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에 태어난 올라퍼 아르날즈는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카비크(Reykjavik)에서 조금 떨어진 작은 마을에 살면서 다양한 친구들과 함께 각양각색의 음악적 경험을 쌓아갔다. 독일의 메탈 밴드 헤븐 셸 번(Heaven Shall Burn)의 앨범 [Antigone]의 [Intro]와 [Outro]를 제공해주기도 했으며, 아이슬란드 하드코어 밴드 파이팅 쉿(Fighting Shit)과 케레스틴(Celestine)에서는 드럼을 연주하기도 했다. 친구의 밴드였던 마이 섬머 애즈 어 샐베이션 솔져(My Summer as a Salvation Soldier)에서는 벤조와 기타를 연주한다. 클래식적 기반을 바탕으로 전자음과 여러가지 시도를 과감하게 도입해내면서 이러저러한 요소들을 한데 집대성시켜낸, 하나의 실체에 닿아가려는 노력을 이어갔다.
아무튼 그러는 와중 2007년 10월, 자신의 첫 솔로작 [Eulogy for Evolution]을 발표하면서 실내악과 일렉트로닉의 접목을 본격적으로 완수해낸다. 2008년도에는 [Variations of Static] EP, 그리고 7일간 한 곡씩 업데이트하면서 차례로 음원을 공개했던 [Found Songs] 프로젝트 이후 아이슬란드 큰형들인 시겨 로스(Sigur Rós)와 함께 투어를 다닌다. 참고로 이 두 EP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한국에만 합본형태로 발매되었고, 때문에 파스텔뮤직 웹사이트에는 해외 리스너들의 음반 구입문의가 이어지기도 했다. 2008년도 바비칸 홀에서 펼쳐졌던 올라퍼 아르날즈의 공연의 경우 BBC 라디오 1에서 DJ 자일스 피터슨(Gilles Peterson)에 의해 "2008년도 베스트 라이브 세션"으로 꼽히기도 했다. 2010년도에는 [They Have Escaped the Weight of Darkness]를 발표하면서 여전히 모던 클래시컬 팬들의 기대에 부응해냈다.
2011년 11월 8일에는 독일에서 열린 류이치 사카모토(坂本龍一) 공연 오프닝을 담당한다. 둘 사이에는 몇몇 교집합 점들이 있었는데, 류이치 사카모토의 [Energy Flow] 같은 히트 피아노 연주곡을 좋아한다면 올라퍼 아르날즈의 곡들 또한 직접적으로 가슴에 와 닫게 될 것이다. 그 밖에도 최근에는 엘렌 바킨(Ellen Barkin)이 주연/프로듀스한 영화 [Another Happy Day]의 사운드트랙 또한 완료해냈다. 확실히 이쪽 씬에서의 어떤 정해진 길을 착실하게 걷고있다는 인상을 주면서 성장해나갔다.
같은 동네 출신의 요한 요한슨(Jóhann Jóhannsson), 왕성하게 활동 중인 비슷한 연배의 니코 멀리(Nico Muhly), 피아노연주 중심의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막스 리히터(Max Richter), 그리고 타입(Type) 레이블 소속의 아티스트들을 비롯, 더 나아가서는 게빈 브라이어스(Gavin Bryars), 마이클 니만(Michael Nyman) 등의 대선배들의 작품들의 팬이라면, 그의 음악에 매혹될 확률이 높다. 역으로 만일 당신이 올라퍼 아르날즈의 팬인데 앞서 언급한 인물들이 낯설다면 이들의 작업 또한 좋아하게 될 것이다. 참고로 그의 사촌 올뢰프 아르날즈(Ólöf Arnalds) 역시 멈(Múm)의 투어멤버로써의 활동 이외에도 왕성하게 음악작업을 전개해나가고 있다.
Dyad 1909
어느덧 올라퍼 아르날즈는 무용극 사운드트랙마저 담당하게 된다. 이런 류의 기획은 시겨 로스가 참여했던 머스 커닝엄(Merce Cunningham)의 무용극 [Ba Ba Ti Ki Di Do]로 우리에게 익숙할 것이다. 심지어 시겨 로스는 직접 한국에서 이 레파토리 공연까지 하고 갔었다. 발레, 그리고 현대무용에 종사하는 이들에겐, 이렇게 어느 정도 여백을 지닌 음악들이 비교적 매력있게 다가올 것이며, 이 두 분야 간의 브레인스토밍은 대부분 성공적인 결과물로 돌출되곤 했다.
