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70년, 민중가수 10팀의 노래로 잇고 기리다
[제주 4.3 항쟁 70년만의 편지 - 서울 민중가수들이 띄우는 편지] 음반 출시
2018년 4월 3일 즈음에는 4.3 사건 7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비롯, 국내 곳곳에서 4.3 관련 추모 행사들이 펼쳐진다. [제주 4.3 항쟁 70년만의 편지 서울 민중가수들이 띄우는 편지] 음반도 그 중 하나다. 이 음반은 그동안 꾸준히 한국 현대사의 주요 사건과 문제를 노래해온 민중가요 뮤지션들이 새롭게 만든 4.3 사건 창작곡 컴필레이션 음반이다. 4.3 70주년을 맞아 제주 4.3 70주년범국민추진위원회가 제작한 음반에는 김성민, 류금신, 문진오, 손병휘, 안석희, 연영석, 우리나라, 이씬, 이수진, 임정득 이상 10팀의 민중가수들이 참여했다. 음반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모두 10년 이상의 긴 시간을 민중가요와 함께 한 관록의 뮤지션들이다.
김성민은 민중가요 록밴드 천지인의 주역으로 활동하면서 <청계천 8가>를 비롯한 명곡들을 만들었고, 류금신은 1980년대 말 노동자노래단 이후부터 계속 노동현장을 지키고 있는 베테랑 보컬리스트이다. 문진오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서 활동하다 솔로로 데뷔해 5장의 정규 음반을 내놓은 포크 싱어송라이터로 2000년대 이후 민중가요의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손병휘는 서총련노래단과 노래마을 출신으로 촛불이 있는 곳에 늘 다정한 노래를 더하고 있는 싱어송라이터로서 7장의 정규음반을 발표했다. 안석희는 꽃다지와 유정고밴드 등에서 활동하면서 명곡 <바위처럼>과 <장산곶매> 등으로 민중가요의 변화를 이끈 주역이다. 연영석은 개성 있는 시선과 목소리로 신자유주의 시대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면서 한국대중음악상 특별상을 받을만큼 호평 받았다. 우리나라는 반미, 자주통일을 노래하는 노래패로 민중가요 노래패의 계보를 이어가면서 항상 광화문의 촛불을 지켰다. 이씬, 이수진, 임정득은 모두 노래패에서 활동하다가 독립해 2000년대 이후 민중가요를 일구어가는 싱어송라이터들로서 기존 민중가요 어법과는 다른 음악을 펼쳐 보이고 있다.
오랜 기간 민주와 평화를 노래해온 이들의 목소리를 통해 제주 4.3의 오늘을 기록하고 되새겨 보는 것이 바로 이번 음반의 목적이다. 70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 서울에서 바라보는 4.3은 멀고 긴 시공간의 거리로 인해 서로 다른 시선의 이야기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바로 그 차이를 기록하고 들여다보는 일이 현재의 4.3을 풍부하게 사유하고 기억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다. 그런데 4.3 사건은 사건의 격렬함, 피해의 광범위함과 잔인함을 감안하면 계속 예술을 통해 기억하고 묻고 되새겨야 함에도 자유롭게 창작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음악으로 4.3을 담은 창작물은 민중가요 진영에서 만든 안치환, 최상돈의 노래 그리고 2014년에 만들어진 제주 4.3 헌정 앨범 [산 들 바다의 노래] 정도를 거명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음반에 참여한 민중가수들도 언젠가 한 번은 4.3을 노래해야 한다고 생각했음에도 미뤄둔 숙제처럼 오래도록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이들에게도 이번 음반 작업은 반드시 했어야 할 노래를 이제야 해낸다는 책임감과 의무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하지만 4.3의 실체와 의미를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다 해도 직접 경험하지 못한 오래 전 사건이자, 국가 공식 기념일이 될 만큼 중요한 사건을 노래하는 일이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음반의 제작 기간은 충분히 길지는 못했고 제작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역사의 무게와 상황의 열악함이 졸작의 핑계가 될 수는 없었다. 뒤늦은 70년만의 노래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 음반에 참여한 민중가수들은 우선 제주로 답사를 가 4.3의 시간을 만났다. 4.3 관련 자료를 찾아보고, 그 참혹했던 시간을 견뎌내야 했던 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제주의 바람과 파도과 돌멩이에 묻어있는 피와 눈물과 통곡을 다시 만났고, 어느새 지나가버린 70년의 시간을 넘나들었다. 그 과정을 통해 이 음반에 참여한 뮤지션들은 4.3 사건을 증언하고 복원하는데서 그치지 않고, 한 사람의 예술가인 자신에게 다가온 사건의 의미와 이야기를 노래로 옮겨 담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역사학자의 평가나 언론의 기록과는 다른 기록과 대화가 노래로 탄생했다.
