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태춘은 사회성 짙은 "한국적 포크"를 추구해온 대한민국의 가수, 시인, 작사가, 작곡가, 문화운동가, 사회운동가이다. 서정성과 사회성을 모두 아우르는 노랫말을 직접 쓰고 이를 국악적 특색이 녹아 있는 자연스러운 음률에 실어서 작품을 발표하기 때문에 한국의 대표적인 음유시인으로 불린다. 음악 활동에 그치지 않고 각종 문화운동과 사회운동에 열성적으로 헌신하는 운동가이기도 한 정태춘의 활동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1990년대 초에 사전심의 폐지운동을 전개하여 1996년 헌법재판소의 '가요 사전심의 위헌 결정'을 이끌어낸 일이다. .... ....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사랑과 순결이 넘쳐 흐르는 이 땅 새악시 하나 얻지 못해 농약을 마시는 참담한 농촌의 총각들은 말고 특급 호텔 로비에 득시글거리는 매춘 관광의 호사한 창녀들과 함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기름진 음식과 술이 넘치는 이 땅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가 쫓겨난 힘없는 공순이들은 말고 하룻밤 향락의 화대로 일천만원씩이나 뿌려대는 저 재벌의 아들과 함께 우린 모두 풍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만족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저들의 염려와 살뜰한 보살핌 아래 벌건 대낮에도 강도들에게 잔인하게 유린당하는 여자들은 말고 닭장차에 방패와 쇠몽둥이를 싣고 신출귀몰하는 우리의 백골단과 함께 우린 모두 안전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평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양심과 정의가 넘쳐 흐르는 이 땅 식민 독재와 맞서 싸우다 감옥에 갔거나 어디론가 사라져간 사람들은 말고 하루 아침에 위대한 배신의 칼을 휘두르는 저 민주인사와 함께 우린 너무 착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바보같이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거짓 민주 자유의 구호가 넘쳐흐르는 이 땅 고단한 민중의 역사 허리 잘려 찢겨진 상처로 아직도 우는데 군림하는 자들의 배 부른 노래와 피의 채찍 아래 마른 무릎을 꺾고 우린 너무도 질기게 참고 살아왔지 우린 너무 오래 참고 살아왔어 아, 대한민국, 아, 저들의 공화국... 아, 대한민국. 아, 대한민국...
"맞벌이 영세 서민 부부가 방문을 잠그고 일은 나간 사이, 지하 셋방에서 불이나 방안에서 놀던 어린 자녀들이 밖으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질식해 숨졌다. 불이 났을 때 아버지 권씨는 경기도 부천의 직장으로, 어머니 이씨는 합정동으로 파출부 일을 나가 있었으며, 아이들이 방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방문을 밖에서 자물쇠로 잠그고, 바깥 현관문도 잠가 둔 상태였다. 연락을 받은 이씨가 달려와 문을 열었을 때, 다섯 살 혜영양은 방 바닥에 엎드린 채, 세 살 영철군은 옷더미 속에 코를 묻은 채 숨져 있었다. 두 어린이가 숨진 방은 3평 크기로 바닥에 흩어진 옷가지와 비키니 옷장 등 가구류가 타다만 성냥과 함께 불에 그을려 있었다. 이들 부부는 충남 계룡면 금대2리에서 논 900평에 농사를 짓다가 가난에 못이겨 지난 88년 서울로 올라 왔으며, 지난해 10월 현재의 지하방을 전세 4백만원에 얻어 살아왔다. 어머니 이씨는 경찰에서 '평소 파출부로 나가면서 부엌에는 부엌칼과 연탄불이 있어 위험스럽고, 밖으로 나가면 길을 잃거나 유괴라도 당할 것 같아 방문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면서 눈물을 흘렸다. 평소 이씨는 아이들이 먹을 점심상과 요강을 준비해 놓고 나가 일해 왔다고 말했다. 이들이 사는 주택에는 모두 6개의 지하방이 있으며, 각각 독립구조로 돼 있다."
젊은 아버지는 새벽에 일 나가고 어머니도 돈 벌러 파출부 나가고 지하실 단칸방엔 어린 우리 둘이서 아침 햇살 드는 높은 창문 아래 앉아 방문은 밖으로 자물쇠 잠겨있고 윗목에는 싸늘한 밥상과 요강이 엄마, 아빠가 돌아올 밤까지 우린 심심해도 할게 없었네 낮엔 테레비도 안 하고 우린 켤 줄도 몰라 밤에 보는 테레비도 남의 나라 세상 엄마, 아빠는 한 번도 안나와 우리 집도, 우리 동네도 안나와 조그만 창문의 햇볕도 스러지고 우린 종일 누워 천장만 바라보다 잠이 들다 깨다 꿈인지도 모르게 또 성냥불 장난을 했었어
배가 고프기도 전에 밥은 다 먹어치우고 오줌이 안 마려운데도 요강으로 우린 그런 것밖엔 또 할 게 없었네 동생은 아직 말을 잘 못하니까 후미진 계단엔 누구 하나 찾아오지 않고, 도둑이라도 강도라도 말야 옆방에는 누가 사는지도 몰라, 어쩌면 거긴 낭떠러지인지도 몰라
성냥불은 그만 내 옷에 옮겨 붙고 내 눈썹, 내 머리카락도 태우고 여기 저기 옮겨 붙고 훨, 훨 타올라 우리 놀란 가슴 두 눈에도 훨, 훨
엄마, 아빠! 우리가 그렇게 놀랐을 때 엄마, 아빠가 우리와 함께 거기 있었다면...
