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봄 프로젝트' [다시, 봄]
고마운 시간들 (김목인 / 음악가)
이 음반을 위해 처음 전화를 걸고, 마음을 내어 모였던 음악가들은 결코 '시작이 반'은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곧 도와줄 사람을 찾기 시작했고, 막연했던 프로젝트가 지금처럼 풍성해진 데에는 눈덩이처럼 늘어난 많은 분들의 수고가 있었다. 기획과 섭외, 디자인과 녹음, 연주, 촬영, 홍보를 맡아준 분들,그리고 기꺼이 달려와 준 많은 연주자들이 없었다면 여전히 우리는 곡을 쓰며 회의를 하고 있었을 것이다. 함께 하는 걸 넘어, 일사불란한 프로의 내공까지 보여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다.
이번 음반은 세월호라는 하나의 주제로 여러 목소리들을 모은 것이지만, 어떤 입장과 의견이라기보다는 음악을 직업으로 하는 시민들이 동시대를 소화한 하나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작업이 모양새를 갖춰나가는 몇 달 동안 우린 창작을 했다기보다는 그 협업의 시간을 경험했다. 처음 회의를 했던 날부터 지금까지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고 사회에도 여러 변화들이 있었다. 우린 서로 조심스러운 부분에 대해 개입하거나 의견을 구했고, 그 과정에서 망설이던 목소리들이 자신감을 얻거나 성급했던 감정들이 균형을 잡기도 했다.
그 시간은 각자 흩어져 활동하던 음악가들에게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세월호에 대한 노래를 만들지 않았어도 우리는 각자 다른 방식으로 세월호를 기억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번 작업을 함께 함으로써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다른 동료 예술가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고, 덜 냉소적일 수 있었으며, 격려 속에서 한 발짝 더 내디딘 표현들을 할 수 있었다.
아마도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주로 밤 시간에 이루어졌던 합창 녹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우린 정말 어린 아이들처럼 나란히 서서 연습하고 노래했으며, 모이게 된 계기가 지닌 무게 때문인지 모든 과정이 순조로웠다. 녹음이 끝나고 우린 방금 녹음된 합창을 들어보며 같이 노래한다는 것, 목소리에 목소리를 포갠다는 것이 왜 그 자체로 뭉클한 감동을 주는 걸까 오랜만에 생각해볼 수 있었다.
우리가 경험했던 그 소중한 시간의 에너지들이 음반을 듣는 분들에게도 작은 격려로 전해졌으면 좋겠다.
말이 되는 세계를 위해 (사이 / 음악가)
그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던 봄은, 변한 게 없이 그대로 여름이 되었고 아무렇지도 않게 뜨겁던 이 여름마저 지나가고 있다. 우리는 아직, 지난 봄의 그 안타까운 일이 왜 일어났는지조차 모른다. 우리는 이 '말도 안되는 사건'이 그냥 의미 없이 지나가길 바라지 않는다. 그 동안 습관적으로 부패했고, 부끄러운 줄 모르고 더러웠으며, 망상 속에서 교만했던 한국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그래야만 남은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한테 한 마디 변명이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 노력도 않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으면서, 그저 그 상황을 넘기기 위해서 내 뱉는 '미안하다'는 말은, 말이지만 말이 아닌, 그러니까 말이 안되는 말일 뿐이다.
1. 이 프로젝트의 이름이자 앨범의 제목이기도 한 "다시, 봄"은 유기농펑크포크의 창시자 사이가 만들고 다같이 불렀다. 변한 게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와버린 올해 봄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봄이었다. 우리는 작년의 그 슬픈 봄을 통해서 한국사회와 우리들의 삶을 다시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2. "고인 슬픔"은' 슬픔이 고이지 않고 흘러갈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곡이다. 그 슬픔이 무엇인지는 우리 모두가 이미 알고 있다. 이 노래는 아이리쉬 밴드 '바드'의 멤버이자 다른 곡에서는 피아노와 아이리시 휘슬 연주자로도 참여한 '박혜리'가 만들고 직접 불렀다. 이 노래를 들으니까 지금 준비중이라는 솔로 앨범이 기대된다.
