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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안치환 3집 - Confession (1993)
바다의 깊이를 재기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알기위해 나는 나는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버렸네 우-- 우우 -- 우 우-- 우우 -- 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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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류시화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20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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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류시화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2000)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겨울숲에서 노려보는 여우의 눈처럼 잎 뒤에 숨은 붉은 열매처럼 여기 나를 응시하는 것이 있다 내 삶을 지켜보는 것이 있다 서서히 얼어붙는 수면에 시선을 박은 채 돌 틈에 숨어 내다보는 물고기의 눈처럼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건방진 새처럼 무엇인가 있다 눈을 깜빡이지도 않는 그것 눈밖에 없는 그것이 밤에 별들 사이에서, 내가 좋아하는 큰곰별자리 두 눈에 박혀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때로 그것은 내 안에 들어와서 내 눈으로 밖을 내다보기도 하고 내 눈으로 나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것은 무엇일까 내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고 있을까 여기 겨울숲에서 노려보는 여우의 눈처럼 잎 지고 난 붉은 열매처럼 차가운 공기를 떨게 하면서 나를 응시하는 것이 있다 내 삶을 떨게 하는 것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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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류시화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2000)
그토록 많은 비가
그토록 많은 비가 내렸구나 밤 사이 강물은 내 키만큼이나 불어나고 전에 없던 진흙무덤들이 산 아래 생겨났구나 풀과 나무들은 더 푸르러졌구나 집 잃은 자는 새 집을 지어야 하리라 그토록 많은 비가 내려 푸르른 힘을 몰고 어디론가 흘러갔구나 몸이 아파 누워 있는 내 머리맡에선 어느새 이 꽃이 지고 저 꽃이 피어났구나 그토록 많은 비가 내리는 동안 나는 떡갈나무 아래 선 채로 몸이 뜨거웠었다 무엇이 이곳을 지나 더 멀리 흘러갔는가 한번은 내 삶의 저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모든 것이 변했지만 또 하나도 변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그리고 한 번은 이보다 더 큰 떡갈나무가 밤에 비를 맞으며 내 안으로 걸어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리하여 내 생각은 얼마나 더 깊어지고 떡갈나무는 얼마나 더 풍성해졌는가 길을 잃을 때면 달팽이의 뿔이 길을 가르쳐 주었다 때로는 빗방울이 때로는 나무 위의 낯선 새가 모두가 스승이었다 달팽이의 뿔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나는 먼 나라 인도에도 다녀오고 그곳에선 거지와 도둑과 수도승들이 또 내게 길을 가르쳐 주었다 내가 병들어 갠지스 강가에 쓰러졌을 때 뱀 부리는 마술사가 나게 독을 먹여 삶이 한 폭의 환상임을 보여 주었다 그 이후 영원히 나는 입맛을 잃었다 그때 어떤 거대한 새가 날개를 펼치고 비 속을 날아갔었다 밤이었다 내가 불을 끄고 눕자 새의 날개가 내 집 지붕을 덮어 주었다 그리고 나서도 오랫동안 비가 내렸다. 나는 병이 더 깊어졌다. 그토록 많은 비가 내렸구나 밤 사이 강물은 내 키만큼이나 불어나고 전에 없던 진흙 무덤들이 산 아래 생겨났구나. 집 잃은 자는 새 집을 지어야 하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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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류시화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2000)
길 위에서의 생각
집이 없는 자는 집을 그리워하고 집이 있는 자는 빈 들녘의 바람을 그리워한다 나 집을 떠나 길 위에 서서 생각하니 삶에서 잃은 것도 없고 얻은 것도 없다 모든 것들이 빈 들녘의 바람처럼 세월을 몰고 다만 멀어져갔다 어떤 자는 울면서 웃을 날을 그리워하고 웃는 자는 또 웃음 끝에 다가올 울음을 두려워한다 나 길가에 피어난 풀에게 묻는다 나는 삶에서 무엇을 위해 살았으며 또 무엇을 위해 살지 않았는가를 살아 있는 자는 죽을 것을 염려하고 죽어가는 자는 더 살지 못함을 아쉬워한다 자유가 없는 자는 자유를 그리워하고 어떤 나그네는 자유에 지쳐 길에서 쓰러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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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류시화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2000)
나무
