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방랑자 김목경의 즐거운 블루스 기타 비행
블루스를 노예 흑인들의 비참과 비애로만 정의해서는 안 된다. 백인 지배사회의 잔인한 압박과 차별에 신음과 눈물로만 그치지 않고, 그들에겐 암흑 상태에서도 광명의 필연적 도래를 믿는 ‘낙관’이 살아 숨 쉰다. 그들은 어쩌면 슬픔을 종국에는 역설적으로 상냥하게 맞아들이면서 희망적 미래에 대한 신념을 축적해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항을 미래지향적이라고 하는 것 아닐까.
‘블루스 기타리스트’ 김목경은 음악가의 삶 측면에서 이러한 블루스가 갖는 본질적 명암을 잘 간파한 인물이다. ‘여의도 우먼’이 수록된 1998년 3집의 연주곡 ‘외로운 방랑자’에는 이미 제목에서 블루스 뮤지션의 고난이 고스란히 읽힌다. 영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3장의 앨범을 냈건만 블루스 수용의 강도가 워낙 약하고 생래적으로 라이프스타일로의 확립을 꿈꾸기 어려운 이 땅에서 대중적 갈채를 얻기는 만무였을 것이다.
“돈도 안 되지, 어떻게 해야 하나, 다시 돌아가야 하나, 영국에 가서 맨 날 블루스만 해야 하나. 그런 마음가짐이었다.” 국내 음악계에서 블루스로 지속적 음악활동의 기반을 쌓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에 한국의 블루스 뮤지션들에게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체념과 침묵은 암묵적 공유 개념이다. 2004년 5집의 노래 ‘거봐 기타 치지 말랬잖아’라는 곡목을 보라.
‘기타를 치면 얼마나 사랑을 해볼까? / 아무도 없는 / 모두가 도망가 버렸네... /기타를 치면 얼마나 돈을 벌을까? / 한 푼도 없는 / 나는 그냥 밥만 먹고 살았네... / 기타를 치면 얼마나 유명해질까? / 아무도 몰라 / 히트곡이 하나도 없다네’ 물론 다 도망갔을 리 없고, 밥만 먹고 살지 않았을 거고, 더더욱 히트곡이 하나도 없지는 않다.
본인도 이 곡을 두고 실제는 전혀 그렇지 않고 반대로 코미디로 희화화 즉 웃기려고 만들었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블루스 뮤지션과 실상을 인지하는 팬들은 그 해학과 자조(自嘲) 속에는 은밀한 진실이 엉켜있음을 안다. 그래도 웃기려고 한다는 것, 웃으려고 한다는 것, 그게 김목경이고 또 어쩌면 블루스의 진면목일 것이다. 비대칭과 불평등의 질서에 고통 받으면서도 결코 주눅 들지 않는 그 강인한 정체성!
열심히 연주하고 즐겁게 음악을 만들 때까지는 좋지만 산업의 영역이 어른거리면 그가 언젠가 말한 대로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만드는데 방송에 안 나오면 어떡하지’, ‘말짱 황 아니야.’ 이런 불안과 공포가 엄습한다.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김목경의 심정적 대응은 명쾌하다. “그러든 말든 상관없다!!”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실제로 그는 블루스 맨으로는 드물게 공인과 축복의 세례를 받기도 했다.
2003년에는 미국 멤피스의 유명한 음악축제(미국의 3대 음악 페스티벌 중 하나)인 빌 스트리트 뮤직 페스티벌(Beale Street Music Festival)에 블루스 뮤지션 자격으로 초청되어 3일 연속으로 라이브를 하는 영광을 누렸다. 이는 아시아 음악가로는 최초였다. 그는 이때를 생애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꼽았다. 왜 그런가 물었더니 대답은 역시나 시원했다. “여기선 개털인데 거기서는 인정해주니까. 퍼포먼스 비용도 줬다. 비행기, 호텔, 음식 다 대줬다. 자비를 하나도 쓰지 않았다.”
