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방학 비정규 [마음집]
이 얘기를 제일 먼저 해야겠네요. 이 앨범은 흔히 말하는 '베스트 음반’은 아닙니다. 저희 정규 앨범 3장에 들어간 곡들은 들어있지 않아요. <가끔 미치도록 네가 안고 싶어질 때가 있어>도 없고, <언젠가 너로 인해>도, <이별 앞으로>도 없습니다. 기존에 발표했던 노래의 모음집은 대략 맞습니다. 이번 [마음집] 앨범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가을방학이 디지털 싱글로만 발표했던 총 열 곡을 모으고 거기에 처음 들려드리는 신곡 두 곡을 더한 앨범입니다.
보충하자면, 이제까지 저희 싱글의 실물 음반들은 모두 공연장 한정으로 판매했습니다. 디지털로는 들을 수 있었지만, 실물 음반을 가지려면 직접 공연장으로 오셔야 했지요. 음반을 공연장에서만 파는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요. 더욱 많은 분들이 공연을 보러 오셨으면 하는 바람이 첫째, 공연을 보고 난 기억을 물성으로 관객분들의 마음에 아로새기고자 함이 둘째입니다. 종이봉투에 든 몇천 원짜리 플라스틱 조각을 만지는 것으로 오래전의 기억이 되살아난다면 참 멋진 일이니까요.
하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공연장에 못 오셨던 분들이 계시는 것도 사실이고, 그런 분들은 음원으로만 이 곡들을 접해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지요. 그렇다고 저희의 원칙을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라 계속 고민이었는데요. 그러던 차 2017년 새 싱글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번 모음집의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기존 곡들을 포함하여 모음집 형태로 만들면 어떨까, 짧게는 3년 길게는 6년 전에 발표한 노래들이니까 새로 마스터링을 한다면 의미가 있겠다 싶었지요.
보통 마스터링은 기술적인 영역이라 일반적인 청자가 차이를 느끼기 쉽지 않으실 텐데요, 이번에 새로 마스터링을 하면서는 때마침 저희가 해오던 스튜디오에 새로 아날로그 테이프 레코더가 들어왔더라고요. 몹시 어렵게 구하셨다는 아날로그 장비를 거친 덕분에 소리 질감을 더욱 명료하고 풍부하게 만들었습니다. 저희도 처음 시도해본 방식이었는데, 조용한 곳에서 들으시면 안 들리던 악기 소리가 들리는 경험을 하실지도 모르겠네요. 특히 목소리가 더욱 뚜렷하게 들리는 느낌은 확실히 받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신곡이 두 곡 들어있습니다. <이름이 맘에 든다는 이유만으로>는 생각이 무진장 많은 사람, 어쩐지 긍정회로보다는 부정회로가 더 쉽게 돌아가 버리는 사람이 사랑에 빠질 때를 표현한 곡입니다. 상대를 좋아하는 이유를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만큼이나 좋아하는 이유로는 그 어떤 말로도 전부 설명이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넌 걔가 왜 좋아?" 라는 친구의 질문에 그저 별스럽지 않은 이유를 들면서 배시시 웃는 표정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사실 누군가를 좋아할 때의 그 진짜 이유는 어쩌면 본인도 모르는 게 아닐까요. 남에게도 혹은 자기 자신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떨리는 채로 남아있겠죠.
<스톱워치>는 초여름 밤 혼자의 시간, 낮보다 시원해진 공기, 작은 방의 열린 창문과 불어오는 바람, 좋아하는 음악 그리고 캔맥주라는 멋진 조합을 담아 보았습니다. 완벽한 순간이라는 것은 미처 눈치챌 새도 없이 살며시 찾아오지요. 우리는 홀려 있다가 문득 지금이 그 순간이라는 걸 알고선 놀라고 기뻐합니다. 그러다 다음 날 아침엔 이런 기분이 다 사라졌을 거라는 데 생각이 미치고 조금 시무룩해지지만, 다시 바람이 불어오고 음악이 흐르고, 다시 홀리고, 마침내 생각에서 빠져나오고는 곧 취하게 됩니다. 어차피 여름밤은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까요.
다양한 시기에 만들어진 노래들을 쭉 모아서 보니 지금껏 쭉 마음을 노래해 왔구나, 수없이 바뀌고 풍성하며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강하게 떨리는 마음을 표현해 왔구나,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다는 게 행운이었구나 하고 새삼 느낍니다. 공연장에 와주셨던 관객분들의 표정도 다시 떠오르고요. 음악이라는 형태로 마음이 머무는 집을 또 한 번 세상에 보냅니다. 여러분의 마음도 이 [마음집]과 함께 공명하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2017년 7월 가을방학 드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