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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1집 - 시낭송 1집 (199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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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1집 - 시낭송 1집 (199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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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1집 - 시낭송 1집 (1991)
날이 맑은 날
나는 성경을 들고 성당으로 갑니다 천천히 노인 걸음보다도 더 천천히 가쁜 숨을 몰아쉬며 기도를 울립니다 주님! 제 걸을이 칠순도 더 되 보이듯 천천히 천천히 걸어야하듯 천천히 데려가 주십시오 좀 더 아프게 내가 사랑하는 식구들의 아픔도 아니 이웃과 이 세상이 아픔도 다 받아서 아파서 걸음도 못 걸을 때까지 천천히 천천히 데려가 주십시오 날이 맑은 날 극진한 마음으로 기도를 울리고 돌아옵니다 *칠순도 더 된 걸음걸이로 천천히 천천히 가기 위하여 천천히 천천히 돌아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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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1집 - 시낭송 1집 (199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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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1집 - 시낭송 1집 (1991)
한송이 꽃이나
한줄의 싯귀에서 아니면 음악 속에서 내 눈이 빛날때도 있지만 그 보다도 더 아름답게 빛날 때는 당신이 내 앞에 있을때입니다 당신이 내 앞에 있기만 하면 하루종일 아무런 말이 없어도 한줄의 시가 되고 노래가 되고 내마음은 기도하는 시간처럼 맑아지고 또 잔잔해집니다 당신의 빛나는 눈이 아니더라도 당신의 달콤한 입술이 아니더라도 그저 가이 있다는것 그것이 나의 눈을 빛나게 하고 내 마음을 더없이 반짝이게 합니다 당신과 마주 앉아 있기만 하면 나의 눈은 저절로 아픔답게 빛나며 모든 세상이 아름답게 빛나고 모든 슬픔이 기쁨으로 바뀝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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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1집 - 시낭송 1집 (199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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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1집 - 시낭송 1집 (1991)
구포장이 서던날
나는 무수히 짖어대는 개소리를 들었다 밤천 둑을 따라 온갖 개들이 나와서 컹컹 하늘을 물어뜯기도하고 아예 짖는것을 포기해버린 놈들도 있었다 더러는 철망 안에서 수십 마리씩 비좁게 앉아 몸부림을 치는 놈들이 있는가 하면 쇠줄에 묶여 어디론가 팔여 갈 하늘을 향해 앞발을 떡 버티고 이를 드륵드륵 가는 놈들도 있었다 지나치는 사람드의 갈빗뼈에 송곳니를 박거나 아니면 언젠가 떠나야할 우리의 영혼까지 흔들어 놓는 무섭고 당찬 개소리를 들으며 바뻐바뻐 둑길을 돌아서 가면 마치 삶의 종점에 온 듯한 현장이 무섭게 눈앞을 가로막는다 개들은 수십 마리씩 옷을 벗고 불속을 뛰어들었거나 가마솥에 뛰어든 용감한 모습으로 판자위에 올려져 끝까지 이그러진 하늘을 몰고 있었다 나는 갑자기 온몸에 전율을 느끼며 그들의 목에서 딱딱하게 굳은 울부짓음을 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마지막 본 하늘과 마지막으로 헤어진 주인의 얼굴이 눈동자에 굽혀 있음을 보았다 생선뼈처럼 딱딱하게 굳었거나 잿불에 굽힌 그들의 눈동자를 손가락 끝으로 쿡쿡 찌르면서 얼굴 표정하나 흐트리지 않는 사람들 나는 그들의 얼굴에서 자꾸만 추워지는 무서움을 느꼈다 인간이 가장 사랑하고 또 사랑해야 할 마음의 어느 일부가 무너지며 뼈소리로 가득찬 정오의 시장을 돌아나오면 손아귀엔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반쯤 짤려나간 구포위에 뜬 하늘에서는 죽은 개의 비명소리만이 붉고 딱딱하게 타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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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1집 - 시낭송 1집 (199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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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1집 - 시낭송 1집 (1991)
나는 죄인입니다
