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1960년 서울음대에서 작곡을 배웠다(김세형, 정회갑에게 사사). 1960년대 초반부터 당시의 새로운 서양의 현대적인 작곡방식에 관심을 가졌다. 1968년 감옥의 병실에 입원해 있던 윤이상을 만나 그로부터 작곡을 배웠다. 윤이상의 영향은 그에게 지속적으로 남는다. 특히 옛스러운 한국적 소재를 사용하는 면에서 그러하다. 1969년 이후에는 '현대음악 비엔날레'를 주도했다. 이 음악제는 후에 범음악제(Pan Music Festival)가 되었다. 1970-1971년에는 하노버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배웠다(윤이상에게 사사). 1971-1975년까지 베를린 공대에서 통신공학과 및 베를린 음악대학에서 작곡을 공부했다(블라허'Boris Blacher', 빙켈'Fritz Winkel, 윤이상에게 사사). 70년대는 유럽에서 자유로운 창작자로서 생활했다. 1982-1999년에는 서울대 작곡과 교수로 재직했다. 1999년부터는 계명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
그는 국제현대음악협회(ISCM)에 열심히 참여하였다(1984-1990년 부회장). 그는 1972부터 이 협회의 한국지부를 위해 일해 왔었다. 1969-1991년까지 범음악제 감독이었고, 1992년 이후 <서울 베를린 페스티발>의 책임자로 있다. 1976년 파리작곡가제전입상({메타모르포젠}), 1978년 대한민국 작곡상({용비}), 1979년 대한민국 작곡상 대통령상({달하}) 등의 수상격력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음악은 전자적 음향과 한국 전통음악의 현대적 적용에 많은 관심을 보여준다. 간혹 조성음악도 보인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