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목소리에서는 공연한 허세도 없고 날카로운 금속성의 파열음도 없다.
대신 자신과 이웃의 삶을 따뜻하게 관조하는 시선과 건강한 낙관이 있다.
- 김 창남 (문화평론가/ 성공회대학교 교수)
그의 음악작업은 이쯤에서는 어느 정도 ‘확실한 과실’을 얻고 있는 듯이 여겨지며
한국포크음악계의 ‘맥’을 이어나갈 수 있는 ‘적자’로서 그 존재감을 얻었음이
또 다른 기쁨일 듯 하다. ? 김선국(저스트뮤직 대표)
김민기, 한대수가 한국 포크음악계에 남긴 거대한 족적 중에서 한가지는 아마도 그 들의 삶의 방식을 따르고자 하는 후배들의 열정을 세상으로 이끌어내는 계기가 되었음에 있기도 하다. 물론 그 두 사람 이외에도 서유석, 김광희, 현경과 영애, 트윈 폴리오, 조동진 등 한국적 정서와 감성을 담아낸 음악인들의 이름도 위 두 사람의 길 위에 함께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또한 그 이후로도 우리는 참으로 많고도 뛰어난, 한때 대중음악의 전위를 이끌던 포크음악진영을 구축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80년대와 90년대를 지나오며 한국의 포크음악은 ‘고 김광석’의 커다란 그림자만을 남긴 채 시대적 정서의 뒤편으로 밀려나며 대중음악의 그늘로 잠겨가고 있다.
한국포크의 맥을 이어가는 싱어송라이터 ‘문 진오’
여전히 386을 포함한 이전 세대에게는 세상을 느끼는 중요한 길일 수도 있겠지만, 포크음악이 가진 현실에 대한 성찰과 창작자 개인의 주관과 철학이 확실하게 담긴 가사는 촌철살인의 또는 지극한 서정의 깊이에도 불구하고 이미 그 파급은 예전에 비해 뚜렷하게 잠식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저항은 록음악의 강렬한 메시지에, 부드러운 감성은 TV속 ‘발라드’에 확실하게 밀려있고 더 이상 가창력이 승부가 되지 않고 댄스든 비디오든 ‘이미지’를 동반해야 하는 한편으로 몸무게 가벼워진 디지털 파일에 적응이 되지 않은 까닭이며, 빠르게 현실적으로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날로그의 텁텁한 인간적 접근이 현 세대에게는 더디게 느껴지는 이유일 것이다.
이렇듯 포크음악이 퇴로에 서 있어도, 꾸준히 그 길을 떠나는 음악인들도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포크음악가수인 문진오는 지난 1집 ‘길 위에 하루’에서 보여주었듯이, 세상일에 대해서는 낙천적이며 밝고 건강한 삶을 지향하고 있다. 1989년부터 오늘까지 계속 ‘노래를 찾는 사람들’의 대표가수로서 그 젊은 날의 뜻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이어오는 한편으로는 자신이 보고 느낀 삶의 구석구석을 선율에 담아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노찾사’의 가수로서 활동하는 것이 세상에 대해 그가 지닌 ‘최소한의 의무이자 역할’이라면 솔로로 활동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애착인 동시에 그가 추구하는 자유로움’일 것이다. 포크가수, 또는 싱어송라이터의 의미가 단순히 노래를 짓고 부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만나는 세상에 대한 솔직한 느낌을 여과 없이 자유롭게 노래로서 표현하는데 그 의미가 있는 것처럼 그 역시 ‘노찾사’의 틀 속에서 잠시 떨어져 그가 살아온 인생 길에서 만난 여러 사람과 풍경 그리고 시간에 대한 느낌을 전달하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었다.
