끝나고 나서도 우리를 맴돈다.
03. Illumination
멤버들간의 즉흥 연주를 집약하여 탄생한 곡이다.
04. Leisurely Landscape
보컬 김보라가 메인 선율을 작곡하여 만든 신노이의 발라드 곡이다
05. 가망 Gamang
서울굿에서 모티브를 얻어 구성된 곡으로, 본래 가망은 한국 무속에서 신령들의 근원(根源)을 관장하여 굿 문을 열고 신령과 인간이 만날 수 있게 하는 신령의 이름을 뜻한다.
06. 심방곡 Simbangkok
현행 가곡의 전신인 심방곡의 가사를 그대로 가져오되, 가사를 제외한 선율은 신노이의 음악에 맞게끔 새롭게 구성된 곡이다.
07. Firework
경쾌한 전자사운드를 시작으로 더블베이스와 거문고의 리드미컬한 선율, 그리고 ‘창부타령’의 변주가 더해지면서 신명을 이끌어내는 곡이다.
08. Stereology
베이스와 일렉트로닉 사운드로 이루어진 듀오곡으로, 리듬적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특정 모티브의 지속적 흐름위에 일렉트로닉 사운드와 베이스 솔로의 입체적 채색은 곡 전체를 휘감는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