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인적인 테크닉을 지닌 연주자들에게 종종 붙는 말이 있다. ‘악마적 기교의 소유자’.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어려운 연주 테크닉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연주자를 보면 흔히 떠오르는 말이다. 실상 이 말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18-19세기의 천재적 작곡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로 파가니니’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바이올린 특유의 날카로운 음색과 화려한 기교를 요구하는 작품 <24개의 카프리치오>로 잘 알려진 그는 지금까지도 ‘악마적 기교’ 라는 표현의 장본인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1782년 10월 이탈리아 제노바에서 태어난 파가니니는 아마추어 만돌린 연주자였던 아버지에게서 처음으로 음악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이어 제노바 극장 관현악단의 바이올린 주자 세르베토 Giovanni Servetto와 성 로렌초 대성당의 합창대 지휘자 코스타 Giacomo Costa에게서 사사받고 9살 되던 해에 <카르마뇰에 의한 변주곡>으로 첫 연주 데뷔를 했다. 13세가 되어서는 롤라Alessandro Rolla 에게서 지도를 받고 기레티 Gaspare Ghiretti 에게서는 기타연주 지도를 받았다. 이듬해 1797년에 그는 아버지와 함께 롬바르디아 지방으로 연주여행을 떠나면서 본격적으로 작곡활동과 연주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한때 귀부인과의 동거생활로 잠시 기타에만 관심을 쏟았던 그는 1805년 다시 활동을 재개하고 궁정 오페라 극장의 지휘자로 임명되기에 이른다. 1828년-1834년에는 전유럽을 순회하면서 연주활동을 펼쳤고 호응 또한 최고조에 이르렀다. 1834년에는 작곡가 베를리오즈를 만나 비올라 독주곡을 작곡해줄 것을 의뢰 받고 곡을 완성하지만 본인이 직접 연주하지는 못했다. 돌연 건강의 악화로 1840년 5월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한편 파가니니는 당대의 수많은 음악가, 미술가, 문학가들에게 놀라움을 주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음악학자인 페티스는 당시 음악잡지 르뷔 뮈지칼 Revue musicale에 “바이올린이 파가니니의 손에 쥐어지면 더 이상 타르티니나 비오티의 악기가 아니다. 그것은 다른 목적을 가진 특별한 그 무엇인 것만 같다”라고 했으며, 당대의 작곡가이자 화려한 기교의 소유자로 알려진 피아니스트 리스트는 그의 연주를 듣고 나서 반성을 하며 한동안 연마를 위해 잠적했다는 에피소드가 남아있다.
4 옥타브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음역의 설정, 옥타브에 의한 화려한 트릴, 다양한 운지법의 시도, 활의 도약을 이용한 스타카토, 스피카토, 살타토 등의 바이올린 특유의 기법적 요소를 화려하고 곡예적 기법으로 발전시키고 바이올린의 위상을 높인 파가니니. 낭만시대의 대표적 일면을 보여주는 그만의 연주기법은 아쉽게도 그가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기까지 철저히 비밀로 지켜졌다고 한다.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연구 되어지고 시도되어지는 테마가 아닐까.
by denke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