방문은 꼭 꼭 잠겨서 안 열리고 하얀 연기는 방 안에 꽉 차고 우린 서로 부둥켜 안고 눈물만 흘렸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우린 그렇게 죽었어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 함께 있었다면... 아니, 엄마만이라도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 우리가 방 안의 연기와 불길 속에서 부둥켜 안고 떨기 전에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 방문을 세차게 두드리기 전에 손톱에서 피가 나게 방 바닥을 긁어대기 전에, 그러다가 동생이 먼저 숨이 막혀 어푸러지기 전에, 그 때, 엄마, 아빠가 거기에 함께만 있었다면... 아니야, 우리가 어느 날 도망치듯 빠져 나온 시골의 고향 마을에서도 우리 네 식구 단란하게 살아 갈 수만 있었다면... 아니, 여기가 우리처럼 가난한 사람들에게도 축복을 내리는 그런 나라였다면... 아니, 여기가 엄마, 아빠도 주인인 그런 세상이었다면... 엄마, 아빠! 너무 슬퍼하지 마 이건 엄마, 아빠의 잘못이 아냐 여기 불에 그을린 옷자락의 작은 몸둥이. 몸둥이를 두고 떠나지만 엄마, 아빠! 우린 이제 천사가 되어 하늘 나라로 가는 거야 그런데 그 천사들은 이렇게 슬픈 세상에는 다시 내려 올 수가 없어 언젠가 우리 다시 하늘 나라에서 만나겠지 엄마, 아빠!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배운 가장 예쁜 말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겠어 엄마, 아빠... 엄마, 아빠... 이제, 안녕... 안녕..."
그대, 행복한가 스포츠 신문의 뉴스를 보며 시국을 논하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어린이 유괴 살해 기사는 있지, 있어 그대, 행복한가 보수 일간지 사설을 보며 정치적으로 고무 받으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점심 굶는 어린애들 얘기는 있지, 있어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우리중 누가 그 애들을 굶기고 죽이는지 정말 알고 있나, 알고 있나
그대, 행복한가 시장 개방, 자유 경제, 수입 식품에 입맛 돋으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칼로리와 땀 냄새는 있지, 있어 그대, 행복한가 주한 미군 기동 훈련과 핵무기에 고무받으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평화와 인도주의의 구호는 있지, 있구 말구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우리중 누가 그것들의 희생양이며 표적인지 정말 알고 있나, 알고 있나
그대, 행복한가 거듭나는 공화국마다 그 새 깃발을 쫓아 행진하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민족과 역사의 거창한 개념은 있지, 있어 그대, 행복한가 막강한 공권력과 군사력에 고무 받으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도 보호하고 지키려는 그 무엇은 있지, 그 무엇이 그대,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우리중 누가 그것들의 대상이며 주인인지 정말 알고 있나, 알고 있나
그대, 알고 있나 끊임없이 묶여 끌려가는 사람들을 매도하시는 그대, 그대 그래 거기에 그들을 가두는 법전과 감옥이 있지 법전과 감옥이 그대 알고 있나 노동하는 부모밑에 노동자로 또 태어나는 저 아이들, 아이들 그래, 저들은 결국 다른 무엇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없다는 것을 그러나,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그들의 숫자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정말 알고 있나, 알고 있나 그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정말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정말 알고 있나 그들의 분노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것을
맑은 하늘의 햇살이 남한이나 북한이나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제일 세계나 제삼 세계나 아니, 서울의 변두리 셋방살이 내 집에도 차별없이 평등히, 따숩게 내리 쪼일 때 일층의 젊은 사모님 햇살이 따가워 넓은 마루 유리문에 그물같은 커튼을 치고 발톱에, 발톱에 매니큐어, 매니큐어 빨갱이 보다 새빨간 매니큐어를 바를 때 지하실에 우리 집 애들 책가방만한 창가로 흘러 드는 찌그러진 한 조각의 햇살 장난감처럼 만지작거리며 놀다 그 창에 대고 조용히 묻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요?" 이제 잘살기는 다 틀렸네 예라, 있는 놈의 세상, 가진 놈의 세상 열 받쳐서 미치겠네, 하체 힘도 쭉 빠지네
맑은 하늘의 햇살이 남한이나 북한이나 선진국이나 후진국이나, 제일 세계나 제삼 세계나 아니, 서울의 변두리 비닐 하우스 동네에도 차별없이 평등히 따숩게 내리 쪼일 때 썩어가는 나라 자본의, 독점의 발톱이 한 필지, 두 필지 숨차게 줄을 그어댈 적에 촌놈들 살겠다고 떠나온들 무엇하나 파출부에 날품팔이 쌩몸 팔아 연명할 적에 못난 부모들 막일 나가고, 버려진 애들 아무거나 줏어 먹고, 아무데나 묽은 똥질을 할 적에 깡패들이 들이닥쳐 그 집을 부술제 그 아이들이 조용히 묻네 "우리들 세상은 이제 망한건가요?" 아니, 이제 바로 시작이다 저 망치, 몽둥이를 뺏아라. 이제 너희들의 것이다 이 더런 집들을 때려 부수자, 부숴, 부숴, 부숴버려! (그만!) "이젠 또 무엇을 부술까요?" 여기 패배와 순종, 체념과 그 비굴 이 애비의 의식에 내리쳐라 이 죽은 의식에 내리쳐라, 쳐라, 쳐라!! 이제 바로 시작이다 이제 바로 시작이다 우리 세상, 우리 세상, 우리 세상, 우리 세상!