영국 현대무용의 중추적 인물인 안무가 웨인 맥그레고르(Wayne McGregor)는 영국 런던 오페라 하우스의 로열 발레단 총감독으로, 스스로가 설립한 댄스 컴퍼니 랜덤 댄스(Random Dance)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 들어간 이후에는 발레적 색채가 더욱 강해졌다는데, 신체성을 추구하면서 또한 간결한 발레의 움직임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전세계 수많은 댄서들이 그의 작품에 참여하기 위해 날마다 훈련 중이라고 한다.
웨인 맥그레고르는 무대 위에서의 명성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개입해내면서 그 이름을 널리 알려갔다. 영화의 경우 [해리포터(Harry Potter)] 시리즈에서 수백명의 엑스트라를 포함한 캐스트들의 움직임을 직접 지도했던 바 있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작년 라디오헤드(Radiohead)의 뮤직비디오 [Lotus Flower]에 나오는 톰 요크(Thom Yorke)의 몸부림에 가까운 그 ‘춤’이 바로 웨인 맥그레고르의 작품이었다. 그는 톰 요크의 개인적, 신체적 특징을 끄집어냈는데, 안무가로써의 일 중 하나가 바로 이렇게 신체적 특징을 끄집어 내는 것이고, 그는 훌륭한 움직임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에 매우 손쉽게 작업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냥 술 마시고 막 추는 춤인줄 알았는데 그런게 아닌가보다. 내가 예술적 소견이 전혀 없는 것 같다.
세르게이 디아길레프(Sergei Diaghilev)가 설립한 전설의 발레단 발레 루스의 영향을 받아 제작된 작품이 바로 [Dyad 1909]이다. 인간의 희노애락의 감정이 비로소 본능적인 근육으로 표현되는데, 이 역시 근육의 움직임이 미와 춤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음악과 일체화해 나가느냐가 관건이었을 것이다. 몸의 리듬이 특정 공간 안에서 다양하게 전개되어지는 본 작의 영상은 유튜브를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 이는 영국 BBC와 여러 유럽 예술채널에서 이미 방영됐던 바도 있었다. 음악이 마음에 든다면 반드시 영상을 확인해 보실 것.
올라퍼 아르날즈의 음악이 언제나 그렇듯 피아노와 현악기가 기본이 되고있다. 두 명의 바이올린 연주자와 한명의 비올라, 그리고 첼로 연주자와 함께 본 작에서 그는 건반 연주, 전자효과, 그리고 엔지니어까지 겸업해냈다. 전 7곡, 총 24분, 바이닐로는 10인치로 발매됐다. 참고로 앨범의 자켓에 볼 수 있는 푸르딩딩한 사각물체는 바로 무대 세트다.
작품의 시작을 알리는 인트로 [Frá upphafi] 이후, 남녀 커플이 중심이되어 진행되는 서정적인 현악+피아노 곡 [Lokaðu Augunum]이 흘러간다. 무거운 베이스, 역동적인 인더스트리얼 풍의 전자음이 기계적 배경과 함께 다수 인원들의 춤과 맞물려지는 [Brotsjór], 차가운 목소리의 나레이션 이후 차분한 피아노가 또 다시 남녀 커플의 율동에 집중하는 [Við vorum smá…]가 순차적으로 전개된다. 참고로 [Lokaðu Augunum]와 [Við vorum smá…]는 그의 과거 EP [Variations of Static]에 수록됐던 곡들의 공연용 수정버전이며, [Brotsjór]의 경우엔 이후 미국의 오디션 프로그램 [So You Think You Can Dance] 8시즌에서 들을 수 있었다.
