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댓 마스터피스 (All That Masterpiece)
[명작의 모든 것]이란 뜻의 한국 대중음악 명반 컬렉션이 발매됩니다.
80-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의 르네상스 시대를 열었던 매혹적인 마스터피스들이 24비트 디지털 리마스터링과 초호화 가사집, 그리고 초판 한정 Gold CD로 부활합니다.
[올 댓 마스터피스 - 동물원]
평범해서 비범했던 등장
1980년대 후반 동물원의 등장은 가요계에 잔잔하지만 결코 쉽게 끝나지 않을 파장을 만들었다. 동물원은 가장 평범했지만 그래서 가장 특별했다. 그들의 음악은 덜 다듬어진 듯 거칠고 투박하고 때로는 장난스럽기까지 했지만 그것은 유치하거나 부족함이 아니라 그들만의 개성과 매력이 되었다. 모두가 특별한 것을 원하고 모두가 완벽한 것을 추구할 때 그들은 어설프고 덜 세련된 모습으로 세상과 만났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바로 그 점에 환호했다. 그곳에서 자신과 가장 가까운 조금은 모자라지만 순수한 자화상을 발견했던 것이다. 그 감성의 틈바구니를 동물원은 영민하게 파고들었다. 그 모든 것이 애초부터 계산된 것이었다면 그들은 탁월한 지략가일 터이지만 미루어 짐작컨대 결코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아마도 그것이 그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었을 것이고 다만 그것이 시대가 원했던 정서의 한 단면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졌을 것이다.
건전가요 있는 1집과 없는 2집
1988년 1월 발표된 동물원 1집은 가요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졌다. 타이틀곡 <거리에서>는 대학가와 다운타운가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으며 방송에서도 심심치 않게 전파를 탔다. <거리에서>를 비롯해 <잊혀지는 것>, <변해가네> 등을 만든 김창기의 송라이팅 능력은 이미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고 유준열도 <말하지 못한 내사랑>을 통해 만만치 않은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룹의 보컬리스트는 후일 한국 포크의 거장으로 자리매김되는 김광석이었지만 정작 앨범에서 그가 부른 노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거리에서>는 김광석이 불렀지만 <말하지 못한 내사랑>은 김광석과 유준열이 함께 불렀고 <잊혀지는 것>과 <비결>은 김창기가, <변해가네>는 박기영이, <어느 하루>는 박경찬이 불렀다. 대체로 자기가 만든 곡은 자신이 스스로 부르고 있는 모양새다. 이렇듯 동물원은 여타의 그룹들처럼 포지션별로 멤버를 갖춘 꽉 짜여진 형태의 그룹이 아니라 아마추어 노래 동아리와도 같은 느슨한 형태의 협업체제였던 것이다.
1집의 예기치 못한 성공은 그들의 행보를 빠르게 했다. 그 해가 가기도 전에 불과 아홉달 만에 동물원은 다시 2집을 발표했다. 2집에서는 한층 더 탄탄해진 스타일과 안정된 편곡을 보여주었지만 그들만의 순수한 감수성은 훼손되지 않았다. 김창기는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와 <혜화동>을 통해 히트곡 작곡가로서의 위상을 확고히 했고 유준열은 <새장속의 친구>에서 다시 한 번 그만의 개성을 한껏 뽐냈다. 하지만 1집과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보다도 박기영이 <별빛 가득한 밤에>와 <잘 가>로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2집은 1집에 비해 완성도 면에서 진일보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상업적으로도 전작을 뛰어넘는 성과를 거두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차이는 1집에는 건전가요 <아! 대한민국>이 수록되어 있지만 2집에는 건전가요가 없다는 사실이다. 당시에는 군사정권의 영향으로 음반을 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전가요(보통 LP의 B면 마지막 곡으로 수록되었다)를 실어야만 했는데 동물원의 1집과 2집 사이, 그러니까 1988년 봄에서 가을 사이에 이 제도가 폐지되어 음반에서 생뚱맞은 건전가요가 사라졌던 것이다.
