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계 미국의 작곡가.
20세기 전반에 새로운 음악적 흐름을 이끌어 간 사람 조지 거쉬인. 유럽의 전통적 클래식음악에 미국의 정서가 반영된 재즈적 요소를 조화롭게 결합시켜 당시 미국을 중심으로 한 많은 대중의 환호를 받았지만 그 양자간에 미묘한 갈등과 반발로 늘 열외에 서있던 사람. 짧은 생애와 불우했던 말년을 보낸 비운의 주인공이기도 하지만 아름다운 서정적 선율을 포함한 다양한 곡들과 독특한 음악어법으로 새로운 음악세계의 문을 연 20세기 대표적 작곡가이기도 하다.
그는 유대계인으로 러시아인 부모의 미국이주로 인해 1898년 9월 뉴욕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제이콥 거쉬인. 작은 사업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제대로 된 음악교육을 받아보지 못했다. 12살부터 피아노를 치고 독학으로 화성학을 공부하던 그는 1914년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뉴욕의 한 음악출판사에 피아노 연주자로 취직했다. 초기에는 대중적 성격의 경음악 작품을 작곡하다가 1919년 그의 나이 21세에 코미디 뮤지컬 <La La Lucille>이 성공하면서 본격적인 작곡가 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그리고 1924년에는 클래식과 재즈의 절묘한 조합을 이룬 피아노 협주곡 <랩소디 인 블루>를 발표하면서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교향악적 재즈’의 창시자라는 명함을 얻게 됐다.
정통 클래식음악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던 그는 데뷔 이후 뉴욕 교향악단의 협주곡 의뢰를 계기로 본격적인 순수 클래식 음악 공부를 하게 된다. 1931년에는 <그대 위해 부르리라>로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보도/문학/음악상인 퓰리처 상을 받았고 1934년에는 남부 흑인들의 애환을 담아 언론의 화제가 되었던 오페라 <포기와 베스>를 작곡해 주목을 받았다. 또한 1930년대 미국 헐리우드의 토키영화 태동과 함께 영화음악에도 관심을 보여 몇몇의 영화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Delicious’[1931], ‘Shall we dance’[1936-37], ‘Damsel in distress’[1937]).
그의 작품은 동시대의 대표적인 작곡가 스트라빈스키나 라벨, 찰스 아이브스의 작품과는 다르다. 음악적 완성도면에서나 작곡에 있어서 나타나는 세밀한 테크닉과 음악적 구성력 면에서도 부족한 감이 적지 않다. 하지만 그는 여느 천재 작곡가 못지 않은 천부적 재능을 타고 났다고 볼 수 있는데 특히 음악에서의 ‘선율적 재능’을 타고난 듯 하다.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노래 ‘스와니’를 포함한 500여 개에 달하는 그의 <가곡Songs>중 상당부분은 지금까지도 여러 가지 다양하게 변형된 형태로 남아 많은 이들의 애창곡이 되었다. 흑인들의 정서를 반영하는 ‘블루스’와 ‘래그타임’의 음악적 요소와 서정적이고 애수에 젖은 듯한 선율을 지닌 그의 많은 곡들은 ‘가장 미국적인 음악’이라는 평을 받기도 한다.
한편 그는 늘 자신의 음악에 부족함을 느끼고 고민했던 작곡가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한때는 당시 유럽의 대표적 작곡가 모리스 라벨에게 배움을 얻고자 했으나 오히려 자유로운 음악형식과 새로운 양상을 지닌 그의 작품이 유럽의 많은 작곡가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다.
1937년 39세의 젊은 나이에 뇌종양으로 짧은 생을 마감하기까지 새로운 음악적 혁신을 몸소 보여준 그는 흔히 말하는 ‘시대가 만들어 낸 예술가’라기 보다는 ‘시대의 흐름을 이끌어 간 예술가’라는 말이 적합할 듯 하다.
by denker.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