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허달림 [LOVE]
청자에게 건네는 뭉근한 위로의 이야기
정규 2집이 발표되고 12년이 지났다. 그동안 강허달림에게는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 또 삶의 터전을 옮기며 낯선 곳에서의 이방인 생활을 시작했다. 싱어 송 라이터의 음악에 주변의 환경이 묻어나는 건 당연할 것이다. 새로운 가족에게서 영감을 얻은 곡(‘Love’, ‘그대는 내 사랑’)은 그대로 앨범의 타이틀이 됐고, 낯선 공간에서 둘러본 풍경과 하늘에 길들여지는 과정은 눈물을 닦아주며(‘어른아이’) 아무것도 포기하지 말고(‘바다라는 녀석’) 잠시 쉬었다가 다시 날아오르면 된다며(‘그러면 돼’) 따뜻하게 건네는 위로의 한 마디(‘괜찮아요 Blues’)로 가사에 박제됐다. 코로나-19가 모든 삶을 덮어버렸던 지난 2년 동안 우리가 제일 듣고 싶었던 따뜻한 위로로 가득한 이번 앨범은 어쩌면 강허달림이 스스로를 추스르던 주문과도 같은 이야기였을 지도 모르겠다.
피해갈 수 없었던 코로나-19를 위시한 개인적인 환경의 변화 속에서 음악인으로서의 활동 역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이전에도 그렇게 많지 않았던 방송 출연은 물론 크고 작은 공연들은 연기되고 취소됐다. 그러던 중 강허달림은 우연히 윤정원 작가의 작업실에서 그림 한 점을 보게 됐고, 인간과 펭귄이 꼭 껴안고 있는 작품은 가족을 돌보느라 아등바등 살아온 지난 시간을 돌이켜보게 만들며 오랫동안 내지 못한 앨범을 내야겠다는 용기를 심어줬다. [LOVE]는 그로부터 꼬박 2년 동안 준비한 결과다. 그리고 영감을 줬던 윤정원 작가의 작품은 그대로 앨범 아트워크에 담겨 강허달림이 그때 느꼈던 감정을 청자와 공유한다. 이번에는 그로 인해 생긴 용기가 만들어낸 음악과 함께.
TV에 나오는 음악이 전부가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클럽 공연에 서는 음악인만이 진정한 음악인인 건 아니다. 우후죽순처럼 생긴 그만그만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평범한 노래를 드라마처럼 치장하고 천정을 뚫을 것 같은 고음의 노트를 늘어놓으며 찰나의 반응에 신경을 곤 두 세워야 하는 상황에서 벗어나 있었던 건 강허달림에게 어쩌면 다행이지 않았을까. ‘달림’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강허달림은 무척 느리다. 순간적인 만족과 ‘빠름’이 지배하는 우리의 현실 때문인지 강허달림의 음악은 앞서 언급했던 ‘위로’라는 단어와 맞물리며 더 소중하게 다가온다.
여기에 더해 강허달림은 이번 앨범을 더욱 아날로그 감성으로 꾸렸다. 연주에 참여한 이들과의 교감을 위해 스튜디오 라이브를 고집했고, 인위적인 이펙트보다는 손으로 직접 연주하는 아날로그 악기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악기가 꽉 차진 않았지만 무언가 풍성하게 다가오며, 목소리의 날은 전혀 무뎌지지 않았는데 음색은 따뜻하다. 스윙감 넘치는 ‘어른아이’, 숭고한 ‘마음, 그 달’, 현진영과 호흡을 맞춘 ‘그대는 내 사랑’ 등 그녀를 수식하는 블루스는 물론, 가스펠이나 재즈에 이르기까지 수록 곡은 전체적으로 적당한 크기의 분위기 좋은 클럽, 혹은 조그만 극장식 쇼 무대에서 연주자의 숨결까지 공유하는 느낌이다.
어쨌거나 현재는 싱글의 시대고 플레이리스트의 시대다. 음악을 하는 입장에서 한 장의 정규 앨범에 담긴 한 두 곡 외에 사장되는 곡에 대한 아쉬움이나 제작에 필요한 금전적인 압박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점은 싱글과 그 싱글이 포함되는 플레이리스트가 주는 순기능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강허달림 역시 2집과 이번 앨범 사이에 몇 곡의 싱글을 발표하긴 했다. 하지만 이 싱글은 다시 이번 앨범에 담기며 전체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로 동화됐다. 11곡을 한 장의 음반에 꾹꾹 눌러 담으며 본령으로 돌아온 강허달림의 [LOVE]는 시대 흐름에 대한 역행이 아니라 한 장의 앨범이 한 곡의 싱글과 같으며 한 장의 앨범에 담긴 트랙리스트는 그대로 또 하나의 플레이리스트라고 할 수 있다.
위로를 받고 싶은 일이 많았기 때문인지 계속해서 손이 가게 되는 앨범을 들으며, 강허달림과 같이 나도 지금 행복해지려 한다.
글 송명하 (강허달림 술친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