김성민은 까마귀도 모르게 숨어서 조용히 제사를 지내는 제주인들의 오랜 슬픔을 뮤지컬풍의 노래 <가매기 모른 식게>에 담았다. 류금신은 4.3 이후에도 꿋꿋이 제주의 평화를 지키려는 의지를 서정적으로 노래했고, 문진오는 동백꽃을 빌어 살아남은 이들의 길고 긴 서러움을 따뜻하게 담았다. 손병휘의 노래 <붉은 섬>은 돌림노래 같은 구조를 빌어 제주에 켜켜이 쌓인 폭력의 역사를 되짚고, 비슷한 역사를 가진 오키나와까지 껴안았다. 싱어송라이터로 활동을 재개한 안석희는 담담한 시선으로 봄 제주에 깃든 죽음과 생명의 시간들을 보듬어 위무한다. 연영석은 단숨에 70년의 시간을 뛰어넘어 학살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했다. 우리나라는 평화를 향한 의지를 곱게 합창으로 노래했고, 이씬은 살아도 살았다 할 수 없었던 통한의 시간을 록으로 절절하게 노래했다. 이수진은 살아있는 이들에게 보내는 당부를 호소력 있게 표현했고, 임정득은 밝은 톤으로 더 나은 내일을 향한 의지를 드러냈다.
겨우 살아남은 이들의 비통과 절망이 노래가 되었고, 안타깝고 억울하게 져버린 목숨들 역시 노래가 되었다. 어떤 노래는 70년 전의 시간으로 곧장 돌아갔고, 어떤 노래는 70년 후의 오늘에 눈을 맞췄다. 하지만 지금 아무리 추모하고 되새긴다 한들 역사는 바로 잡거나 되살릴 수 없는 일. 그래서 노래는 오직 기록하고 증언하면서 잊지 않으려 애쓸 뿐이다. 아픔과 고통을 나눠 짊어짐으로써 평화와 정의를 향해 나아갈 뿐이다. 김호철, 꽃다지, 박종화, 박준, 안치환, 윤미진, 윤민석, 이지상, 조성일, 희망새 등 더 많은 민중가수들이 음반의 컨셉트와 한정된 예산, 부득이한 상황 등으로 인해 참여하지는 못했으나 민중가요 진영에서 오래 활동했고, 현재 민중가요를 지켜가고 있는 이들이 한 음반에 참여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음반의 의미는 충분하다. 대표적인 민중가요 창작자 윤민석은 “손만 대면 후두둑 끊어질 것 같은 낡고 가느다란 기억의 끈을 잇고 또 이어 아프고 귀한 절창을 만들어 낸 음악인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찬사를 보낸다.”고 의미를 부여했으며, 대중음악평론가 서정민갑은 “10곡의 노래들은 치열함과 아름다움으로 질문과 기억을 이어가기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이 음반은 비매로 오는 4월 3일, 6일, 7일 서울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추모행사 공간 부스 등에서 배포되고, 곧 온라인에서도 들을 수 있다. 음반에 참여한 이들은 4월 6일과 7일 오후 광화문 광장에서 열릴 공식 추모 무대에서도 노래할 예정이다.