3. 이번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한 사람은 '정민아'다. 그이는 가야금을 전공했지만 가야금연주자가 아니라 싱어송라이터다. 그리고 송라이터로서 그 동안 세상에 대한 이야기를 누구보다 많이 해왔다. 그런 사람이 '나는 말없이, 모른채 지나가는 사람'이라고 노래하는 까닭이 뭘까. 가야금과 워낭소리, 첼로와 일렉기타가 묵직하게 물어온다.
4. 작년 11월에 겨우 첫 음반을 낸 '권나무'는 벌써 그이만의 멜로디를 가졌다. 얼핏 '노래가 너무 착한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깨끗한 질감을 가진 이 사람의 노래는, 들으면 들을 수록 '맑음'이라는 단어보다는 '슬픔'이라는 단어에 가깝다. 때로 슬픔은 슬픔으로만 위로 받는다.
5. 이번 달에 첫 EP 앨범을 낸 '도마'의 "고래가 보았다고 합니다"는 고래 한 마리가 헤엄을 치는 듯한 더블 베이스로 시작한다. 고래가 본 것은 '캄캄한 바다 속에 갖힌 눈물'이고, '아무도 없는 밤의 골목길도 두려워하는 우리'는 힘없이 외로운 사람들이지만, 노래는 어둡지 않다. 아마도 그것은 앞으로 고래가 만나게 될 또 다른 친구들 때문일 텐데, 어쿠스틱 기타와 브라질 타악기 빤데이루, 아이리시 휘슬따위가 그런 예상을 가능하게 해준다.
6. 재즈 베이시스트 '차현'은 자신의 곡 "수학여행"을 다른 가수가 불러주기를 원했다. 하지만 회의 때 그의 가이드 노래를 들어본 사람들은 "형님 목소리가 좋으니 직접 부르시는 게 좋겠다"고 말했고 그렇게 되었다. 아무리 숨겨도 노래는 사람을 닮게 되어 있다. 이 프로젝트에서 제일 경험 많은 연주자이지만, 나는 그 동안 단 한번도 그가 후배들을 만만하게 대하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정말 애매한 말이지만, 형님의 순수한 인품을 닮은 노래다.
7. '동물원'의 '김창기'가 작곡을 하고 푸른 곰팡이의 '조동희'가 작사와 노래를 한 "작은 리본"은 세월호 일주년 때 뮤직비디오로 만들었다가 방송심의보류 판정을 받으면서 오히려 더 유명해진 곡이다. 아주 오래 전부터 노래는, 사람들의 입을 막을 때 터져 나오고는 했다.
8. 뭔가 무조건 믿음이 가는 음악가 '김목인'의 "부력"은 세월호가 인양되고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느껴지는 곡이다. 모든 악기의 연주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톤, 즉 질감이다. 노래는 더욱 그렇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은 '김목인'의 노래를 들으면 된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그는 '노래한다'기보다 '목소리를 낸다'고 할 수 있다.
9. 마지막은 '김민기'의 "아하, 누가 그렇게"를 합창으로 불렀다. "다시, 봄"도 그렇지만, 함께 '떼창'을 녹음했던 그 순간들은 아주 따듯하고 정다웠다. 바쁜 시간들을 조정해서 어렵게 일정을 잡았고 새벽까지 녹음하느라 몸은 피곤했지만, 아무도 투덜대지 않았다. 우리는 오히려 서로에게 위안을 받았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이것이 따로따로 작업한 곡을 모은 단순한 옴니버스 앨범이 아니라는 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순간을 음악가들 스스로 머리를 맞대고 생각을 나눴으며 함께 작업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앨범을 만들면서 받은 위로가 당신에게도 전달이 되면 좋겠다.
10. "나무"는 세월호 희생자인 단원고 2학년 '신호성'군의 시에 싱어송라이터 '백자'가 만들고 부른 노래이다. '나무'처럼 살고 싶고 '나무'를 지키고 싶어 했던 아이의 소망을 잘 표현한 곡이다. 기억하고 기억 하고 기억하는 것...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 모두 나무가 되자.
이 모든 곡들은 음악감독인 재즈보컬리스트 '말로' 덕분에 하나의 실에 꿰어졌다. 그러니까 이 음반이 목걸이고 노래가 구슬이라면, '말로'는 바늘인 셈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