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연둣빛 초봄의 오후 나는 꽃나무 밑에서 자고 있었다. 그랬더니 꽃잎 하나가 내려와서는 내 왼 몸을 안아보고서는 가고, 또 한 잎이 내려와서는 손톱 끝의 먼지를 닦아내고, 그리하여 어느덧 한세상은 저물어 그 꽃나무는 시들어 죽고, 나는 한 마리 나비가 되어 그 꽃이 가신 길을 찾아 홀로 아지랑이 속의 들길을 꿈인 듯 날아가고 있었다.
1 나는 벌거숭이다. 옷 같은 것은 나에게 쓸데없다. 나는 벌거숭이다. 제도 인습은 고인의 옷이다. 나는 벌거숭이다. 시비도 모르고 선악도 모르는.
2 나는 벌거숭이다. 그러나 나는 두루마기까지 갖추어 단정히 옷을 입은 제도와 인습에 추파를 보내어 악수하는 썩은 내가 물신물신 나는 구도덕에 코를 박은. 본능의 폭풍 앞에 힘없이 항복한 어린 풀이다.
3 나는 어린 풀이다. 나는 벌거숭이다. 나에게는 오직 생장이 있을 뿐이다. 태양과 모든 성신(星辰)운명하기 까지. 나에게는 생명의 감로가 나를 뿐이다. 온 누리의 모든 생명들로 더불어 나는 영원히 생장의 축배를 올리련다.
4 그리하여 나는 노래하려 한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감투를 쓴 사람으로부터 똥통을 우주로 아는 구더기까지. 그러나 형제들아! 내가 그대들에게 이러한 노래를 (모순되는 듯한 나의 노래를) 서슴지 않고 보내는 것을 기뻐하라. 새로운 종족아! 나의 형제들아! 그대들은 떨어진 옷을 벗어 던지자 절망의 어둔 함굴을 벗어나고자 힘을 쓰자.
5 강장한 새로운 종족들아! 아침 해는 금노을을 친다. 생장의 밭은 아직도 처녀이다 개척의 팽이를 들었느냐? 핏기 있는 알몸으로 춤을 추며. 굳세인 목소리로 합창을 하자.-
6 나는 벌거숭이다. 우리는 벌거숭이다. 개성은 우리의 뿌릴 <생명의 씨>이다. 우리의 밭에는 천재지변도 없다. 우리는 오직 어린 풀과 함께 햇빛을 먹고 마시고 입고. 길이길이 노래만 하려 한다.
징이 울린다 막이 내렸다 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 무대 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빈 운동장 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 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 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 따라붙어 악을 쓰는 쪼무래기들뿐 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벼락에 붙어 서서 철없이 킬킬대는구나
보름달은 밝아 어떤 녀석은 꺽정이처럼 울부짖고 또 어떤 녀석은 서림이처럼 해해대지만 이까짓 산구석에 처박혀 발버둥친들 무엇하랴 비료값도 안 나오는 농사 따위야 아예 여편네에게나 맡겨 두고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한 다리를 들고 날라리를 불거나 고갯짓을 하고 어깨를 흔들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