데뷔작 [Eulogy for Evolution]의 수록곡인 현악기의 격정적 절규가 돋보이는 [3326] 사이로 격렬한 움직임이 다시금 시작된다. 이 격렬함은 클래식과 드럼 앤 베이스를 뒤섞은 듯한 [Til Enda]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지면서 극과 음악은 절정으로 향해간다. 마지막에 흐르는 [...Og Lengra]를 통해 결국 극은 서정적이고 평온한 엔딩을 맞는다.
기존의 자신의 곡들을 제외한 무용극의 용도로 작곡된 음원들은 이전 작들보다 노이즈와 효과가 조금 희미해진 감이 없지 않지만 충분히 엄숙하고 아름다운 프레이즈가 듣는 이들에게 스며들어갔다. 격렬하고 앱스트랙한 일렉트로닉 소스들에 클래시컬한 악기들이 엮여있는 구성은 월즈 엔드 걸프렌드(World's End Girlfriend)의 색깔하고도 어느 정도 일치된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그의 작품들 또한 올라퍼 아르날즈의 소속사인 이레이즈드 테입스(Erased Tapes)에서 발매될 예정이라고 한다.
무미건조한 듯 서정적인 이 악곡들에서도 재능의 폭발을 쉽게 목격할 수 있었다. 나름의 스토리를 가진 음악과 극의 어레인지가 돋보이며, 꽤나 집중하게끔 만들면서 순조롭게 귀에 들어온다. 본 작을 통해 영국에서는 더욱 폭 넓은 팬층을 얻게 됐다고 한다. 아직도 젊고, 정력적인 활동을 펼쳐보이는 올라퍼 아르날즈의 향후 프로젝트 또한 기대케 만드는 비범한 이력서다.
Living Room Songs
마치 존 케이지(John Cage)의 [Living Room Music]을 연상시키는 제목을 가진 본 작은 7개의 조용한 소품으로 채워져 있다. 2009년도에 완수해냈던 [Found Songs]의 기획과 일맥상통하는, 속편 격의 프로젝트였는데, 이 역시 2011년 10월 3일 월요일부터 매일 한 곡씩 영상과 MP3, 그리고 한 장의 포스트 카드를 7일간 자신의 사이트(http://livingroomsongs.olafurarnalds.com)에서 공개해나갔다. 제목처럼 실제로 자신의 집 거실(=Living Room)에서 작곡과 녹음을 진행했으며, 12월 경에 마스터링 작업을 거쳐 비로소 음반의 형태로 앨범이 완결됐다. 총 7곡, 23분의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고, 엘라 마리아 아르나도트리(Erla María Árnadóttir)가 그린 7장의 그림 또한 음반에도 포함됐다.
녹음 현장을 담은 영상은 오리지날 수입반에 동봉된 DVD에 수록되기도 했는데, 이 영상들은 유튜브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인트로덕션 챕터를 통해 프로젝트의 과정과 취지에 대한 설명이 이어지는데, [Found Songs]와 비슷한 기획이지만 직접 녹음하는 풍경을 보여주겠다고 말했던 만큼 뭔가 직접적인 제약, 혹은 증명 같은 것을 명확히 하려는 듯했다. 아무튼 느긋하게 잠기게끔 만드는 아이슬란드 특유의 심상, 그리고 풍경이 마찬가지로 펼쳐져 나갔다.
섬세한 음색의 피아노, 그리고 쇼파에 앉아 연주하는 현악파트가 인상적인 [Fyrsta]로 앨범이 시작한다. 고전적인 슬픔을 머금고 있는 [Near Light]는 현악기 사이로 약동하는 일렉트로닉 비트를 운용해냈는데, 영상에서 신시사이저의 쳐야 할 건반에 테이프를 붙여놓은 대목이 인상적이다. 올라퍼가 기존에 연주해왔던 피아노가 거의 리듬을 완성해내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피아노를 연주하지 않고 오직 현악기들만이 진행되는 [Film Credits]에서는 직접 현악파트를 지휘하기도 한다.
너무나 맑고 연약한 업라이트 피아노의 울림으로 이루어진 [Tomorrow's Song]에서는 삐그덕 거리는 의자소리까지 그대로 들을 수 있었다. 확실히 업라이트 피아노에서 가능한 뭉뚝한 톤이 귀에 상냥하게 다가온다. 바이올린, 비올라 연주자가 쇼파에 앉아 올라퍼 아르날즈의 피아노와 함께 연주하는 [Ágúst] 또한 센티멘탈한 기운을 전달한다.