나에게 나무가 하나 있었다. 나는 그 나무에게로 가서 등을 기대고 서 있곤 했다. 내가 "나무여"하고 부르면 나무는 그 잎들을 은빛으로 반짝여 주고 "하늘을 보고 싶다"고 하면 나무는 저의 품을 열어 하늘을 보여주었다. 저녁에 내가 몸이 아플 때는 새들을 불러 크게 울어주었다. 내 집 뒤에 나무가 하나 있었다. 비가 내리면 서둘러 넓은 잎을 꺼내 비를 가려주고 세상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로도 다가오지 않을때 그 바람으로 숨으로 나무는 먼저 한숨지어 주었다 내가 차마 나를 버리지 못할때는 나무는 저의 잎을 버려 버림의 의미를 알게하여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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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류시화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2000)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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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류시화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2000)
목련
목련을 습관적으로 좋아한 적이 있었다 잎을 피우기도 전에 꽃을 먼저 피우는 목련처럼 삶을 채 살아 보기도 전에 나는 삶의 허무를 키웠다 목련나무 줄기는 뿌리로부터 꽃물을 밀어올리고 나는 또 서러운 눈물을 땅에 심었다 그래서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을 나는 버릴 수 있었지만 차마 나를 버리진 못했다 목련이 필 때쯤이면 내 병은 습관적으로 깊어지고 꿈에서마저 나는 갈 곳이 없었다 흰 새의 날개들이 나무를 떠나듯 그렇게 목련의 흰 꽃잎들이 내 마음을 지나 땅에 묻힐 때 삶이 허무한 것을 진작에 알았지만 나는 등을 돌리고 서서 푸르른 하늘에 또 눈물을 심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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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류시화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2000)
민들레
민들레 풀씨처럼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게 그렇게 세상의 강을 건널 수는 없을까 민들레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네 슬프면 때로 슬피 울라고 그러면 민들레 풀씨처럼 가벼워진다고 슬픔은 왜 저만치 떨어져서 바라보면 슬프지 않은 것일까 민들레 풀씨처럼 얼마만큼의 거리를 갖고 그렇게 세상 위를 떠다닐 수는 없을까 민들레가 나에게 가르쳐 주었네 슬프면 때로 슬피 울라고 그러면 민들레 풀씨처럼 가벼워진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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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류시화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2000)
벌레의 별
사람들이 방안에 모여 별에 대한 토론을 하고 있을 때 나는 문 밖으로 나와서 풀줄기를 흔들며 지나가는 벌레 한 마리를 구경했다 까만 벌레의 눈에 별들이 비치고 있었다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나는 벌레를 방안으로 데리고 갔다 그러나 어느새 별들은 사라지고 벌레의 눈에 방안의 전등불만 비치고 있었다 나는 다시 벌레를 풀섶으로 데려다 주었다 별들이 일제히 벌레의 몸 안에서 반짝이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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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류시화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2000)
그리고는 하루가
얼마나 길고 덧없는지를 느끼지 않아도 좋을 그 다음 날이 왔고 그 날은 오래 잊혀지지 않았다. 붉은 잎, 붉은 잎, 하늘에 떠가는 붉은 잎들. 모든 흐름이 나와 더불어 움직여 가고 또 갑자기 멈춘다 여기 이 구름들과 끝이 없는 넓은 강물들. 어떤 섬세하고 불타는 삶을 나는 가지려고 했었다. 그리고 그것을 가졌었다, 그렇다, 다만 그것들은 얼마나 하찮았던가, 여기 이 붉은 잎, 붉은 잎들, 허공에 떠가는 더 많은 붉은 잎들. 바람도 자고 물도 맑은 날에 나의 외로움이 구름들을 끌어당기는 곳. 그것들은 멀리 있다, 더 멀리에, 그리고 때로는 걷잡을 수 없는 흐름이 그것들을 겨울하늘 위에 소용돌이치게 하고 순식간에 차가운 얼음 위로 끌어내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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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류시화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2000)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시를 쓴다는 것이 더구나 나를 뒤돌아본다는 것이 싫었다, 언제나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였다 다시는 세월에 대해 말하지 말자 내 가슴에 피를 묻히고 날아간 새에 대해 나는 꿈꾸어선 안 될 것들을 꿈꾸고 있었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견뎌야 한다는 것이 나는 두려웠다 다시는 묻지 말자 내 마음을 지나 손짓하며 사라진 그것들을 저 세월들을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을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법이 없다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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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류시화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2000)
소금인형
