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6월30일 라이너스의 담요가 빵파티에서 첫번째 공연하였습니다"
최초의 '라이너스의 담요'는 파티밴드로 시작하였습니다. 멤버 중 강민성군의 일본유학이 2001년 8월에 예정되어 있었기에, 약간의 프로젝트성도 감안이 되어있는 상태였습니다.
클럽에서 정기적인 공연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별 흥미가 없던 라이너스의 담요는 평소 즐겨다니던 술집들에서 맥주를 마시다 Pub Tour를 구상합니다.
"2001년 7월19일 "담요의 Pub Tour" at Belle & Sebastian"
"2001년 7월28일 "담요의 Pub Tour" at 구멍"
초기 펍투어의 문제점은 심각했습니다. 악기에 대한 문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습니다. 드럼셋을 설치하는 것은 당시 상황으로선 불가능한 일이었고, 3개의 앰프를 운반하고 각종 잡다한 악기들과 마이크들을 낑낑거리고 들고오는 행위를 일컬어 '개노가다의 파노라마'라 불렀습니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라이너스의 담요는 2001년 여름, 2번에 걸친 펍투어를 조용하고 소박한 공연으로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2001년 8월 7일 담요의 창단멤버 강민성군이 일본행하였습니다"
이윽고 그가 떠납니다. 밴드 결성 당초의 기대보다 라이너스의 담요는 발전하고 있었고 모두가 그의 떠남을 아쉬워했습니다.
일년 후의 만남을 기약하고 그는 무거운 마음을 안고 나리타행 비행기에 오릅니다.
민성담요를 통해 창단되고 커뮤니케이션하던 밴드는 민성담요의 부재로 잠시 어려움을 느낍니다.
담요음악을 포기할 수 없었던 라이너스의 담요는 각자의 부단한 노력을 통해 서로를 더 잘 알아가기 위해 노력합니다.
"2001년10월28일 홍대놀이터에서 미니라이너스의담요(지읒남매) 공연"
클럽 빵에서 기획한 홍대놀이터 어쿠스틱GIG에 라이너스의 담요가 담요들의 사정으로 인해 연진담요와 기준담요의 듀엣으로 참가하게 됩니다. 참가를 망설였던 두 담요는 두 대의 기타와 실로폰의 라인업으로 KFC, 후미진 곳 등 닥치지 않고 연습하는 과정에서 두 곡의 아웃라인을 완성합니다.
그 뒤 '라이너스의 담요'는 스테디하게 자작곡을 완성해갑니다. 모든 담요들은 오랜 기간, 많은 고민을 해서 노래를 만들고자 노력했습니다. 몇만원 짜리 카세트 레코더로 합주 상황을 녹음해서 모니터하는 것에서 담요들은 큰 희열을 느낍니다.
이 동안에 2003년 5월 현재 '라이너스의 담요'가 연주하는 노래의 대부분이 만들어집니다.
"2001년12월30일 빵파티에서 담요가 연주하였습니다"
라이너스의 담요는 밴드가 데뷔한 파티를 잊지 않고 그해 겨울 크리스마스 파티에 다시 한번 참가하여 연주하고, 캐롤송을 커버하고... 크리스마스를 축하합니다.
"라이너스의 담요가 2002년 2월 10일 녹음을 시도합니다"
늘 합주 상황을 카세트 테이프로 녹음해서 듣고는 좋아라 하던 담요들이 좀 더 본격적으로 노래들을 고민해보기 위해 녹음을 시도합니다.
스튜디오 녹음은 무리였고, 우리가 택한 방법은 좋은 악기들이 있던 용석,용희담요들의 동아리 합주실에 하드레코더를 가져가는 것이었습니다. 날은 무척 추웠고 안도 추웠습니다. 30분 몸풀기 합주를 하고, 드럼을 마이킹하는데 2시간에 가까운 시간이 들었습니다. 그만큼 그날의 드럼 녹음은 몹시 느낌이 좋았습니다. 서로를 격려하고 농담을 주고 받고 추운 손을 난로에 녹여가며 저녁때까지 담요들은 그렇게 추억 하나를 더 만들고 노래에 대한 애정을 더 키웁니다.
그 때 녹음했던 데모는 크리스마스 트레인만이 완성됩니다.
"담요의 기준담요가 2002년 2월 15일부로 민간인 복귀!"
드디어 담요들이 기다리던 일이 현실화됩니다. 바로 기준담요의 제대입니다. 말년작곡겐세이로 말년을 보내던 그가 비로소 어엿한 민간인으로 담요 곁에 옵니다.
"2002년 3월 23일 '라이너스의 담요' SPRING! PICNIC WITH LINUS` BLANKET!"
지금도 기억에 너무나도 예쁜 펍인 VELVET에서 라이너스의 담요는 첫번째 풀밴드 단독공연을 엽니다. 정말 많은 손님들이 담요의 첫단독공연에 와주셨습니다. 연주하는 동안 너무 행복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사랑스런 공연을 마쳤지만 담요들 사이에는 복잡한 사정이 생겨서 활동을 접어야하고 앞으로의 행보를 예측할 수 없는 위기에 다다릅니다. 공연을 마치고 서로 간의 충분한 대화를 통해 '라이너스의 담요'는 휴식하는 것으로 결정합니다.
그렇게 3개월의 시간이 흐릅니다.
각자가 잡고 있던 담요에의 끈을 놓지 않았던 라이너스의 담요는 2002년 7월, 일본유학을 떠났던 민성담요의 귀국과 함께 동기를 얻어 재회합니다. 오랫만에 서로 얼굴을 보고 멋적게 웃고는 다시 함께 음악을 하자는 약속을 합니다.
다시 각자 악기를 들고 합주실에 선 라이너스의 담요는 다시금 투기타 시스템에 적합한 편곡을 시작하고 다섯명이 몰려다니는 것에 익숙해지며 새로이 '라이너스의 담요'를 정비해갑니다.
초기의 펍투어를 잊지 않고 있던 담요들은 다시 한번 펍투어를 생각합니다.
"2002년 9월 28일 담요의 자매빠 BAR 30에서 봉고의 곡재씨와 함께 어쿠스틱 'ONE NIGHT GIG' 를 성황리에 마쳤습니다."
평소 친분이 있던 BAR 30에 간단한 드럼셋과 앰프들을 운반하는 '개노가다의 파노라마 2002 AGAIN!'이 시작됩니다.
멤버들이 좋아하는 라운지 분위기의 공연을 해보고 싶었던 라이너스의 담요는 봉고 세션의 곡재씨와 함께 약간의 편곡을 가미해 '어쿠스틱 ONE NIGHT GIG'라는 이름을 짓고 그에 걸맞는 공연을 시도합니다.
참석해 주셨던 손님들 모두 감사합니다.
"그 일주일뒤 지금은 불현듯 사라진 신촌최고의 암울빠 구멍에서 어쿠스틱긱 2탄을 공연하였습니다."
담요 펍투어의 원년멤버펍, 구멍에서의 어쿠스틱 2탄은 준비되지 않은 즉흥입니다. 당연히 홍보도 없었고, 자리에 있던 펍의 손님들과 친구들과 함께 연습하는 것 같았던 편한 분위기의 연주를 담요들은 모두 즐깁니다.
여러 합주실을 전전하며 연습하고 있던 담요들은 용석담요의 입대일이 다가오고, 늘푸른담요의 복잡한 사정으로 부산에 장기 기거해야 하는 참담한 상황이 다가오자 슬슬 노래들을 정리하고 기록해야 한다는 의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