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곡가. 경상남도 밀양(密陽) 출생.
밀양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8년 일본 오사카[大阪(대판)]중앙음악학원을 수료하였다.
귀국 후 29년부터 아리랑가무단 음악부에 근무하였고, 31년 OK레코드 전속작곡가가 되었다. 48년 럭키레코드사를 설립하였으며, 52년 오리엔트레코드전속작곡가, 56년 레코드작곡가협회장, 61∼72년 연예협회 이사장, 1966년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부회장 등을 지냈다. 82년 신세계음향회장이 되었으며 1981년 이후 음악저작권협회 명예회장을 지냈다. 6·25 종군연예인유공자표창 보관문화훈장(寶冠文化勳章)을 수상하였다.
1930년대중엽에 남인수의 《물방아사랑》을 시발로 하여 《꼬집힌 풋사랑》, 《애수의 소야곡》 등으로 일약 유명한 작곡가가 되였다고 한다.
그는 헤아릴수 없는 많은 작품들을 남겼는데 조령출 작사들인 《울며 헤진 부산항》, 《서귀포 칠십리》, 《총각진정서》, 《기로의 황혼》, 《인생간주곡》, 《방랑극단》, 《청춘야곡》, 《안개낀 상해》, 《무정천리》, 《청춘항구》, 《집 없는 천사》, 《비오는 삼상봉》, 《산호빛 하소연》, 《괄세를 말아요》, 《남행렬차》, 《서창의 밤눈물》, 《처녀야곡》, 《목단강편지》, 《비련의 출발》, 《누님의 사랑》, 《눈물의 신호등》, 《세상은 요지경》 등을 작곡하여 조령출과 《단짝》이라는 말이 나돌기도 하였다.
이밖에도 박시춘은 박영호의 가사들인 《항구의 선술집》, 《흐르는 장미》, 《국경의 버들밭》, 《물방아사랑》도 작곡하였다.
박시춘의 창작출발년대는 1937년이란 기록도 있는데 《시에론》레코드에 남인수의 노래로 취입된 《눈물의 해협》이 후에 《애수의 소야곡》으로 곡명이 고쳐진것을 보면 1935년경부터이다. 《시에론》은 1931년에 창설되여 몇해 가지 못하고 파산되였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