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즈피아니스트 조윤성
세계적인 재즈아티스트라는 수식어가 항상 붙어 다니는 재즈피아니스트 조윤성은 아르헨티나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음악원에서 정통 클래식 수업을 받고 미국 버클리 음대와 뉴잉글랜드 컨서버토리를 거치며 클래식과 재즈를 넘나드는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전 세계에서 단 7명만 선발하는 ‘델로니어스 몽크 인스티튜트’에 아시아인 최초로 선발되어 활동하기도 하였으며, 마일스 데이비스 그룹의 천재적 피아니스트였던 허비 행콕이 "저 녀석이 언젠가 날 가르칠 거야"라고 한 말은 유명한 일화로 남아 있다.
그는 2010년까지 할리우드 뮤지션스 인스티튜트의 교수로 있었고, 프랭크 시내트라 밴드의 수석 피아노주자로 활동했다.
드러머 이상민
“대한민국에서 드럼 제일 잘 치는 친구죠.”
유희열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그는 현존하는 대한민국 최고의 드러머다. 그 사실은 여러 곳에서 증명된다.
열 아홉 살에 밴드 긱스의 작곡가 겸 드러머로 활동을 시작,수많은 음악가들은 “천재가 나타났다”며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이승철 밴드, 김현철 밴드, 수요예술무대 김광민 밴드를 비롯해서 이적, 김동률, 박진영(JYP), 이소라, 박정현, 김조한, 김범수, 박효신, 등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뮤지션들은 그를 원했고 그는 그렇게 지난 20년동안 한국 대중음악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러나 음악에 대한 그의 갈증은 깊어만 갔고 새로운 음악을 향한 호기심은 그를 재즈의 길로 이끌었다.
급기야 그는 한국에서의 화려한 영광을 뒤로한 채 미국으로 떠났다.
낯선 타지에서 심벌즈를 메고 클럽을 전전하며 바닥부터 시작한 이상민은 조용한 근성으로 활동을 넓혀갔고 뉴욕씬 최고의 뮤지션들은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를 정식으로 초청했고 이상민은 뮤지션이라면 모두 꿈꾸는 곳. 블루노트, 재즈 갤러리, 드롬, 뉴블루, 55바와 같은 뉴욕의 명문 재즈클럽에서 연주했다. 한국인으로서는 그가 최초였다.
마일드 데이비스 밴드의 기타리스트, 존 스코필드. 테너 섹소폰의 거장, 조 로바노, 밥 제임스, 로버트 글래스퍼, 그래미어워드 수상자, 케이시 벤자민, … 그와 함께 했던 세계적인 음악가들은 묻곤 한다. 언제 돌아오느냐고. 하지만 그는 아직 돌아갈 생각이 없다.
한국에서 펼칠 꿈이 남아있기 때문이다.드러머 이상민. 그 이름만으로도 더이상의 설명이 필요없는 음악가. 그의 끝없는 음악세계는 이제 시작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