아내의 구실과 어머니의 구실도 제대로 못하고 그냥 병상에 누워있는 죄인입니다 창밖엔 따스한 햇빛이 꽃처럼 아름답게 피었습니다 남편은 지금쯤 내가 해야할 부엌일을 할 것이고 아이들은 외로운 상념에 잠겨 공부도 제대로 못할 것입니다 정말 나는 죄인입니다 어쩌다 이런 병든 몸이 되어 아니 내 몸 하나 제대로 간수도 못하고서 온식구들 아프게 하는지 *이러고도 아내라고 할수 있는지 이러고도 어머니라 할수 있는지 정말 나는 죄인입니다 천하의 몹쓸 죄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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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1집 - 시낭송 1집 (199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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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1집 - 시낭송 1집 (199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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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1집 - 시낭송 1집 (1991)
수 많은 사람들중에
마음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진정 몇이나 있겠습니까 그저 기쁠때나 슬플때 마음을 다주고 가슴을 치며 웃고 울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때로는 응석을 부리기도 하고 때로는 마음대로 토라질 수 도 있는 넓고도 포근한가슴 그런 가슴에 안겨 천지도 모르게 잠들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사랑 하면서도 참사랑이 되지 못하고 문과 문을 닫고 선과 선을 그어놓고 체면이란 눈치를 보는 사람 같이 살고 같은 잠자리에 들면서도 온전히 마음이 편하지 못한 사람 온전히 하나가 되지 못한 사람 아 ~ 진정 마음을 다 주고도 행복한 사람이 그 몇이나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저 가슴에 요람처럼 안겨서 마음대로 울 수도 있고 마음대로 웃을 수도 있는 사람 그리하여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해 지는 사람 그런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단 한사람이라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세상을 다 가진 사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저 가슴에 요람처럼 안겨서 마음대로 울 수도 있고 마음대로 웃을 수도 있는 사람 그리하여 마음이 편해지고 행복해 지는 사람 그런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그런 사람을 단 한사람이라도 가진 사람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세상을 다 가진 사람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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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1집 - 시낭송 1집 (199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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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1집 - 시낭송 1집 (199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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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2집 - 시낭송 2집 (1991)
1. 한 통의 유서를 썼습니다.
아니, 수십 통의 유서를 썼습니다. 그러나 찢고 또 찢고 차마 남편과 자식들에게 남길 수가 없었습니다. 무어 잘한 것 하나 없는 서푼도 안되는 몸으로 유서라는 사치스런 종언을 하겠습니까. 그래, 갈 때는 가더라도 그따위 한이 되는 증표는 남기지 말자. * 그저 아이들의 마지막 손이나 잡고 그저 남편의 얼굴이나 보면서 잠시 이웃집에 나들이 가듯 그렇게 가면 되는 것을, 유서 같은 건 쓰지 않겠습니다. 사치스런 유서 같은 건 정말 생각지도 않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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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2집 - 시낭송 2집 (1991)
당신이 죽으면
