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오월 단옷날, 처음 만나든 날 우리 둘이서 그늘 밑에 서 있던 그 무성하고 푸르든 나무같이 늘 안녕히 안녕히 계세요.
저승이 어딘지는 똑똑히 모르지만 춘향의 사랑보단 오히려 더 먼 딴 나라는 아마 아닐 것입니다.
천 길 땅 밑을 검은 물로 흐르거나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예요?
더구나 그 구름이 소나기 되어 퍼부을 때 춘향은 틀림없이 거기 있을 거예요!
♠♠ 생사를 초월한 불멸의 사랑을 물~ 구름~소나기로 이어지는 윤희사상으로 소화시켜 노래하고 있다. “나무”로 있어 달라는 얘기는 “소나기”가 “나무”적셔 늘 푸르게 만들어 주듯이 둘의 사랑이 늘 풍성하고 싱싱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도술천 : 불교의 욕계(欲界) 육천(六天)중 네 번째 하늘
나는 당신이 어디가 아픈지 알고 있어요.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말할 수 없습니다. 오오. 말할 수 없는 우리의 슬픔이 어둠속에서 굳어져 별이 됩니다. 한밤에 떠 있는 우리의 별빛을 거두어 당신의 등잔으로 쓰셔요. 깊고 깊은 어둠속에서만 가혹하게 빛나는 우리의 별빛 당신은 그 별빛을 거느리는 목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어요. 종루에 내린 별빛은 종을 이루고 종을 스친 별빛은 푸른 종소리가 됩니다. 풀숲에 가만히 내린 별빛은 풀잎이 되고 풀잎의 비애를 다 깨친 별빛은 풀꽃이 됩니다. 핍박받은 사람들의 이글거리는 불꽃이 하늘에 맺힌 별빛이 될 때까지 종소리여 풀꽃이여 ...... 나는 당신이 어디가 아픈지 알고 있어요. 알고 있어요. 하지만 나는 말할 수 없습니다.
♣ 알 수 없어요 - 한 용운 시 바람도 없는 공중에 수직의 파문을 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국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에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길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에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을 알지도 못할 곳에서 나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 놀은 누구의 시 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 절대자는 자연의 여러 현상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나타내며. 끊임없이 구도하는 자세로 그 절대자를 향해 신앙을 불태우겠다고 노래 하고 있다. 설의법을 사용해서 절대자의 모습을 신비롭게 하는 효과와 각운을 맞추는 효과를 내고 있다.
훌륭한 그이가 우리 집을 찾아왔을 때 이상하게도 두 뺨이 타오르고 가슴은 두근거렸어요. 하지만 나는 아무 말도 없이 바느질만 하였어요. 훌륭한 그이가 우리 집을 떠날 때에도 여전히 그저 바느질만 하였어요. 하지만 어머니, 제가 무엇을 그이에게 선물하였는지 아십니까?
나는 그이가 돌아간 뒤에 뜰 앞 은행나무 그늘에서 달콤하고도 부드러운 노래를 불렀어요. 우리 집 작은 고양이는 봄볕을 흠뻑 안고 나무 가지 옆에 앉아 눈을 반만 감고 내 노래소리를 듣고 있었어요. 하지만 어머니, 내 노래가 무엇을 말하였는지 누가 알으시리까?
저녁이 되어 그리운 붉은 등불이 많은 꿈을 가지고 왔을 때 어머니는 젖먹이를 잠 재려 자장가를 부르며 아버지를 기다리는데 나는 어머니 방에 있는 조그만 내 책상에 고달픈 몸을 실리고 뜻도 없는 책을 보고 있어요. 하지만 어머니, 제가 무엇을 그 책에서 보고 있었는지 모르시리다.
어머니, 나는 꿈에 그이를, 그이를 보았어요. 흰 옷 입고 초록 띠 드리운 성자 같은 그이를 보았어요. 그 흰 옷과 초록 띠가 어떻게 내 마음을 흔들었는지 누가 아시리까? 오늘도 은행나무 그늘에는 가는 노래가 떠돕니다. 고양이는 나무 가지 옆에서 어제 같이 조을고요. 하지만 그 노래는 늦은 봄 바람처럼 괴롭습니다
가을을 감고 우리 산 속에 있었습니다. 하늘이 기폭처럼 퍼덕이고 눈 들 때마다 태양은 익은 석류처럼 파열했습니다.
당신은 낙엽을 깔고 그리고 향수를 처음 안 소년처럼 구름을 모아 동자(瞳子)에 띄웠고, 나는 한 아름 벅찬 바다를 품은 듯 당신과 가을을 느끼기에 한때 죄를 잊었습니다.
마치 사람이 처음으로 자기 벗었음을 알던 옛날 에덴의 그 억센 경이(驚異) 같은 것이 분수처럼 가슴에 뿜어오르고
만산(萬山) 피 같은 홍엽(紅葉)-
만산 불 같은 홍엽-
아니 아니 만산 그리움 같은 그리움 같은 홍엽에서 모든 사랑의 전설들이 검붉은 포도주처럼 뚝뚝 떨어졌습니다.
