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가 백남옥에게는 ‘매혹의 목소리’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녔다. 노래를 부르는 이들 모두가 나름대로 매력적인 목소리를 지니고 있는데 너무나도 당연한 이 수식어가 백남옥의 전유물처럼 된 것은 무슨 이유일가? 듣는 이들의 가슴을 울리는 감동적인 노래가 목소리만으로 될까?
이러한 의문은 ‘사랑’의 첫소절을 부르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노래에는 애잔한 고독감이 배어 있었다. 우리 가곡만이 갖는 고독감이 진솔하게 다가오는 순간, 스튜디오 콘트롤룸의 스탭진 모두 무릎을 쳤다. 그녀의 고독과 슬픔 속에는 즐거움과 위로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녀의 ‘매혹’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었다. 단순한 보이스 컬러로 감동을 줄 수는 없다.
진정한 감동은 그 이후에 이어졌다. 우리는 오케스트라 반주를 먼저 녹음하고 이어서 노래를 담기로 했다. 백남옥은 지휘자와 악곡의 느낌을 공유하기 위해 스튜디오의 드럼부스에서 헤드폰을 끼고 노래를 불렀다. 오케스트라에게 기준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었다. 오케스트라는 본 녹음이었지만 노래는 가녹음이었다. 이럴 때는 보통 콧노래나 자신의 느낌을 제시하는 정도로 가볍게 처리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그녀는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를 불렀다. 이렇게 3곡을 담고 잠시 휴식. 그녀를 위해 라지에터를 부스로 옮기다가 문득 그녀의 눈에 맺힌 눈물방울을 보았다.
“연륜이 쌓일수록 우리 가곡이 더욱 감동적으로 다가와요.”
자신의 눈물을 보였기 때문일까? 그녀는 가사가 갖는 내용들이 눈물 없이는 부를 수 없다고 했다. 그녀는 가녹음이라도 가슴이 뭉클거려 허투로 부를 수 없다고 했다. 본 음반에 수록된 노래는 그녀가 가녹음으로 부른 것들이다. 이렇게 해서 가녹음을 CD에 담는 이변이 생겼다.
우리는 메조 소프라노를 ‘가장 인간적인 소리’라고 한다. 음악평론가 한상우는 백남옥이 부르는 우리가곡을 두고 ‘긴여운을 허공에 뿌리는 예술적 표출’이라고 했다. 허공에 남는 긴여운. 허공에 남는 그 여운은 포물선을 그리며 우리의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허공에 남는 여운을 감지하는 것은 시선이 아니라 가슴이다. 그 가슴이 인지한 것. 그것은 바로 무거운 가슴을 가진 ‘인간적인 소리’인 것이다.
백남옥이 최고의 성악가로 팬들의 지속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는 과장됨이 없는 진솔한 노래와 품격에서 비롯된다. 76년 독일 유학을 마치고 귀국. 아카데믹하고 차원 높은 정신세계를 노래하던 그녀가 연륜을 다하며 우리가곡이 지닌 진정한 멋스러움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우리의 시와 선율에 담긴 삶의 깊이를 노래하면서 그녀 자신이 느끼는 행복감을 나누어 주는 일이 그녀는 무엇보다도 행복하다. 사랑은 남에게 퍼줄수록 많이 솟아난다던가. 그녀는 자신의 행복을 나누어주며 내부에서 솟아나는 행복감을 맛본다. 이러한 백남옥이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무대에 선 모습을 두고 실창수 시인은 ‘산나리꽃’이라고 노래했다. “당신 목소린 흐느끼는 달밤 대바람 소리‘라고도 했다. 80년대 중반, 세종문화회관에서 오펜바하의 오페라 ’호프만의 이야기‘를 캐주얼한 차림으로 리허설하던 모습은 내겐 튜울립과 같았다.
김진묵(음악평론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