2013년에는 기타 제작사 펜더(Fender)가 커스텀 모델의 기타를 헌정하기도 했다. 이렇듯 몇 가지 사실만으로도 그가 국내 음악계에서 획득한 드높은 위상은 확실하다. 이제는 상식이 된 그와 관련 정보의 1순위는 김광석의 명곡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의 원작자가 바로 김목경이라는 사실이다. 김광석 해석이 등장하기 이전에 김목경 버전도 간간히 전파를 타고 흘러나와 라디오 청취자들 사이에선 이미 꽤 알려져 있었다. 김광석은 어느 날 이 곡을 라디오에서 듣고 애절한 가사와 멜로디에 끌려 꼭 이 노래를 꼭 녹음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스튜디오에서 노래를 부르다가 대뜸 김목경에게 전화를 걸어 녹음현장에 와달라고 부탁했다. 김목경이 가보니 그는 족발 안주에 소주를 먹고 있었다고 했다. “형. 이 노래는 술 먹고 해야겠어요. 너무 슬프니까. 그냥 부르기는 힘들 것 같아요.” 김광석만 그렇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래를 듣게 되면 자식들 잘 키우려고 온갖 고생을 마다한 부모의 자식사랑에, 그 죄송함에 복받쳐 고개를 떨굴 것이다.
특히 마지막 가사 ‘여보 안녕히 잘 가시게’ 대목에선 끝내 참았던 눈물을 터뜨리게 된다. 이 명작가요는 2020년 ‘미스터 트롯’ 임영웅의 결선 레퍼토리로 채택되어 무차별적 소구력이 재조명되기도 했다. 이번 LP에서 김목경의 라이브는 포크와 어우러진 블루스의 감정이입 미학이 김광석과는 또 다른 청취 감읍을 불러일으킨다. 이 곡은 1980년대 그가 영국에서 유학할 때 옆집 노부부가 손자를 배웅하고 돌아서는 허전한 뒷모습에서 우리와의 정서적 공통지점을 확인하고 쓴 곡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 현지에서 그곳 세션 맨들과 음반을 녹음했을 때 딴 곡들은 이해한 반면 이 곡만은 쉬 감을 잡지 못했다는 김목경의 증언은 이 곡이 한국적임을 말해주는 단서이기도 하다. 김목경의 기타연주는 이렇게 ‘토종’ 블루스의 가능성을 열어 제치는 동시에 ‘단순함’(simple)이 주는 공감창출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기타 이펙터의 사용을 자제하고(그는 하나밖에 안 쓴다) 가능한 한 앰프에서 나오는 그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생소리를 찾아가는 것이다. 그러한 단순함이 초래하는 정반대의 격한 꿈틀거림이 무엇인지를 이번 LP는 생생하게 증명한다.
‘어느 60대 노부부 이야기’와 대표작 ‘부르지마’를 비롯해 ‘거봐 기타 치지 말랬잖아’, 7분짜리 대곡 ‘약속 없는 외출’, ‘엄마생각’ 그리고 김목경 블루스의 결정판이라 할 ‘Play the blues’ 등 6곡은 KBS 전주에서 제작방영하고 전국으로도 방송된 프로그램 <Song큐멘터리, 백 투 더 뮤직>에서 라이브로 연주 노래한 것이며 ‘외로운 방랑자’는 2022년 12월 블루스 씨어터에서의 라이브, ‘남은 건 하나뿐’은 같은 해 10월 구름아래 소극장의 라이브 버전을 보너스로 구성했다.
순전한 연주곡(instrumental)인 ‘외로운 방랑자’와 ‘엄마생각’을 듣노라면 노랫말도 없는 극도의 단출함에도 작렬하는 블루스 기타가 가사를 대신하고 있음을, 기타가 말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 실로 블루스는 본인의 말처럼 기타가 반을 얘기하는 음악이다. 블루스의 기타 소리가 현장을 감싸 안으며 냉랭한 공기를 가르고, 열어놓은 창문에 비치는 밤하늘을 가르고, 거친 세상의 혼탁을 가르고, 지친 우리의 마음도 가른다. 어느덧 우리는 음악의 아름다움에 발을 들인다.
-끝- 임진모(음악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