무슨 청량한 과즙처럼 바람이 풍겨 오고 바람이 스처 갈 뿐, 사변(四邊) 폐망(廢茫)한 하루의 천지가 다만 가을과 당신만으로 가득 찼고, 나는 차라리 한갓 열병 앓는 소녀였음이 사랑한다는 것은, 참말 사랑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나, 또 하나의 내 목숨을 숨막히도록 느끼는 것이었습니다.
또 하나의 나, 또 하나의 내 목숨, 아아 응혈(凝血)처럼 뜨거운 것이 흘러 내리고-
나는 비수(匕首)처럼 하나의 이름을 던져 저기 피흐르게 태양을 찔럿으니, 그것은 이 커다란 우주 속에서 내가 사랑한 다만 하나의 이름이었습니다.
되도록이면- 나무이기를, 나무 중에서도 소나무이기를, 생각하는 나무, 춤추는 나무이기를, 춤추는 나무 봉우리에 앉아 모가지를 길게 뽑아 늘이우고 생각하는 학이기를, 속삭이는 잎새며, 가지며, 가지 끝에 피어나는 꽃이며, 꽃가루이기를
어디서 뽑아 올린 것일까 당신의 살갗이나 뺨이나 입시울에서 내뿜는 그것보다도 훨씬 더 향기로운 이 높은 향기는,
되도록이면- 바위이기를, 침묵에 잠긴 바위이기를, 웃는 바위, 헤엄치며 웃는 바위, 그 바위 등에 엎드려, 목을 뽑아 올리고, 묵상에 잠긴 그 거북이기를, 거북의 사색이기를, 그 바위와 거북의 등을 어루만지는 푸른 물결이기를, 또한 그 바위 겨드랑이나 사타구니에 붙어 새끼를 치며 산호이기를 진주알을 배고 와 뒹구는 조개이기를.
어디서 그런 재주들을 배워 왔을까. 당신의 슬기로운 예지로도 알아차리기 어려운 그 오묘한 비밀, 그지없이 기특하기만 한 생김새 다시없는 질서, 바늘끝 마치도 빈틈없고 헛점없는 이들의 엄연한 질서, 이 줄기찬 생활이여!
되도록이면- 과일이기를, 과일 중에도 청포도이기를, 청포도 송이의 겸허한 모습이기를, 그 포도알처럼 맑고 투명한 마음씨이기를, 표정이기를, 그 포도알 속에 살고 있는 저 주신(酒神)바커스의 어질고도 용감한 기품이기를
어디서 이 크나큰 생명은, 맥박쳐 오는 것일까, 그 무엇도 침범키 어려운, 이 장엄한 행진의 힘 당신의 혈관 속이나 세포처럼 독균의 침입을 입지않은 순수한 내부조직 아, 이 눈부신 산림이여, 사랑이여!
양명문 (楊明文, 1913.11.1-1985.11.21) 호 자문(紫門). 평양 출생. 1942년 일본 도쿄센슈[東京專修]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1939년 27편의 시를 수록한 처녀시집 《화수원(華愁園)》을 발간하여 시단에 등단하였으며, 1 ·4후퇴 때 월남하여 종군작가로 활약하였다. 1956∼1960년 자유문학자협회 중앙위원,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중앙위원, 1957∼1974년 펜클럽한국본부 중앙위원, 1957∼1960년 시인협회 이사를 역임하였고, 1957년 국제 펜클럽대회 한국대표로 참석하였다. 1960∼1965년 이화여자대학 교수, 1965∼1979년 국제대학 교수를 지냈으며, 1981∼1985년 세종대학 초청교수를 지냈다. 그의 시는 언어의 섬세하고 연약한 기교미를 배척하고 솟구쳐 오르는 느낌과 생각을 그대로 직정적(直情的)으로 토로하는 특징을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대한민국문학상을 받았다. 작품에는 시집 《송가(頌歌)》 《푸른 전설》 《화성인》 《지구촌》, 시선집으로 《이목구비》 《묵시록》, 장편 서사시 《원효》 등 다수가 있다
'감기 조심하세요'의 성우 장유진, 22년 교통방송 DJ 마감
다른 방송까지 합치면 28년… 남편 장례 때 빼곤 개근했죠
청취자가 '얼굴 보고 싶다'며 무작정 찾아오기도 했어요
22년간의 교통방송 DJ 생활을 끝낸 장유진이 서울 강남의 한 카페 앞에서 미소 지으며 포즈를 취했다. 그는“오랫동안 내 목소리로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고 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22년간의 교통방송 DJ 생활을 끝낸 장유진이 서울 강남의 한 카페 앞에서 미소 지으며 포즈를 취했다. 그는“오랫동안 내 목소리로 사람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고 했다. /채승우 기자 rainman@chosun.com
"매일 새벽 여러분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