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b>대수 9th <고민, Source of Trouble)</b>
평화와 사랑이라는 말이 공허해진 시대에 그것을 공허하지 않게 말할 줄 아는 예술가 -조한혜정(교수)
한대수-지구 밖으로 걸어가는 사나이, 내려온 음유시인-한국의 딜란 토머스 -양화선(조각가)
귀족의 육체와 평민의 영혼을 가진 주살사의 문명 비판 -김규항(문화평론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자유를 향한 고독한 걸음 -이정선(싱어송라이터)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의 소유자 -손무현(싱어송라이터)
좋다. 다른 말은 구차할 것 같다. -남규홍(SBS PD)
그의 노래는 삶의 회화. 그의 삶은 사랑의 노래. -김정태(KBS PD)
한대수는 소박한 소리 밥상을 차릴 줄 아는 사람이다. -홍신자(무용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정직하게 살아가는 한 유목민의 삽화. -박준흠(대중음악 평론가)
-한대수 사진시집 <침묵> 中-
한대수는 이토록 다양한 정의가 가능한 아티스트다. 그는 길지 않은 삶에서 만났던, 내가 격은 유일한 천재이자 광인이었다. 한대수와의 앨범 작업은 수십 번씩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아득함의 연속이었다. 레코딩은 2001년 11월 9일, 10일, 13일, 14일 15일. 5일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닷새라고 하지만 녹음 시간은 오후 7시부터 12시까지였으니 하루에 2 프로도 사용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 중 이틀은 세션들만이 연주한 날이었다.
한대수는 순간의 느낌, 최초의 감정을 숭배하는 아티스트였다. 그는 마이크에서 두 번 노래하지 않았다. 가사가 조금 틀려도, 리듬이 조금 엇나가도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양호합니다"라는 자신만의 긍정으로 일관했다. 레코딩 첫날 한대수가 스튜디오에 들어 왔을 때 너무나 당황했다. 그의 손에는 악보도 없었다. 공책에서 찢어낸 낱장의 종이에는 어떤 곡은 가사만 있었다. 그 위에 코드라도 그려져 있으면 다행이었다. 심지어 어떤 메모에는 제목만 덜렁 적혀 있고, 현장에서 가사를 써 내려가기도 했다.
"준비가 안 되셨으면 다음에 다시 하시죠?", "한번 더 부르시면 좋은 느낌이 나지 않을까요?" 그는 주변의 회유에 굴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준비되었다고 했다. 스스로의 음악에 불성실하지 않은가? 무책임하지 않은가? 라는 의심과 아쉬움을 표현했지만, "지금까지 발표한 모든 앨범을 이런 식으로 레코딩했다"라며 나를 안심시켰다. 공동 프로듀서로 임명한 나에게 의견을 묻고, 그것이 적절하다고 판단되면 넓게 수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행여 자신의 고집에 이견을 거듭하기라도 하면 공동 프로듀서이자 제작자인 사람 조차 스튜디오에서 쫓아내겠다고 엄포를 놓기까지 했다. 한대수는 대단한 집중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 집중력은 스튜디오 안의 모든 공기를 지배했다. 그는 스튜디오로 오는 먼 길을 산책하며 자신의 머리에, 가슴에 입력했던 노랫말을, 리듬을, 멜로디를 정리했다. 그것은 머리 속에 있던 감정의 조각들을 레코딩하는 가장 가까운 시점으로 옮겨가기 위한 그의 의식이자 창작 습관이기도 했다. 그는 고도의 집중력으로 극대화된 감정을 끄집어냈다.
세션들의 불만도 많았다. 모니터링을 한 후 "다시 한번 해 볼께요"라며 악기를 들고 스튜디오로 향하지만, 비록 당사자가 흡족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만족스러웠다면 "다시 해도 더 좋은 음악은 없다"라고 손을 잡아 끌었다. 그는 딱딱거리는 소리가 싫다고 메트로놈도 못 틀게 했다. 누군가는 이에 대해 '강간'이라고도 표현했다. 뒤늦은 고백이지만, 세션들만의 이틀간의 레코딩은 한대수 몰래 틀린 리듬과 멜로디를 수정한 시간이었다.
"리듬이 딱딱 맞고 멜로디가 매끈하게 표현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속에 깃든 사람의 감정이죠. 느낌이죠. 그 순간의 느낌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다시 찾으려 해도 증발되고 없어요. 나는 정확하지만 느낌이 없는 연주 보다는 비록 틀렸더라도 느낌이 살아있는 연주가 좋습니다"
그는 이렇게 우리의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한대수 9번째 앨범 <고민, Source of Trouble)은 모두가 이렇게 기록되었다.
