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희가 부르는 사랑은 언제나 여름을 한껏 닮았다. 그녀에게 있어 싫은것 투성이었던 여름은 어느 순간 반짝이는 햇빛과 살아있음을 품은 순간의 아름다움으로 기억됐다. 여름의 향과 질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녀는 그 계절만이 품을 수 있는 사랑의 여러 면을 섬세히 파고든다. 이전 그녀의 음악들은 마치 짙은 밤을 적시는 습한 고백이자 아련하고 그리운 아쉬움이었다면 이번 노래들은 자다 깬 어느 여름의 새벽, 뜨거운 한낮의 사랑 후 후회와 부끄러움을 머금고 식혀진 대지 같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당신의 머리칼처럼 스치듯 사라진, 당신에겐 사소할지 모를 나를 향한 작은 마음과 찰나의 애정. 허공에 손을 내밀어도 움켜지지 않는 감정. 매년 여름 밤마다 나를 잠에서 깨우곤 위로받지 못한 체 다시 쓸쓸히 잠을 청하게 하는 무정함. 바스락거리는 이불 속에 혼자인 몸을 뉘고 온기 없는 적막감에 여름날의 습기같이 머금어진 눈물. 그렇게 식어버린 새벽녘 속에 두 눈을 꼭 감고 다시금 크게 삼켜보는 내 안에 홀로 남겨진 마음. 어느덧 환하고 뜨거운 아침이 오고, 사랑을 잃어버린 여름 날, 낯설게 우두커니 혼자 선 나는 이 여름이 어서 끝이 나길, 하지만 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모순된 마음을 지닌 체 잠을 깬다. 언젠가 소진될 영원하지 않는 마음이지만, 그 여름 날 오갔던 우리의 진심이 허투가 아니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내 안에만 아직까지 남아있는 혼자만의 진심을 어루만지고 되새긴다.
전진희의 3집 ‘아무도 모르게’는 그간 그녀가 이야기해 온 사랑의 파고와 이별의 잔상, 그리고 그 뒤에 이어지는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하고 살아간다는 생을 향한 조용하지만 간절한 열망이 담겨있다.
앨범은 전반적으로 사랑과 이별을 받아들이는 감정의 흐름을 찬찬히 집어가고 있는데 타이틀곡인 ‘떠날까’와 ‘사소한 이야기’는 이 감정을 가장 중립적으로 담담하게 노래함과 동시에 우리의 다양한 감정 속에 소모되어가던 삶의 빛을 꺼내 어루만지고 다시금 살아가길 다짐하게 한다.
타이틀곡을 제외하고도 앨범은 어떠한 상황에 처한 사람의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는데 첫 번째 트랙 ‘노랫말’에서는 불행으로 찬 보잘것없는 삶일지라도 사랑이 있어 살아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시작한 앨범은 점점 차가운 새벽 시린 눈으로 조금 냉소적이게 사랑과 삶을 바라보며 슬픔과 이별에 천천히 잠식당한듯하지만 이내 아름다웠던 사랑의 기억을 더 크게 떠올리며 음울함을 벗어난다. 박지윤이 피처링한 ‘내게 사랑한다는 말 하지 말아요’에서는 사랑이란 건 허상 같지만 세상에는, 그리고 우리 안에는 미약하게라도 사랑이 빛나고 있음을 되뇐다. 그리고 그 끝엔 결국 그 사랑이 떠나도 나는 울지 않고, 후회하지 않고 힘껏 사랑할 거란 시작의 다짐인 ‘선물’이란 곡으로 마침표를 찍는다. 이렇듯 그녀의 노랫말처럼 어쩌면 삶이란 건 사랑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이기에 우리는 오늘도 사랑하기 위해 살아가는 걸지도 모른다. 우리는 지나버린, 혹은 다가올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호흡하고 존재한다. 우리의 삶이 사랑에 침식당하고 닳아가도 우리는 끝없이 반복되는 계절 같은 자연적 현상처럼 어쩔 수 없이, 당연하게 사랑을 하게 될 것이다. 섣부르고 덧없는 행위 일진 몰라도 그것이 삶이 지닌 운명이라 전진희의 음악에서 오늘도 나는 해말간 사랑의 위로를 건네받는다.
조혜림 (음악콘텐츠 기획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