-Review-
민중가요 중에도 4.3을 다룬 노래는 많지 않다. 중요하지 않다거나 오래 전 일이라서가 아닐 것이다. 당장 해결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은 탓에 자꾸 뒤로 밀리고 밀리는 사이 70년이 지나버렸다. 그러나 70년의 시간은 한 순간도 멈추지 않고 역사에 대해, 기억에 대해, 정의에 대해, 화해에 대해 물어왔다. 70년이 지난 뒤 늦은 10곡의 노래들은 그 질문을 이어 받아 다시 묻는다. 무엇이 끝나고, 무엇이 남았는지.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담아야 하는지. 노래는 오직 질문하고 기억할 뿐이지만 10팀의 민중가수들과 연주자, 기획자가 함께 만든 노래들은 치열함과 아름다움으로 질문과 기억을 이어가기 충분하다. 부디 메아리 같은 노래와 대답이 너울너울 이어지기를.
-서정민갑(대중음악의견가)
기억은 강요할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되겠지만 제주에서의 참혹한 학살이 있은 지 70년 되는 해에,
젊은 음악인들이 그 날을 상기하여 노래한다.
모든 걸 잊고 제주로 떠나자는, '제주도' 하면 떠오르는 어떤 대표적인 대중가요에 비하면 이 노래들은 분명 많이 불편하다. 하지만 각자가 느끼는 불편함의 크기가 어쩌면 우리의 마음 속에 남아있는 양심의 크기일런지도 모를 일.
손만 대면 후두둑 끊어질 것 같은 낡고 가느다란 기억의 끈을 잇고 또 이어 아프고 귀한 절창을 만들어 낸 음악인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찬사를 보낸다.
-윤민석(민중가요 창작자)
“봄이었습니다, 분명히. 아직 한라산 자락에 잔설이 남은 4월이었고요. (제주섬, 동백꽃, 지다)”
자연은 무심히도 아름다워 4월이면 남쪽부터 봄이 밀려온다. 작아도 커도 모든 생명에는 공평하게 봄이 주어진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4월은 왜 아직 이리도 슬플까.
망자를 위한 제사마저 까마귀조차 모르게 지내야 했던 세월, 70년 전 그 잃어버린 마을을 잊지 않기 위해 70년 뒤의 음악가들이 모여 만든 노래들이 마음을 단단하게 한다. 이름 없이 죽어간 사람들의 이름을 어깨에 지고 조금 더 나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 오늘, 이 앨범은 그들에 대한 보답과 죄 없는 아이들에게 물려줄 세상에서 잘못된 역사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한 노래들이다.
억울하게 죽어간 하나하나의 목숨을 위해 불어낸 음악인들의 숨결이 새로운 역사를 이어갈 생명에게 이어지기를 바란다.
-정민아(뮤지션)
음악은 힘이 없다. 총칼을 막아내지도 못하고, 타락한 위정자들을 벌하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로 인해 다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보듬어 줄 때 그 순간은 음악이 힘을 가진다. 이 음반에 수록된 10개의 트랙들은 4.3 항쟁의 상처를 위무하려는 여러 민중음악가들의 뜻 깊은 결실이다. 감사한 일이다.
평화로운 섬에 70년이 지나도 씻기지 않는 상처를 안긴 이들은 이 음악을 들을 지어다. 반성도 없이 용산에서, 강정에서, 세월호에서 제 2의, 제 3의 4.3을 저지르는 파시즘의 망령들은 이 음악을 들을 지어다. 수많은 동지들이 평화를 지키려 사투를 벌이고 있는 현장들에서는 이 음악들이 승리의 뿔피리 소리가 되어 울려퍼지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황경하(음악기획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