'마리화나'는 2001년 5월 뉴욕에서 어느 젊은 여인의 '의약용 마리화나 합법 1인 시위'를 하는 광경을 보고, 그녀와의 인터뷰를 한 후 지었던 동명의 자작시(한대수 사진 시집 <침묵> P.216)에 리듬과 멜로디를 입힌 작곡이다. 이 노래는 2001년 10월 25일에 있었던 <The Last Solo Concert>에서 전인권, 강산에와 함께 노래했던 바 있다. 여기에서 한대수가 언급하고 있는 내용은 '마리화나의 찬미'가 아니다. 그는 무조건적인 금기를 명령하는 사회, 그리고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대중들의 굳은 의식, 닫힌 관념을 건드리고 있다. 그가 뜻하는 것은 사물에 대해, 현상에 대해 의심하고 토론하고 열린 대화를 하자는 '담론(談論)'의 형성이다. 더불어 Ganja-Manja, Weeds-Seeds, Spliff-Cliff, Reefer-Differ, Marijuana-You Wanna, 1930(Ninetten Thirty)-Dr. Leary, Devil-Devil, Cancer-Horse, Doobies-Movies, So Hard-Avant Garde와 같은 각운(Rhyme)의 표현에 주력하면서, 마리화나의 역사, 마리화나를 둘러싼 다양한 시각을 이야기하고 있다. 3집 <무한대> 이후 한대수의 음악 세계를 장악하고 있는 록적인 요소가 강하게 주입되어 있는 곡으로, 1960년대 히피 문화를 주도했던 포크와 록의 절충을 기하고 있다.
'호치민'은 베트남의 혁명가, 정치가, 구 베트남 민주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호치민'의 삶을 한대수식의 랩, 나레이션으로 기술하고 있는, 파격적인 스타일의 작품이다. 애초 한대수가 랩을 하겠노라고 했을 때, 모두들 농담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새로운 무엇인가를 기다렸다. 한대수는 <The Last Solo Concert> 공연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기타리스트 김인건과 김도균 그룹의 배찬우, 박동식에게 하나의 코드(Dm)만을 일러 준 채, 가이드 연주로 사용될 데쓰 메탈 풍의 맹렬한 기타 솔로와 록 리듬을 주문했다. 그 위에 한대수의 실로 신선한 나레이션과 당시 스튜디오에 있던 유일한 여성이었던 O2 뮤직 스튜디오의 레코딩 엔지니어 박윤정에게 "아 그래요"라는 대사를 맡겼다. 그의 설정은 할아버지가 꼬마 손녀에게 호치민의 삶에 대해 설명하는 대화 형식이었다. 그리고, 한대수의 의도를 정확하게 헤아린 김인건의 기타 솔로가 베트남전의 전운과 폭격에 대한 밑그림으로 다시 레코딩되었다. 록의 고향 영국에서 록과 블루스를 유학하고 귀국한 기타리스트 김인건은 데스 메탈 그룹 '메가 데쓰(Mega Death)'를 연상케 하는 과열된 기타 리프와 열정적인 솔로 프레이즈를 쏟아내며, 한대수가 시도하는 새로운 하드 록 스타일에 융단 폭격을 가하고 있다. 곡의 마지막 부분에 언급되는 '구엔아이콱', '판추치린', '구엔싱쿵', '구엔타트랑', '반티엔둥', '화왕빈', '트란바람', '판반동'은 호치민이 베트남 반공 정권의 감시를 피하며 가명의 나열이다. 그밖에 청량리, 팔때기, 신발대 등은 그냥 어감이 좋아 사용한 의미없는 명사이다.
'As Forever'는 마리화나와 마찬가지로 <The Last Solo Concert> 공연에서 처음 공개된 바 있는 곡이다. 베이스 기타의 배찬우, 드럼의 박동식은 김도균 그룹의 멤버이며, 네 명의 스트링 세션 역시 <The Last Solo Concert>에서 함께 했던 이들이다. 스트링 편곡은 뉴욕에서 재즈 피아노와 빅 밴드 작, 편곡을 전공했던 이우창이 담당했으며, 미성의 코러스는 한대수의 음악 팬이자 소프트 록 그룹 '스위티(Sweetie)'의 보컬리스트 오영진이 담당했다. 클래시컬한 스트링 편곡과 사랑과 이별의 절절함이 묻어나는 애조 띈 멜로디가 우아하게 묘사되는 발라드이다. 한대수의 음악에서 많지 않은 사랑 타령이지만, 그는 사랑의 희열과 이별의 아픔을 노래하지만, 궁극적인 주제는 삶의 영원성, 사랑의 영원함에 대한 부정이다.
