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후반 아마츄어 그룹 '보헤미안'을 결성해 대학가에서 상당한 인기를 누려왔던 김민우는 우연히 당시 인기가수였던 유열과 조정현을 만나게 되면서 가요계에 정식 데뷔하는 기회를 맞게 되면서 가요계에 모습을 보인다.
1990년 발라드 계열의 곡 “사랑일뿐야”으로 데뷔한 김민우는, 짧은 시간에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하광훈 작곡, 박주연 작사에 애절한 이 곡은 미소년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던 김민우의 가냘프고 부드러운 인상과 호소력 깊은 창법으로 당시 소녀팬들은 물론 많은 여성팬들의 사랑을 집중적으로 받았다.
“사랑일 뿐야” 이외에도, “휴식같은 친구(하광훈 작곡, 박주연 작사)”, “입영열차 안에서(윤상 작곡, 박주연 작사)” 등이 연속으로 히트하면서 자신의 데뷔 앨범 자체가 젊은이들 사이에 큰 인기를 얻게 되면서 그는 청소년들의 우상이 된다. 또 이런 김민우의 활약은 비슷한 분위기의 신인가수들이 스타로 급부상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이렇게 활발한 1집 활동으로 1990년에는 MBC와 KBS 방송국의 신인가수상과 서울가요대상 신인상, 인기상 그리고 골든 디스크상등 많은 상을 수상하면서 그 해 주목 받는 신인가수가 된다.
하지만 김민우는 인기를 한 몸에 받으며 활동해 오던 1991년 , 김민우는 가수활동에 치명적일 수 있는 군입대의 벽에 부딪혀 데뷔 이후 첫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다행히 방위로 입대해. 군복무 와중에도 앨범작업을 계속 진행할 수 있게 되어 2집 앨범 '친구에게'를 발표해 꾸준히 인기를 쌓아갈 수 있게 된다. 이렇게 그의 군입대는 입영할 때 입영열차를 타고 있는 그의 모습이 방송되면서 자신의 노래가 자신의 실제생활과 매치되어 더 기억에 남는 발라드 가수가 되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한다.
그러던 그의 인기는 뒤이은 3집의 실패와 함께 나락의 길을 걷게 된다. 1992년에 발표한 3집 '지난 추억'이 별 반응을 얻지 못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1993년에는 자신을 주축으로 결성한 그룹 '쉐이크'를 결성, 재기를 노려보지만, 그룹이 앨범만 내고 변변한 활동도 없이 해체 되 버리자 그는 큰 상처를 입게된다. 더욱이 1996년에는 성내동 가스 폭발사고로 인해 그 동안 전 재산을 투자해 음악활동을 위해 마련해 두었던 악기와 컴퓨터를 포함한 작업실을 모두 잃어버리는 불운을 맞으면서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지게 된다.
1997년, 오랜 동안 실의에 빠져있던 김민우는 주위의 도움으로 재기의 발판을 마련, 타이틀 곡 ”후애” 를 담은 4집을 발표, 예전보다 한층 더 성숙한 모습으로 팬들 곁으로 돌아온다. 데뷔했을 때와 같은 인기를 얻는 데는 실패했지만, 타이틀곡 “후애”와 “용서”가 가져다 준 작은 인기는 다시 시작한 가수생활에 작은 활력으로 자신에게 다가온다.
영원한 미소년 같은 김민우의 노래는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자주 들려지고 있으며, 신세대 가수 홍경민이 그의 노래 중 “휴식같은 친구”를 리메이크 해 불러 히트하기도 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