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sc 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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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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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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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돌아온다
-김 지 향 시 달빛에 허연 뼈를 뽑아들고 길모퉁이에 비켜서있다 흰 옷 입은 나무들의 그림자가 밤을 썰어내는 톱질 소리를 내며 구멍 뚫린 공간을 빠져나간다. 시간을 쏟아 먹는 좀벌레가 발소리를 이고 땅 밖을 기어간다. 귀가 게우는 개구리 소리를 둑 모가지에 걸어두고 품팔이 갔던 바람이 돌아온다. 조용하다. 달이 툭 땅 가득 떨어질 뿐 흰 옷 입은 나무들의 눈이 깨어져 사방에 흰 빛을 뿌릴 뿐 바람이 문 빗장을 풀고 들어갈 뿐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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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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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흰 장미와 백합꽃을 흔들며
- 박 두 진 시 눈 같이 흰 옷을 입고 오십시요. 눈 위에 활짝 햇살이 부시듯 그렇게 희고 빛나는 옷을 입고 오십시요. 달 밝은 밤 있는 것 다아 잠들어 괴괴-한 보름밤에 오십시요...빛을 거느리고 당신이 오시면, 밤은 밤 은 영원히 물러간다 하였으니, 어쩐지 그 마지막 밤을 나는, 푸른 달밤으로 보고 싶습니다. 푸른 월광이 금시에 활닥 화안한 다른 광명으로 바뀌어지는, 그런 , 장엄하고 이상한 밤이 보고 싶습니다. 속히 오십시요. 정녕 다시 오시마 하시었기에, 나는, 피와 눈물의 여러 서른 사연을 지니고 기다립니다. 흰장미와 백합꽃을 흔들며 맞으오리니, 반가워, 눈물 머금고 맞으오리니, 당신은, 눈같이 흰 옷을 입고 오십시요. 눈 위에 활작 햇살이 부시듯, 그렇게, 희고 빛나는 옷을 입고 오십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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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
| 2:47 |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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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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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 부는 날
- 박 성룡 시 오늘따라 바람이 저렇게 쉴새없이 설레고만 있음은 오늘은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여희고만 있음을 바람도 나와 함께 안다는 말일까. 풀잎에 나뭇가지에 들길에 마을에 가을날 잎들이 말갛게 쏠리듯이 나는 오늘 그렇게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여희고만 있음을 바람도 나와 함께 안다는 말일까. 아 지금 바람이 저렇게 못 견디게 설레고만 있음은 오늘은 또 내가 내게 없는 모든 것을 깨닫고 있음을 바람도 나와 함께 안다는 말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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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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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 늘
- 박두진 시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머얼리서 온다 하늘은, 머얼리서 온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며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따거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나는 하늘을 마신다. 자꾸 목말라 마신다.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내 마음이 익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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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
| 4:27 | ||||
♣ 그 날이 오면
-심훈 시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올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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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 3:17 | ||||
♣ 그 믐 달
-이성환 시 그믐달은 마을에 상여 떠나기를 기다려서 저 혼자 어둠을 기대고 드러누웠다. 몸은 비록 머얼리 떨어져 있으나 나 어린 상주의 울음 대신 그믐달은 조용히 머리를 풀어 띄웠다. 산설고 낯설은 바람 잔 뜰안 허전한 어느 비인 항아리 안에 남몰래 소나기로 내려왔다가 이윽고 다다른 목숨 재 너머로 조용히 일러 보내고 그믐달은 상주가 잠이 들기를 기다려서 부엉이를 여지없이 성 밖에 두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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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
| 2:17 | ||||
♣ 자 화 상(自畵像)
- 서정주 시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워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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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
| 2:06 | ||||
♣ 실 솔 가(蟋蟀歌)
- 이형기 시 설움이 도른도른 물같이 흐르는 가을밤 귀뚜리 초갓 지붕에 뚫어진 영창 위에 조용히 잠든 눈시울 위에 옛날 옛날 먼 이야기 몇 구비 돌아간 연륜 자욱 달은 밝았다. 나는 울고 싶었다. 모두가 그날 같은 가을밤 귀뚜리··· 그렇게 가지런한 그림 한 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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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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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
| 3:18 | ||||
♣ 우울한 샹송
- 이수익 시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풀잎되어 젖어 있는 悲哀를 지금은 혼미하여 내가 찾는다면 사랑은 또 처음의 衣裳으로 돌아올까 우체국에 오는 사람들은 가슴에 꽃을 달고 오는데 그 꽃들은 바람에 얼굴이 터져 웃고 있는데 어쩌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얼굴을 다치면서라도 소리내어 나도 웃고 싶은 것일까 사람들은 그리움을 가득 담은 편지 위에 愛情의 핀을 꽂고 돌아들 간다 그때 그들 머리 위에서는 꽃불처럼 밝은 빛이 잠시 어리는데 그것은 저려오는 내 발등 위에 행복에 찬 글씨를 써서 보이는데 나는 자꾸만 어두워져서 읽지 못하고, 우체국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그곳에서 발견한 내 사랑의 기진(氣盡)한 발걸음이 다시 도어를 노크 하면, 그때 나는 어떤 미소를 띠워 돌아온 사랑을 맞이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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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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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 오는 밤에 ~^*
=김용호 詩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콩기름 불 실고추처럼 가늘게 피어나던 밤 파묻은 불씨를 헤쳐 잎담배를 피우며 "고놈, 눈동자가 초롱 같애."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 바깥엔 연방 눈이 내리고 오늘밤처럼 눈이 내리고. 다만 이제 나 홀로 눈을 밟으며 간다. 오우버 자락에 구수한 할머니의 옛 얘기를 싸고, 어린 시절의 그 눈을 밟으며 간다. 오누이들의 정다운 얘기에 어느 집 질화로엔 밤알이 토실토실 익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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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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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
| 2:42 | ||||
17. |
| 3:30 | ||||
♣ 태양의 각문(刻文)
- 김남조 시 가을을 감고 우리 산 속에 있었습니다. 하늘이 기폭처럼 퍼덕이고 눈 들 때마다 태양은 익은 석류처럼 파열했습니다. 당신은 낙엽을 깔고 그리고 향수를 처음 안 소년처럼 구름을 모아 동자(瞳子)에 띄웠고, 나는 한 아름 벅찬 바다를 품은 듯 당신과 가을을 느끼기에 한때 죄를 잊었습니다. 마치 사람이 처음으로 자기 벗었음을 알던 옛날 에덴의 그 억센 경이(驚異) 같은 것이 분수처럼 가슴에 뿜어오르고 만산(萬山) 피 같은 홍엽(紅葉)- 만산 불 같은 홍엽- 아니 아니 만산 그리움 같은 그리움 같은 홍엽에서 모든 사랑의 전설들이 검붉은 포도주처럼 뚝뚝 떨어졌습니다. 무슨 청량한 과즙처럼 바람이 풍겨 오고 바람이 스처 갈 뿐, 사변(四邊) 폐망(廢茫)한 하루의 천지가 다만 가을과 당신만으로 가득 찼고, 나는 차라리 한갓 열병 앓는 소녀였음이 사랑한다는 것은, 참말 사랑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나, 또 하나의 내 목숨을 숨막히도록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나, 또 하나의 내 목숨, 아아 응혈(凝血)처럼 뜨거운 것이 흘러 내리고- 나는 비수(匕首)처럼 하나의 이름을 던져 저기 피흐르게 태양을 찔럿으니, 그것은 이 커다란 우주 속에서 내가 사랑한 다만 하나의 이름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