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도록 눈이 내리는 도회지의 빌딩밑에서 삐꺽삐꺽 기계소리를 들으며 나는 안델센의 동화책을 펼칩니다.
각박한 삶을 위하여 잠시 잊고 있던 순수의 대문 앞에서 나는 내 몸에 묻은 먼지와 내 마음에 묻은 기름기를 떨어냅니다.
한 장의 문을 넘어 저토록 고운 눈이 송송 내리는데 깊은 동화의 나라에는 순순한 어린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냥팔이 소녀도 보이고 인어공주의 얼굴도 보이고 송아지, 말, 염소, 강아지 따위들이 마음을 풀어 놓고 뛰어다니는 것도 보입니다. 나는 갑자기 그들과 어울리고 싶어져서 눈 속으로 신나게 뛰어들지만 그들은 순식간에 멀리멀리 달아나고 맙니다. 아마 내가 너무 무서웠던지 내 몰골이 너무 추했던 모양입니다.
나는 그들이 사라진 언덕에 서서 가슴이 하나 둘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눈시울이 자꾸만 시큼거리며 기계소리가 삐꺽거리고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각박함이 분명히 내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 있었습니다.
잃었던 동화의 나라로 천진무구한 어린이들의 세계로 결국 내가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안델센은 나를 대문 밖으로 밀어 내고는 철컥 소리를 내며 동화책에 자물통을 채웠습니다.
잃어버린 내 어린 시절이 저 눈 속에서 하나하나 내려 쌓이고 나는 그 순순의 눈을 바라보면서 목을 축 늘어뜨린 채 마치 유형을 떠나는 죄수와도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병원에서 당신이 치료를 받고 있는 동안 나는 당신 옆에서 마음을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링겔주사를 맞을 때 나는 마음의 정맥에 주사를 맞았습니다.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아픔을 치료하고 참지 못하고 쓰러질 것 같은 약함도 치료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고 작은 것에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도 치료하고 구름처럼 피어 오르는 욕심도 치료하고 그냥그냥 인생을 포기해버리고 싶은 마음도 치료 하고 정처없이 어디론지 떠나버리고 싶은 울적함도 치료하고 조금씩 미워지는 서글픔도 치료하고 끝까지 사라하지 못할 것 같은 위태로움도 치료 하고 문득문득 미워지는 먹구름 같은 마음도 치료하고.....
병원에서 당신이 치료를 받고 있는 동안 나는 당신 옆에서 마음을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못난 이 마음을 치료받게 하기 위하여 어쩌면 당신은 스스로 고통을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