[Lag Fyrir Ömmu(Song for Grandma)]의 영상이 꽤나 흥미롭다. 곡의 절반동안 올라퍼 아르날즈 혼자 피아노를 치는 장면만을 보여주다가 카메라를 돌리자 방의 반대편에 14인조 오케스트라가 서서히 펼쳐지는 장관을 연출시켜낸다. 이는 공연이 아닌 음악을 듣는 이들이 곡이 진행되는 동안 다음 부분에 어떤 악기가 전개될지를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지점을 영상으로 표현해낸 듯 했고, 꽤나 성공적인 효과를 만들어 냈다.
마지막 곡 [This Place is a Shelter]의 경우 연주하는 이들 이외에도 남녀노소 다양한 청중들이 바닥에 앉아 이 음악을 경청하는 따뜻한 풍경이 영상에 펼쳐진다. 뭐 톰 웨이츠(Tom Waits)의 스튜디오 라이브 앨범 [Nighthawks at the Diner] 같은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것은 실제로 그의 집 거실에서 녹음됐다는 차이 정도가 있을 것이다. 청중들의 숨소리 또한 이 음원에 녹음되어있는 셈이다.
시계 소리를 비롯한 생활음 또한 다수 감지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생활음들은 단순히 어떤 기록의 의미의 차원을 넘어 그 공간에 존재하는 공기, 혹은 음악의 일부로써의 역할을 해내는 듯 싶었다. 2011년 10월, 실시간으로 MP3와 함께 유튜브에 이 프로젝트의 영상들이 올라왔을 때 누군가는 이런 댓글을 남기기도 했다. "내 인생 중 최고의 한 주였다. 이 음악들에 감사한다."
곡 제목 앞에 날짜를 표기해놓았기 때문에 이는 흘러가는 날들을 담담하게 표현해낸 작품일 것이라 지레짐작해볼 수도 있겠다. 지나치게 장황하지 않은 3분 내외의 슬프고 우아한 피아노 프레이즈는 요염하게, 그리고 친밀하게 다가온다. 선율적인 아르페지오가 전개되고 가끔의 조바꿈이 이행되는 와중, 얌전한 동시에 감정적인 멜로디가 펼쳐진다. 그리고 이 기분은 조용하고, 그리고 뜨겁게 지속된다. 북유럽 아티스트만이 가능한 전개라던가 감각 또한 엿볼 수 있다.
자신의 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편안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은 분명 음악을 감상하는 데에 있어 어떤 직접적인 그림을 제시한다. 이것이 음악감상에 있어 득이 될지 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가사가 없는 이 추상적 음계들을 보다 현실적 이미지로 받아들여지게끔 유도해냈다. 연출이든, 혹은 그렇지 않든 간에 이는 일종의 기록과정을 엿보는 기분을 줬다.
앞에 언급한 영상들을 굳이 일일이 보지 않더라도 이미 충분히 레코딩 했던 방 전체의 공기를 체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소리들이 당신의 방-혹은 거실-에서 흐를 때 어떤 방식으로 그 공간을 물들여져 갈지, 혹은 어떤 시간을 만들어 줄지 또한 중요한 감상포인트가 될 것이다. 참고로 내방은 너무 드러워서 이 음악이 차분하게 들리지는 않고있다. 방좀 치우고 다시 들어봐야겠다.
청취자들의 어떤 심리를 파악해가고 있는듯한 이 친밀한 음악들은 서두르지 않고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다. 마음을 치유해주는 온기를 지닌 곡들은 오묘한 생명력을 지닌 채 우리네 일상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심플하지만 컴팩트하며, 그렇기 때문에 이해하기도 쉽지만, 가끔씩 이 음악들은 가슴이 뜨거워져 오는 순간을 선사하기도 한다. 무료하고 평범한 삶의 한가운데, 이따금씩 찾아오는 낯선 기쁨을 감지하는 어떤 희미한 순간처럼.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