'질주'는 <삼총사> 앨범의 3명의 주체 한대수-김도균-이우창이 한데 모인 트랙이다. 여기에서 한대수는 작곡과 리듬 기타를, 김도균은 전체 곡의 진행을 이끌어 가는 멜로디 기타를, 이우창의 피아노, 키보드 연주는 곡의 분위기를 살리는 장치, 효과로서 자리한다. 레코딩에 들어가기 전 한대수는 자신이 설정한 작곡의 배경을 영화적인, 회화적인 설명으로 대신했다. 그의 묘사를 옮기면 "애인과 이별을 했어. 그 씁쓸한 느낌을 안고 고속도를 달리는데 비가 온다 이거지. 차창 밖으로는 빗물이 번지고, 그 빗물 사이로 가로등 불빛이 번지고...그 속을 혼자 마구 달리는거야. 쓰라린 상처를 안고 말이지" 한대수는 자신의 공감각적인 표현을 몇 개의 코드로 설정하고, 김도균과 이우창의 음악적 능력에 맡겼다. 한대수의 모호한 주문은 현실로 살아났다. 첫 번, 두 번째 테이크를 그냥 보낸 후 세 번째에 절로 한대수가 이야기했던 그림은 스피커 밖으로 흘러 나왔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한대수-김도균-이우창 세 사람의 내적인 대화, 커뮤니케이션이 일구어낸, 신비스러운 느낌의 기악 협연이다.
'여름 노래'는 '동요와 같은 곡이다. 애초 포크 가수이자 동요 가수인 이성원을 염두에 두고 작곡했던 곡으로, 단순한 코드 진행에 친근한 리듬,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3. 3조의 운율을 지키며, '아가씨 눈웃음 꽃잎은 분홍색, 나뭇잎 햇살은 내 맘을 비추네' 같은 예쁜 시어의 선택에 주안점을 둔 서정시이다. 한대수의 1집 <멀고 먼 길>, 2집 <고무신>에 내비쳤던 포크 음악에 대한 향수를 유발하는, 따스하고 목가적인 감성의 노래이다. 곡이 너무 예뻐, 곡 길이를 조금만 늘리면 어떨까 ? 한 코러스만 더 해도 좋을 것 같다라고 의견을 말했지만, 한 대수는 2분 길이에 어울리는 곡이다라는 사족을 거부했다. 훗날 완성된 곡을 들으며 그의 말에 깊이 공감했다. 그의 말이 옳았다.
'겨울 노래'는 '여름 노래'와 짝을 이뤄, 작사-작곡한, 어른들을 위한 동요이다. 러시아 남성 합창단의 음악을 염두에 둔 배킹 코러스(Backing Chorus)는 한대수 자신과 제작에 함께 참여한 공연 기획자 신원규가 담당했다. 겨울의 황량함을 이야기하지만, 주제는 소박하고 소시민적인 희망이다. "둘이 같이 가봅시다. 파랑새 노래하는 초가집 마을로"와 같은 노랫말은 1집 <멀고 먼 길>의 '하룻밤', '행복의 나라로', <고무신>의 '오면 오고', '오늘 오후', <무한대>의 '또 가야지'와 같은 맥락에서, '희망', '작은 꿈'을 '자연'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 대목이다. 그는 여전히 '희망'을 노래한다.
'오늘 가면'은 '여름 노래', '겨울 노래'와 마찬가지로 한대수의 음악적 뿌리라고 할 수 있는, 포크 음악에 대한 회귀이다. 한대수의 청년 시절 음악적으로 많은 감화를 주었던 밥 딜런의 음악적 영향이 담겨 있는 곡으로, 한대수의 기타와 하모니카는 그가 처음 음악을 했던 시절로의 회귀, 향수를 자극한다. 1집 <멀고 먼 길>의 '잘 가세'의 "내일 가고 오늘 오면 다시 찾으리", 2집 '오면 오고'에서의 "오면 오고 가면 가고 내 마음 난 몰라"에서의 노랫말을 상기시키는 것으로 30여년의 음악 생활에 대한 반추, 어제와 오늘의 대화를 의미하고 있다. 한 대수의 음악에서 자연과 시간(어제, 오늘, 내일)은 영원한 음악적 소재이자 주제이다.
