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방학' [종이우산]
'가을방학' 입니다. 작년 11월 이후 약 1년 만에 신곡을 들려드리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희가 내년(2015년) 가을 정규 3집 발매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요. 그전에 저희의 새 노래를 듣고 싶어 하신 분들도 계시고, 또 연례행사가 되어버린 연말공연 다들 잘 지냈나요에서도 들려드릴 수 있도록 이번에 이렇게 3곡의 노래를 준비했습니다.
이번 3곡의 특기할 만한 사항은 프로듀서 이병훈 님의 주도로 이루어진 현 편곡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영화음악이나 프로듀싱한 음반에서 현을 잘 다루신다고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사실 첫 작업이었던 가을방학 1집 때는 스트링 편곡이 큰 역할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화려한 스트링은 곡이나 보컬 음색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신 것 같습니다만, 이번에는 마음을 바꾸셨는지 꽤 본격적인 현이 들어있습니다. 어떤 점이 달라졌는지, 계피의 목소리와는 어떻게 어울리는지 들어보시는 것이 하나의 포인트가 될 수도 있겠네요.
"종이우산" 은 1집의 "곳에 따라 비"이후로 오래간만에 발표하는 본격적인 비 노래입니다. 비 오는 날에 느낄 수 있는 감정 중 특히 성찰적인 부분에 주목해서 가사를 써보았습니다. 사람이 시간을 보내는 방식을 두 종류로 나누면 앞으로 올 날을 염두에 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을 돌아보고, 또 자신이 떠나온 것을 돌아보기에 비 오는 날 만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감정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지 또 그 감정에는 왜 특유의 표정이 따라오는지, 그런 생각에 빠진 동안 새로운 음악이나 새로운 사람이 들어올 자리는 없을 거란 데에도 생각이 미쳤습니다. "종이우산" 이란 제목은, 비라는 단어를 쓰지 않으면서 비 오는 장면을 그리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짓게 되었습니다.
많은 문화권에서 여자애 이름을 지을 때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단어를 붙이곤 합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대체로 남자애보다 여자애 이름에 특히 그런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닌데요. "지혜"는 2집 앨범에 수록된 "진주" 와 마찬가지로 여자이름인 동시에 그 자체로 뜻을 가진 단어의 연작으로 만든 곡입니다. 지금까지 가깝든 멀듯 조금이라도 알아온 많은 지혜의 이미지가 겹쳐있는데요.
막 풀어져서 즐기지도 못하면서 지나고 나면 확 놓지도 못하는 못난 한국 여자아이, 자기가 떨어뜨린 안경을 자기가 밟아버리고 마는 그런 아이의 이미지를 그리면서 만들었습니다. 사운드면에서는 졸업식 날 혼자 옥상에 올라가 졸업식 풍경을 바라보다가 그대로 해가 져버리는 느낌이 들었으면 했습니다. 프로듀서인 (이)병훈 님께서 어딘지 학생들의 기악곡 졸업연주 같은 느낌의 현 편곡을 해주셨습니다.
"클로버"는 가을방학으로서는 드물게 시도해보는 왈츠 박자의 곡입니다. "아이보리"에 이어 계피가 작사에 참여한 곡이기도 합니다. 추억이 깃든 물건이라도 꼭 필요하지 않으면 버리는 편이, 공간에 기억이 아닌 현재의 자신이 있을 곳이 생기죠. 창문을 열어 공기를 바꾸는 것과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계속 같이 있으려면 자신을 정리하기 위해 손을 놓고 혼자 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늘 쇄신하며 떨어져 있다고 해서 이어져 있지 않은 것이 아닌 이상적인 관계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그립지만 안심할 수 있어서 가슴이 찢어지지도 않고 이내 무관심해지지도 않는 한결같은 온화함을. 2014년 10월 가을방학 정바비+계피 드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