눈을 기증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나는 극구 반대했습니다. 당신의 그 극진한 사랑의 마음을 내 어이 모르리오만, 남아 있는 나는 언제나 꿈 속에서 눈 없는 당신과 만날 것입니다. 허나 나는 압니다. 이승에서 우리가 눈을 뜨고 산것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눈을 준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하여 일생을 맹인이 되어 어둠 속에서 살아온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당신의 거룩한 생각에 미치지 못한 부끄러움이 오늘은 늙어버린 아리가 되어 시큼하게 눈두덩이 붉어집니다. 어쩌면 지금 당신이 병상에서 신음하는 것도 누군가의 아픔을 대신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어쩌면 당신의 죽음마져도 누군가의 죽음을 대신하고 잇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 당신이 죽으면 눈을 기증하겟다는 것을 반대만 했지 당신이 대신 죽는 것을 반대하지 못한 나의 부끄러움을 오늘에야 깊이깊이 뉘우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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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2집 - 시낭송 2집 (199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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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2집 - 시낭송 2집 (1991)
병원에서 당신이 치료를 받고 있는 동안
나는 당신 옆에서 마음을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이 링겔주사를 맞을 때 나는 마음의 정맥에 주사를 맞았습니다. 마음속에 피어오르는 아픔을 치료하고 참지 못하고 쓰러질 것 같은 약함도 치료하고 작은 것에 감사하고 작은 것에 만족할 줄 모르는 마음도 치료하고 구름처럼 피어 오르는 욕심도 치료하고 그냥그냥 인생을 포기해버리고 싶은 마음도 치료 하고 정처없이 어디론지 떠나버리고 싶은 울적함도 치료하고 조금씩 미워지는 서글픔도 치료하고 끝까지 사라하지 못할 것 같은 위태로움도 치료 하고 문득문득 미워지는 먹구름 같은 마음도 치료하고..... 병원에서 당신이 치료를 받고 있는 동안 나는 당신 옆에서 마음을 치료하고 있었습니다. 못난 이 마음을 치료받게 하기 위하여 어쩌면 당신은 스스로 고통을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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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2집 - 시낭송 2집 (1991)
먼 산에 아지랑이 피어오르고
창 가엔 흐드러지게 개나리가 피었습니다. 햇빛은 따뜻하고 봄나들이 가기 좋은 날, 나는 아랫목에 등걸처럼 누웠습니다. 남편은 내 옆에 앉아서 이마를 짚고 있고, 아이들은 책상에 앉아 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 말은 아니 해도 얼마나 같이 놀러가고 싶겠습니까. 손을 잡고 재잘거리며 산과 들로 맑은 기쁨을 얼마나 마시고 싶겠습니까. 햇빛은 저리 눈부시게 반짝이는데 한 번도 못 간 봄나들이가 오늘따라 뜨거운 눈물이 되어 마음속에 가득히 차오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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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2집 - 시낭송 2집 (1991)
눈이 싸락싸락 내리는 날
나는 친구와 함께 간이역에 서 있었다. 오-버 깃을 세워도 추운 이 겨울, 하나의 원통형 난로에서는 무료한 시간이 찌직찌직 타오르고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아무런 생각도 없이 눈 내리는 창 밖만 내다보고 있었다. 가끔 양은 주전자에서 엽차 끓는 소리가 나고 우리가 버린 추억들이 곱게 굽혀 유리창에 하얗게 성애로 피어 오르고, 친구와 나는 차가 올 때꺄지 아무런 말도 없이 창 밖을 내다보고 만 있었다. 이야기가 없어도 좋은 날에 그저 눈 내리는 풍경과 톱밥 타는 소리, 그리고 가끔 주전자 뚜껑이 덜컹거리거나 푸- 푸- 강물이 숨쉬는 소리. 우리는 그러한 자연의 소리를 귀담아 들으며 오래오래 말도 없이 서 있기만 하였다. 겨울은 자꾸만 길어지고, 그 길어진 통로를 비집고 간간 낭만과 꿈을 내려주는 눈을 바라보면서 기차가 섰다 가도 나는 그대로 서 있었다. 친구도 떠나고 아무도 없는 텅 빈 간이역, 깨끗하고 순결한 눈 속에서 나는 더욱 맑아진 눈 내리는 소리와 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 그리고 하얗게 익어가는 한 장의 추억을 보고 있었다. 눈이 어둠으로 변할 때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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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2집 - 시낭송 2집 (1991)
약을 먹고 주사를 맞고
오만 가지 약을 써도 고통이 가라앉지 않을 때, 나는 스스로 죽고도 싶었습니다. 나 하나 죽으면 그만 가족들의 슬픔도 그만 이승에 자물통을 채우고 벌떡 일어나 저승으로 가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라도 있어 달라는 사람이 있어 이렇게라도 살아있어야 한다는 사랑이 있어 나는 손에 든 자물통을 내던지고 말았습니다. * 아무리 아픈 고통이 와도 나를 필요로 하는 한 나에 대한 사랑이 있는 한, 나는 이 아픔을 이겨 나갈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이승에서 살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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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2집 - 시낭송 2집 (1991)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아내의 병은 어찌하여 변함이 없습니까. 