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도록 눈이 내리는 도회지의 빌딩밑에서 삐꺽삐꺽 기계소리를 들으며 나는 안델센의 동화책을 펼칩니다.
각박한 삶을 위하여 잠시 잊고 있던 순수의 대문 앞에서 나는 내 몸에 묻은 먼지와 내 마음에 묻은 기름기를 떨어냅니다.
한 장의 문을 넘어 저토록 고운 눈이 송송 내리는데 깊은 동화의 나라에는 순순한 어린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냥팔이 소녀도 보이고 인어공주의 얼굴도 보이고 송아지, 말, 염소, 강아지 따위들이 마음을 풀어 놓고 뛰어다니는 것도 보입니다. 나는 갑자기 그들과 어울리고 싶어져서 눈 속으로 신나게 뛰어들지만 그들은 순식간에 멀리멀리 달아나고 맙니다. 아마 내가 너무 무서웠던지 내 몰골이 너무 추했던 모양입니다.
나는 그들이 사라진 언덕에 서서 가슴이 하나 둘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눈시울이 자꾸만 시큼거리며 기계소리가 삐꺽거리고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각박함이 분명히 내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 있었습니다.
잃었던 동화의 나라로 천진무구한 어린이들의 세계로 결국 내가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안델센은 나를 대문 밖으로 밀어 내고는 철컥 소리를 내며 동화책에 자물통을 채웠습니다.
잃어버린 내 어린 시절이 저 눈 속에서 하나하나 내려 쌓이고 나는 그 순순의 눈을 바라보면서 목을 축 늘어뜨린 채 마치 유형을 떠나는 죄수와도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구포장이 서던날 나는 무수히 짖어대는 개소리를 들었다 밤천 둑을 따라 온갖 개들이 나와서 컹컹 하늘을 물어뜯기도하고 아예 짖는것을 포기해버린 놈들도 있었다 더러는 철망 안에서 수십 마리씩 비좁게 앉아 몸부림을 치는 놈들이 있는가 하면 쇠줄에 묶여 어디론가 팔여 갈 하늘을 향해 앞발을 떡 버티고 이를 드륵드륵 가는 놈들도 있었다
지나치는 사람드의 갈빗뼈에 송곳니를 박거나 아니면 언젠가 떠나야할 우리의 영혼까지 흔들어 놓는 무섭고 당찬 개소리를 들으며 바뻐바뻐 둑길을 돌아서 가면 마치 삶의 종점에 온 듯한 현장이 무섭게 눈앞을 가로막는다 개들은 수십 마리씩 옷을 벗고 불속을 뛰어들었거나 가마솥에 뛰어든 용감한 모습으로 판자위에 올려져 끝까지 이그러진 하늘을 몰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그들의 목에서 딱딱하게 굳은 울부짓음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마지막 본 하늘과 마지막으로 헤어진 주인의 얼굴이 눈동자에 굽혀 있음을 보았다 생선뼈처럼 딱딱하게 굳었거나 잿불에 굽힌 그들의 눈동자를 손가락 끝으로 쿡쿡 찌르면서 얼굴 표정하나 흐트리지 않는 사람들 나는 그들의 얼굴에서 자꾸만 추워지는 무서움을 느꼈다
인간이 가장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 할 마음의 어느 일부가 무너지며 뼈소리로 가득찬 정오의 시장을 돌아나오면 손아귀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반쯤 짤려나간 구포위에 뜬 하늘에서는 죽은 개의 비명소리만이 붉고 딱딱하게 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