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어뜻 보기에는 이질적이기까지 한 요소들이 한 데 들어 있다. 블루스, 보사노바, 스윙 재즈에서 펑키까지. 21세기 초엽, 한국의 음악적 포스트모더니티가 여기서 발현된 것일까? 포스트모더니즘의 작동 원리가 혼재와 변용이라면 다양한 어법으로 표현된 수록곡 12작품은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여타 가요 음반과 우선 음악 형식적으로 다르다. 유행하는 말투를 따른다면 음악적 '컨셉'이 다른 것이다. 힙합, 얼티너티브 록, 발라드 등으로 대별되는 현재의 음악적 스펙트럼을 마치 의도적으로 비껴 나간 듯한 의도마저 읽힌다. 도대체 이 음악들은 어떤 함의을 밑바닥에 깔고 있길래?
새 봄을 닮은 감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짐작하겠지만, 이 노래들은 하나의 언어 조형물에 복속돼있다. 한 사람이 지은 일련의 시작품이 그 텍스트다. 말하자면 '노래 시(詩)'라 해도 좋다. 그런 말을 붙여도 좋은 것이, 여기에 수록된 노래들은 언어(시)의 요구에 즐겁게 복무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시가 곡조를 염두에 씌어졌다는 점에서 수록곡들에는 그런 이름을 붙여 주고 싶다.
'나를 깨우지마 나를 흔들지마 / 따뜻한 꿈처럼 나를 잊고 싶어'로 시작되는 '푸른 5월'은 이 앨범 전체의 정서를 농축적으로 보여준다. 그것은 느림의 미학이랄 수도, 탐미와 도취의 권리 주장이라 수도 있다. 요컨대 이 앨범은 꿈꾸고 싶은 것이다. 그 꿈은 미래로도, 가상 현실로도 나아가지 않는다. 일상에 쫓겨 의식의 한켠에 처박아 두었던 과거를 복원함으로써 성취되는 그 꿈의 세계는 그러므로 허망하지 않다. 수록작들이 방치돼 온 꿈들을 찾아 가는 회로도인 것은 그래서다.
전곡을 작곡한 말로는 탁월한 음악적 감각을 과시하며 작사자의 기대를 훌쩍 뛰어넘고 있다. 일반적으로 재즈 싱어로만 알려져 있는 그녀는 어느 적부턴가 남의 노래만을 불러야 한다는 사실이 버거워졌다. 그녀는 새로운 텍스트가 필요했고, 이주엽은 그것을 제공한 것이다.
이주엽 스스로의 표현을 빌면, 그는 한때 신문의 '제목 다는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자기 삶의 제목을 달고 싶어 했다. 여행은 그렇게 시작했다. 그는 자연스럽게 일상적으로부터 일탈했다. 여늬 삶의 방식과 결별하고 싶은 욕망이 그를 충동질했다. 그리고 어느날 그는 몇 개의 알리바이들을 들고 나타났다. 그것은 그가 짧지 않은 생의 시간들로부터 얻어 낸 - 그가 몸 담고 있던 곳에서의 표현을 따르면 '취재한' - 삶의 콘텐츠들이었다. 그는 삶의 콘텐츠들을 점검하고, 나아가 그로부터 전망하고 싶었던 것, 꿈은 이뤄졌다. 찬란한 허무로. '삶이란 게 원래 그렇지 않소?라고 그는 생의 쓸쓸함들을 묶어 화려하게 지펴 올렸다.
비브라폰 소리에 드럼의 브러시 워크가 마치 MJQ를 연상케 하는 '이름 없는 풀꽃으로', 하모니커 주자 전제덕의 즉흥 선율이 화사한 무릉을 닮아 있는 '벚꽃 지다', 말로의 더빙 녹음과 스캣이 재즈 보컬의 매력을 한껏 과시한 '내 마음 가을처럼', 록 리듬이 두드러지고 즉흥의 비중도 약해 수록곡 중 가장 재즈와 동떨어진 '아이야 나도 한 땐' 등 이 앨범은 재즈와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하며 재즈와 한국어의 행복한 공존을 실현시켜 보이고 있다. 전형적 불루스 넘버 '어머니 우시네'의 보컬과 기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한국인 심성의 근저를 자극하고 있다. 낯익은 옛 노래들은 그 점에서 가장 훌륭한 소재다.
일찍이 생의 허무와 중독성을 간파한 명곡 '봄날은 간다'를 정규 앨범 수록곡으로 다시 택한 말로는 한층 원숙해진 스윙감으로 무상함을 변주해 주고 있다. 그녀의 스캣은 '엄마야 누나야'에 이르러스는 뮤트 트럼펫 소리로 변해 비브라폰 음과 희롱하더니 종지부에 이르러서는 아찔한 고음이 돼 대기속으로 빨려 들어 간다.
그것은 묘한 여운이면서 유혹이다. '사랑, 닿을 수 없는'은 마침내 우리를 도발한다. '내 맘 속 모르는 곳에서 몰래 타오른' 쓸쓸한 불꽃을 노래하던 말로는 이렇게 명한다. '견딜 수 없으면 타오르지 마라'고, 윤기 나는 목소리에 실려 오는 그 까실까실한 질감을 내동댕이 칠 수 있나? 이 영악한 21세기여.
(장병욱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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