포크음악 본연에 더욱 충실해진 ‘문 진오’의 두 번째 음반 ‘오래 꾸는 꿈’
이 번에 출시하는 그의 두 번째 음반의 타이틀은 ‘오래 꾸는 꿈’이다. 오히려 이전 보다 더욱 포크음악의 본연에 집중한 흔적이 면면에서 드러나는 이 음반은 마치 21세기 한국음악계에 포크의 기본 정신을 되새기는 기회를 주고자 하는 의도마저 느껴진다. 여러 이유에서 현저히 그 제작비율이 떨어진 ‘포크음반’들을 생각해보면 그의 이번 시도는 그야말로 ‘맥’을 이어가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적인 면에서도 드럼의 비중이 현격하게 줄어드는 대신 콘트라베이스와, 아코디언, 바이올린, 첼로의 비중이 늘면서 음악은 문진오의 노래와 그 가사에 더욱 힘을 실어주며 ‘컴퓨터 프로그래밍’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음악이 아닌 ‘수작업’으로 포크음악의 참 맛을 살려낸다. 또한 백창우와 이지상으로 기억되는 ‘노래마을’이 불렀던 ‘한강’이나, 고 김광석이 세상에 알려냈던 ‘나의 노래’ 등이 우선 눈에 들어오는 곡이기도 하지만 역시 대 다수의 곡들은 역시 문진오의 작사, 작곡으로 이루어져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이며, 누구의 눈도 아닌 스스로의 시각에서 본 세상사에 대한 단상에 옷을 입혀놓은 것이다. 이렇듯 그의 시각은 곳곳에서 진솔하게 드러나 있으며 그 다양한 소재들도 여전히 ‘사랑과 이별’에서 우선은 벗어나 있다. (TV 쇼 프로에서 만날 수 있는 음악은 아닌 것이다) 바로 삶의 곁에서 일어나는 일들, 우리들 곁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과 주고 받을 수 있는 소재들이 그의 따스한 긍정적인 시선과 넉넉한 가슴 안에서 녹여지는 것을 음반 전체에서 느낄 수 있다.
삶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으로 녹여낸 ‘포크음악’의 진수 ? ‘오래 꾸는 꿈’
이 음반에서는 유행처럼 여유로운 지식인들 사이에서 회자되던 ‘다운쉬프트(DownShift)’의 거만함이 아니라 정말로 ‘아프고, 힘들어서 낙담한 영혼들’과 마주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밤새 얘기를 들어주는 ‘진정성’이 가득하다. ‘젊은 그대’, ‘말해줘 내게’, ‘쉰 밥과 우산 하나’, ‘그 곳엔..’ 같은 노래들이 그렇다. 또한 ‘기억 속 가리워진 노래’, ‘내 고향 장작골’ 등은 모든 포크음악의 화자가 그렇듯이 원형, 고향, 아름다운 기억 들에 대한 그리움들이 오롯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나의 노래’와 같은 노래들은 원작자의 의도를 그대로 살려내 ‘고 김광석’의 그 것과는 다른 ‘강직함’이 다분히 묻어나며, ‘문득’, ‘한강’, ‘누가 저 거미줄에 걸린 나비를 구할 것인가’는 그 표현하는 크기는 다르지만 삶의 무게에 휘청거리는 사람과 시대를 직접적으로, 은유적으로 담아낸다. 이렇듯 문진오는 자신이 담아낼 수 있는, 더 크지도 더 작지도 않은 딱 자신의 크기만한 그릇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우리들 현실을 채우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사랑과 이별 또한 세상사에 중요한 일이지만 대중가요의 대주제에서 비켜선 그의 시각은 그로 하여금 조금 더 깊이 삶을 투영하게 만들었으며 듣는 이로 하여금 오래 알고 지낸 친구의 눈빛과 같은 편안함을 느끼게 하고 있으니 그의 음악작업은 이쯤에서는 어느 정도 ‘확실한 과실’을 얻고 있는 듯이 여겨지며 한국 포크계의 ‘맥’을 이어나갈 수 있는 ‘적자’로서 그 존재감을 얻었음이 또 다른 기쁨일 듯 하다.
이 음반에 실린 노래 중 ‘한강’의 가사는
‘바람 안고 강변에 서면 남 모르게 터져나는 것/ 햇살이고 흐르는 모습 바라보면 가슴 울리는 것/ 네 깊은 곳 커다란 뜻을 무엇으로 말할 수 있나/ 소리 없이 잠겨 흐르는 우리들의 물빛 그 꿈을/…’으로 시작한다. 누구나 한강변에서 또는 그 위를 지나는 다리에서 말없이 내려보며 한 번쯤 간직했을 만한 느낌이다. 결국 ‘바다’를 향한 진득한 일상이 이어져 거대한 여행길이 되고 인생이 되는 것이며, 그 마지막에 닿은 그 바다에서도 더 광활한 대양으로 이어지는 흐름을 따라 끝없이 가야 하는 길, 그 것이 어쩌면 그가 추구하는 음악이고 그의 삶일 것이다. 한 바탕 거칠게 꾸고 마는 꿈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조금씩, 천천히 간격을 좁혀가는 것...그런 의미에서 문진오는 이 음반의 타이틀을 ‘오래꾸는 꿈’이라고 했는가 싶다. 가고자 하는 길이 멀수록 많은 준비가 필요하듯이 이제 예전보다 더 험해진 포크음악의 미래에도 여전히 작은 그늘이라도 자주 만들어내며 그의 뒤를 이어서 같은 길을 갈 후배들에게 듬직한 선배로서, 한국포크음악의 ‘맥’을 이어가는 문진오의 새로운 음반들을 앞으로도 계속해서 만나고 싶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