동물원이 그린 아주 특별한 서정
동물원이 등장했던 80년대 말은 한국사에서는 과도기적 시기였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엄혹한 군사독재의 장막이 걷히고 있었지만 진정한 민주화의 길은 아직은 요원했다. 대학은 여전히 변혁운동의 깃발 아래 있었고 캠퍼스는 언제나 매캐한 최루탄 냄새로 가득했다. 그런 속에서 많은 이들은 이중생활을 했다. 숱한 날들을 소주잔을 기울이며 시대의 아픔을 이야기하고 그 때마다 민중가요를 불렀지만 집에 돌아와서는 동물원이나 여행스케치의 노래를 들었다. 대표적으로 내가 그랬다. 아직은 남아있던 80년대의 엄숙주의와 다가올 90년대의 자유주의 혹은 개인주의의 분위기가 혼재하던 시기였다.
동물원의 노래들은 그 중간지대에 위치한 아주 특별한 좌표였다. 운동권의 엄숙주의가 애써 외면하려 했던 개인적 영역의 고민들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드러냈지만 주류 가요판을 지배하던 뻔한 사랑타령과는 격을 달리했다. 동물원이 전하는 감성은 순수하고 투명했으며 편안한 휴식과도 같았다. 바로 그 것이 동물원이 그린 아주 특별한 서정이었다. 많은 이들이 그 안에서 편안한 안식처를 찾았으며 따뜻한 위안을 얻었다.
그것은 어쩌면 음악을 대하는 그들의 태도에서 기인하는 바도 클 것이다. 흔히들 자기가 정말로 좋아하는 일은 직업으로 삼지 말라고 한다. 그것이 직업이 되는 순간 생존의 수단이 되고 지긋지긋안 일상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동물원의 멤버들은 의사와 회사원 등 각자 음악과는 무관한 별도의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물원의 이름으로 뭉쳐 음악을 했다. 그런 느슨함이 결국 1집에서 7명으로 시작했던 멤버가 줄고 줄어 지금의 3인조가 된 원인이 되었을 터이지만 그런 체제가 가진 강점도 분명히 있다. 동물원이 계속해서 소년의 투명한 감수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내가 두고 온 꿈들
나는 노래방에 가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지만 어쩌다 가게 되면 꼭 동물원의 <우리가 세상에 길들기 시작한 후부터>를 부른다.'고등학교에 다닐 때 라디오와 함께 살았었지. 성문종합영어보단 비틀스가 좋았지...'라는 가사가 라디오를 참 많이 좋아해서 지금은 라디오 PD가 되어있는 내 모습 그대로인 듯 하여 반갑고 또 반갑기 때문이다. 동물원의 노래 중에 가장 좋아하는 한 곡을 꼽으라면 1집에 있는 <잊혀지는 것>이다. ‘사랑이라 말하며 모든 것을 이해하는 듯 뜻모를 아름다운 이야기로 속삭이던 우리...(중략)...사랑의 아픔도 시간 속에 잊혀져 긴 침묵으로 잠 들어가지’, 이렇듯 사무치는 쓸쓸함과 허전함을 담담하게 노래하는 곡도 없다. 과거는 끊임없이 미화되는 것이라 했다. 추억이 아름다운 것은 그 때문이다. 동물원이 전하는 서정은 쓸쓸하지만 그것은 아주 적절하게 미화된다. 그들의 노래가 쓸쓸하지만 아름다운 것은 그 때문이다.
'언젠가 내가 두고 온 꿈들이 자라고 있는 곳', 동물원 2집 재킷에 씌여 있는 글씨다. 동물원의 노래들은 정말 그런 것 같다. 우리가 잃어버린 꿈을 찾고 싶어 한사코 돌아보는 언젠가 지나온 바로 그 곳에 동물원 1,2집은 자리하고 있다. 너무나 애틋한 모습으로... - KBS 라디오 PD,「365일 팝음악사」저자 정 일 서 -
명반은 명예의 전당에 보관된 먼지 쌓인 음반이 아니라, 가까이 두고 듣는 음반을 지칭한다...
-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의 著者 박 준 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