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출생하였고 일본 도쿄 우에노 음악학교를 졸업했다. 1947년에 〈신라의 달밤〉을 불러 데뷔한 이후, 〈굳세어라 금순아〉, 〈비 내리는 고모령〉, 〈청포도 사랑〉 등을 부르며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으며, 번안곡 〈베사메무초〉, 〈꿈 속의 사랑〉 등을 불러 번안곡 열풍을 이끌어내기도 하였다.
현인의 창법은 해방 전후에 퍼져있던 기존의 가요가 가지고 있던 분위기에서 벗어나, 성악을 기반으로 한 특유의 떨림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시원한 느낌을 주면서도, 색다른 느낌을 주었다. 또한 번안곡 등은 세계적인 추세와 함께, 이국적인 분위기를 함께 선사한 것이 인기로 이어졌다.
한국 전쟁 전후(前後)에는 〈전선야곡〉 등의 노래나, 피난민의 애환을 그린 〈굳세어라 금순아〉 등도 시대 분위기를 타고 크게 인기를 끌었다.
지병인 당뇨병을 앓다가 2002년 4월 13일에 영면했으며, 장례는 한국연예예술인장으로 치러졌다. 묘지는 경기도 성남시에 있다. 사후에 〈굳세어라 금순아〉의 무대였던 부산 영도대교 남단에, 현인의 앉아있는 모습의 동상과 함께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비가 세워졌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음반을 발표하는 것으로 데뷔한 것은 현인이 처음이었므로 '대한민국 가수 제1호'라는 별명이 붙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