바다의 깊이를 재기 위해 바다로 내려간 소금인형처럼 당신의 깊이를 재기 위해 당신의 피 속으로 뛰어든 나는 소금인형처럼 흔적도 없이 녹아 버렸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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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류시화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2000)
시월이 왔다
그리고 새벽이 문지방을 넘어와 차가운 손으로 이마를 만진다 언제까지 잠들어 있을 것이냐고 개똥쥐빠귀들이 나무를 흔든다 시월이 왔다 여러 해만에 평온한 느낌 같은 것이 안개처럼 감싼다 산모퉁이에선 인부들이 새 무덤을 파고 죽은 자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나는 누구인가 저 서늘한 그늘 속에서 어린 동물의 눈처럼 나를 응시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디 그것을 따라가 볼까 또다시 시월이 왔다 아무도 침범할 수 없는 침묵이 눈을 감으면 밝아지는 빛이 여기에 있다 잎사귀들은 흙 위에 얼굴을 묻고 이슬 얹혀 팽팽해진 거미줄들 한때는 냉정하게 마음을 먹으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다 그럴수록 눈물이 많아졌다 이슬 얹힌 거미줄처럼 내 온 존재에 눈물이 가득 걸렸던 적이 있었다 시월 새벽, 새 한 마리 가시덤불에 떨어져 죽다 어떤 새는 죽을 때 가시덤불에 몸을 던져 마지막 울음을 토해내고 죽는 다지만 이 이름 없는 새는 죽으면서 무슨 울음을 울었을까 시월이 왔다 구름들은 빨리 지나가고 곤충들에게는 더 많은 식량이 필요하리라 곧 모든 것이 얼고 나는 얼음에 갇힌 불꽃을 보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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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류시화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2000)
안개 속에 숨다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인기척과 함께 곧 들키고 말지만 안개속에서는 가까이 있으나 그 가까움은 안개에 가려지고 멀리 있어도 그 거리는 안개에 채워진다 산다는 것은 그러한 것 때로 우리는 서로 가까이 있음을 견디지 못하고 때로는 멀어져 감을 두려워한다 안개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나무 뒤에선 누구나 고독하고, 그 고독을 들킬까 굳이 염려하지만 안개속에서는 삶에서 혼자인 것도 여럿인 것도 없다 그러나 안개는 언제까지나 우리 곁에 머무를 수 없는 것 시간이 가면 안개는 걷히고 우리는 나무들처럼 적당한 간격으로 서서 서로를 바라본다 산다는 것은 결국 그러한 것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게 시작도 끝도 알지 못하면서 안개 뒤에 나타났다가 다시 안개 속에 숨는 것 나무 뒤에 숨는 것과 안개 속에 숨는 것은 다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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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류시화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2000)
날이 밝았으니 이제
여행을 떠나야 하리 시간은 과거의 상념 속으로 사라지고 영원의 틈새를 바라본 새처럼 그대 길 떠나야 하리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그냥 저 세상 밖으로 걸어가리라 한때는 불꽃 같은 삶과 바람 같은 죽음을 원했으니 새벽의 문 열고 여행길 나서는 자는 행복하여라 아직 잠들지 않은 별 하나가 그대의 창백한 얼굴을 비추고 그대는 잠이 덜 깬 나무들 밑을 지나 지금 막 눈을 뜬 어린 뱀처럼 홀로 미명 속을 헤쳐가야 하리 이제 삶의 몽상을 끝낼 시간 순간 속에 자신을 유폐시키던 일도 이제 그만 종이꽃처럼 부서지는 환영에 자신을 묶는 일도 이제는 그만 날이 밝았으니, 불면의 베개를 머리맡에서 빼내야 하리 오, 아침이여 거짓에 잠든 세상 등 뒤로 하고 깃발 펄럭이는 영원의 땅으로 홀로 길 떠나는 아침이여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자 혹은 충분히 사랑히기 위해 길 떠나는 자는 행복하여라 그대의 영혼은 아직 투명하고 사랑함으로써 그것 때문에 상처입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리 그대가 살아온 삶은 그대가 살지 않은 삶이니 이제 자기의 문에 이르기 위해 그대는 수많은 열리지 않는 문들을 두드려야 하리 자기 자신과 만나기 위해 모든 이정표에게 길을 물어야 하리 길은 또다른 길을 가리키고 세상의 나무 밑이 그대의 여인숙이 되리라 별들이 구멍 뚫린 담요 속으로 그대를 들여다보리라 그대는 잠들고 낯선 나라에서 모국어로 꿈을 꾸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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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류시화 -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 (2000)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간다 버릴 것이 있다는 듯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채울 것이 있다는 듯 채워야 할 빈 자리가 있다는 듯 물은 자꾸만 산 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눈을 감고 내 안에 앉아 빈 자리에 그 반짝이는 물 출렁이는 걸 바라봐야 할 시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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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노명희 1집 - 하늘, 바다... 그리움 (2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