'상사병'은 사랑에 대한 목마름, 갈증을 연주곡의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는, 기이한 작곡이다. 김인건의 몽환적이고 신비적인 기타 사운드는 일렉트릭 기타를 신디사이저에 걸어 다중적인 이미지로 피어 오른다. 그동안의 앨범 작업에서 톱, Kazoo, 물, 종, 타자기, 컵소리, 담배 뿜는 소리, 종소리 등 특이한 악기, 일상속의 소음을 응용했던 한대수는 얇은 양철 판에 묶인 줄을 긁는 악기로 사운드의 실험을 한다. 이 양철 줄 악기의 긁는 소리는 사랑에 사랑에 대한 갈증, 그리움을 손톱으로 긁는 소리로 형상화 되었다.
'천사들의 잡담 1'과 '천사들의 잡담 2'는 1991년에 발표된 한대수의 5번째 앨범 <천사들의 담화>의 미발표 트랙이다. 우연히 이우창의 집에서 <천사들의 담화>의 미발표 음원을 듣고, 한대수라는 천재와 광인이 어떻게 창작을 하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다큐멘터리이자, 인터뷰라고 생각되어 한대수와 이우창의 동의를 얻어 수록하게 되었다. '천사들의 잡담'이라는 제명은 연습의 과정, 곡의 느낌을 교환하는 과정을 옮긴 것이라는 점에서, '담화'가 아닌 '잡담'이 정확하다는 한대수의 의견에 따랐다.
'천사들의 잡담 1'은 한대수가 들국화의 기타리스트였던 조덕환(그의 연주는 <천사들의 담화>에 수록되지 않았다)과 이우창에게 자신의 작곡을 설명하면서 코드를 일러 주고, 새로운 곡의 느낌에 대한 소감을 탄성으로 말하는 장면을 기록한 것이다. 짐작대로 한대수와 이우창은 몹시 취해 있는 상태이며, 녹음 장소는 <천사들의 담화> 앨범의 스튜디오였던 한대수의 아파트 응접실이다.
'천사들의 잡담 2'는 즉흥 작곡, 즉흥 연주로 진행되는 재즈, 블루스 스타일의 곡이다. 전주에 등장하는 음향은 한대수가 달구어진 후라이팬에 계란 요리를 하는 소리이며, 팝콘 튀는 소리 같은 소음(사운드)은 양쪽에 달린 줄을 흔들어 치는 장난감 북이며, 문에 매달려 있는 벨도 소품으로 사용되었다. 1991년 <천사들의 담화>를 레코딩 당시, 거리에서 산 중고 업 라이트 피아노(피아노의 구입가격 보다 운반비가 훨씬 많이 들었다고 한다)에 앉은 이우창은 자신의 천직인 재즈 피아니스트로 블루스 즉흥 연주를 하고 있고, 한대수는 주술사처럼 음향 효과와 구음을 쏟아낸다. DAT 테이프에 담긴 그들의 잡담은 영매에 가깝다.
우리 집 사람이 말했다. 그녀는 한대수를 잘 알지 못한다. 어느 날 한대수의 자서전을 읽고, 사진 시집을 읽고, 내 CD장에 있는 한대수 앨범을 다 듣고서는 말했다. "한대수의 음악, 시를 읽으면서 하늘에서 내려온 천재가 모순 투성이인 이 세상을 살아가며, 감내해야만 했던 불운과 불행, 아픔과 절망을 느꼈다. 그래서 더더욱 그가 노래하는 사랑과 희망이 가슴 시렸다"고 말이다.
한대수의 음악은 철저한 자기 고백이다. 그의 음악에는 관념적인 이상, 내 것이 아닌 고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의 음악에는 자신이 걸어왔던 삶의 모든 조각들이 스며있다. 외로움과 그리움, 고통과 기쁨, 체념과 희망, 자신과 이웃, 그의 삶의 빛과 그림자가 시로, 노래로, 일기로 담겨 있다. 그의 음악은 곧 그가 이 세상을 살아가며 늘려간 <고민, Source Of Trouble>이다.
글 / 하종욱
[자료제공 : 풍류]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