아니, 변하기는 커녕 점점 더 깊은 수령 속을 헤매입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최첨단 의료기기와 약품들이 쏟아져 나오는데도 결국 아내의 병만은 고칠 수가 없는 것입니까. 하느님! 이젠 무슨 단안을 내릴 때도 되지 않았 습니까. 어깨를 툭 치면서 '일어나라' 한 마디만 정말 한 마디만 해주십시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외에는 아내의 병을 고칠 수가 없습니다. 십년하고도 삼년, 그 동안 맞은 주사가 몇 천 대며 먹은 약이 몇 천 봉지가 되겠습니까. * 하느님! 이젠 거두어 주실 때도 된 것 같은데 얼마나 더 눕혀놓아야 하는 것입니까. 전생에 지은 죄가 그리 많다면 차라리 고통없이 데려가 주십시오. 더는 보지 못할 아픔의 하소연을 정말 이젠 듣고 보지 못하겠습니다. 원컨데 하느님! 제발 어깨 한 번 툭 치며 '일어나라!' 한 마디만 해주십시오. 그 한 마디만 내려 주십시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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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2집 - 시낭송 2집 (1991)
설풋 잠 들었다 눈을 뜨면
당신은 그대로 머리맡에 앉아계십니다 시간은 새벽 한시 그때까지도 잠을 안자고 걱정스러운 얼굴로 내려다보고 계십니다 내가 푹 잠이 들어 세상만사 다 잊고 깊은 잠이 들때까지 지켜봐 주시는 당신 눈을 뜰때마다 손을 꼬옥 잡아 주시는 그 따슨 체온, 별빛처럼 아름답게 내 영혼에 새깁니다 이러다, 이러다 내가 죽으면 당신의 그 따슨 사랑이 그리워 정녕 저승에도 못 갈것 같습니다 당신이 나의 머리맡에서 나의 잠을 밤새 지켜봐 주시듯 내 영혼 또한 당신 곁에 머물어 간절한 마음으로 지켜봐 드릴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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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2집 - 시낭송 2집 (1991)
사랑합니다.
좀 못하고 어수룩하고 수더분한 당신 나는 그런 당신을 사랑합니다. 활활 타는 장작불과 같은 찬란한 사랑이 아니라 모닥불처럼 은은하고 다뜻하게 밤을 밝히고 가슴을 덥힐 수 있는 그런 당신을 사랑합니다. * 모두가 쬐다가 가버린 싸늘한 밤 꺼질듯 꺼질듯 남아 있는 불씨 하나, 그런 불씨를 다둑이면서 식어가는 밤을 덥히고 꺼져가는 사랑을 피워낼 수 있는 그런 당신을 사랑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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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8 | ||||
from 박상원 & 황신혜 2집 - 시낭송 2집 (1991)
당신을 사랑하다가
당신을 못견디게 사랑하다가 이대로 헤어질 사랑이라면 헤어져 잊혀질 사랑이라면 괴로운 병이라도 앓고 싶습니다 편작도 못 고칠 확실한 병 하나로 당신을 탕탕 못질해 놓고 나 혼자 아파하며 사랑하고 싶습니다 * 이대로 헤어질 사랑이라면 헤어져 잊혀질 사랑이라면 죽도록 병 하나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죽도록 당신만을 사랑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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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2집 - 시낭송 2집 (1991)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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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박상원 & 황신혜 2집 - 시낭송 2집 (1991)
밤새도록 눈이 내리는 도회지의 빌딩밑에서
삐꺽삐꺽 기계소리를 들으며 나는 안델센의 동화책을 펼칩니다. 각박한 삶을 위하여 잠시 잊고 있던 순수의 대문 앞에서 나는 내 몸에 묻은 먼지와 내 마음에 묻은 기름기를 떨어냅니다. 한 장의 문을 넘어 저토록 고운 눈이 송송 내리는데 깊은 동화의 나라에는 순순한 어린이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냥팔이 소녀도 보이고 인어공주의 얼굴도 보이고 송아지, 말, 염소, 강아지 따위들이 마음을 풀어 놓고 뛰어다니는 것도 보입니다. 나는 갑자기 그들과 어울리고 싶어져서 눈 속으로 신나게 뛰어들지만 그들은 순식간에 멀리멀리 달아나고 맙니다. 아마 내가 너무 무서웠던지 내 몰골이 너무 추했던 모양입니다. 나는 그들이 사라진 언덕에 서서 가슴이 하나 둘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눈시울이 자꾸만 시큼거리며 기계소리가 삐꺽거리고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각박함이 분명히 내 얼굴에 덕지덕지 묻어 있었습니다. 잃었던 동화의 나라로 천진무구한 어린이들의 세계로 결국 내가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에는 안델센은 나를 대문 밖으로 밀어 내고는 철컥 소리를 내며 동화책에 자물통을 채웠습니다. 잃어버린 내 어린 시절이 저 눈 속에서 하나하나 내려 쌓이고 나는 그 순순의 눈을 바라보면서 목을 축 늘어뜨린 채 마치 유형을 떠나는 죄수와도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