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쟁연주가 김상훈과 첼리스트 요요마는 겹쳐진다. 아쟁과 첼로는 닮았다. 두 악기 모두 인간의 깊은 내면의 울림을 담아낸다. 더불어 두 사람의 이미지도 닮았다. 지적인 모습이지만, 너그럽다. 선한 인상이지만, 진지하다. 요요마는 음악적 스펙트럼이 넓다. 무반주소나타에서 크로스오버까지, 그의 첼로는 무한대를 향한다. 김상훈도 이를 닮으려 한다. 궁극적인 지향은 아쟁 자체의 소리겠지만, 아쟁이 어떻게 다른 악기 혹은 다른 장르와 잘 어울릴지 목하 고민 중이다.
Play is Pray
그에게 있어 음악은 구도(??와 동의어다. 키리에(kyrie)라는 타이틀로부터 느껴지지 않는가! 음반에 실려 있는 키리에, 도리, 명상, 콜니드라이는 모두 절대자를 향한 노래다. 그것은 가톨릭교회에서, 진도 앞바다에서, 갠지스강에서 부르는 구원의 노래다. 시공(Mn)을 달라도, 인간을 향한 연민이 있다. 김상훈의 음반을 들으면서, 악기의 원형적 속성을 생각한다. 악기(??)는 본래 신기(v?)였다. 악기는 인간과 신을 연결하는 영매( ?)와 같은 존재가 아니었던가! 그는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 걸까? 가까이는 가족, 멀리는 인류인지 모른다. 작게는 아쟁이요, 크게는 한국음악이다. 그는 사람, 악기, 음악의 삼위일체를 꿈꾼다.
One man Ensemble
김상훈은 우리나라 최초의 아쟁앙상블 ‘아르코’ 동인이다. 그는 이렇게 다른 사람들과의 음악적 조우를 즐긴다. 하지만 이번 음반에선 혼자만의 연주로 아쟁 5중주를 완성했다. 또 하나의 현성신화(?rrV)가 만들어졌다. 국내에서 원맨-아카펠라 혹은 원맨-밴드는 시도됐지만, 이제 김상훈에 의해 원맨-앙상블의 전통이 시작됐다. 디지털 혹은 멀티미디어시대에, 한 사람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이런 연주형태는, 앞으로 더욱 권장되어야 할 덕목이다.
Painting without feint
경기뿐 아니라, 인생에도 때론 페인팅모션이 필요하단다. 하지만 그에겐 해당사항이 없다. 그는 가장하거나 견제하지 않는다. 페인트(feint)는 또 다른 뜻도 있다. 선이 가늘거나 색이 엷은 것을 가리킨다. 김상훈의 음악은 페인트모션뿐 아니라, 페인트라인도 경계한다. 그는 진하게 갈은 먹물로 그림을 그리고, 그런 수묵화 같은 음악에서 번짐에 순응한다. 장석남 시인은 이렇게 노래했지.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Like a Cow
다시 요요마(+ ??를 떠올린다. 그가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추진해가는 모습을 보면, 중원을 달리는 종마가 연상된다. 화려하고 진취적이다. 이제 김상훈을 자리매김해보자. 그에겐 종마의 화려함은 없다. 일소의 진중함이 있을 뿐이다. 창작음악에서 아쟁은, 봄날 소 울음소리를 묘사하기도 한다. 아쟁이 소를 닮았고, 김상훈이 소를 닮았다. 하지만 그는 결코 얼룩백이 황소처럼, 헤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울지 않는다. 그의 아쟁은 쉽게 울지 않는다. 절절함보다는 담담함의 깊이를 알고 있다. 이것이 20세기와 21세기의 한국음악의 변별점이며, 또한 지향점인지 모른다. 이렇게 21세기 아쟁음악의 한 방향을 제시할 음반이 탄생되었다. 김상훈은 아쟁연주자로서 최초의 창작음반을 일궈냈다. 일소처럼 묵묵하게 첫 걸음을 내딛은 김상훈! 그의 행보를 주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