문승현이는 쏘련으로 가고 거리엔 황사만이 그가 떠난 서울 하늘 가득 뿌옇게, 뿌옇게 아, 흙바람... 내 책상머리 스피커 위엔 고아 하나가 울고 있고 그의 머리 위론 구름 조각만 파랗게, 파랗게 그 앞에 촛대 하나 김용태 씨는 처가엘 가고 백선생은 궁금해하시고 "개 한 마리 잡아 부른다더니 소식 없네. 허 참..." 사실은 제주도 강요배 전시회엘 갔다는데 인사동 찻집 귀천에는 주인 천상병 씨가 나와 있고 "나 먼저 왔다. 나 먼저 왔다. 나 먼저 커피 주라 나 먼저 커피 주라 저 손님보다 내가 먼저 왔다 나 먼저 줘라. 나 먼저 줘라." 민방위 훈련의 초빙 강사 아주 유익한 말씀도 해주시고 민방위 대원 아저씨들 낄낄대고 박수 치고 구청 직원 왈 "반응이 좋으시군요. 또 모셔야겠군요." 백태웅이도 잡혀가고 아, 박노해, 김진주 철창 속의 사람들 철창 밖의 사람들 아, 사람들... 작년에 만삼천여 명이 교통사고로 죽고 이천이삼백여 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죽고 천이백여 명의 농민이 농약 뿌리다 죽고 또 몇 백 명의 당신네 아이들이 공부, 공부에 치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죽고, 죽고, 죽고... 지금도 계속 죽어가고... 압구정동에는 화사한 꽃이 피고 저 죽은 이들의 얼굴로 꽃이 피고 그 꽃을 따먹는 사람들, 입술 붉은 사람들 아, 사람들... 노찾사 노래 공연장엔 희망의 아침이 불려지고 비좁은 객석에 꽉찬 관객들 너무나도 심각하고 아무도, 아무 말도... 문승현이는 쏘련에 도착하고 문대현이는 퇴근하고 미국의 폭동도 잦아들고 잠실 야구장도 쾌청하고 프로 야구를 보는 사람들, 테레비를 보는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저 산꼭대기 아버지 무덤 거친 베옷 입고 누우신 그 바람 모서리 나 오늘 다시 찾아가네 바람 거센 갯벌 위로 우뚝 솟은 그 꼭대기 인적 없는 민둥산에 외로워라 무덤 하나 지금은 차가운 바람만 스쳐갈 뿐 아, 향불 내음도 없을 갯벌 향해 뻗으신 손발 시리지 않게 잔 부으러 나는 가네 저 산꼭대기 아버지 무덤 모진 세파 속을 헤치다 이제 잠드신 자리 나 오늘 다시 찾아가네 길도 없는 언덕배기에 상포자락 휘날리며 요랑 소리 따라 가며 숨 가쁘던 그 언덕길 지금은 싸늘한 달빛만 내리 비칠 아, 작은 비석도 없는 이승에서 못다 하신 그 말씀 들으러 잔 부으러 나는 가네 저 산꼭대기 아버지 무덤 지친 걸음 이제 여기 와 홀로 쉬시는 자리 나 오늘 다시 찾아가네 펄럭이는 만장 너머 따라오던 조객들도 먼 길 가던 만가소리 이제 다시 생각할까 지금은 어디서 어둠만 내려올 뿐 아, 석상 하나도 없는 다시 볼 수 없는 분 그 모습 기리러 잔 부으러 나는 가네
소리 없이 어둠이 내리고 길손처럼 또 밤이 찾아 오면 창가에 촛불 밝혀 두리라 외로움을 태우리라 나를 버리신 내 님 생각에 오늘도 잠 못 이뤄 지새우며 촛불만 하염없이 태우노라 이 밤이 다 가도록 사랑은 불빛아래 흔들리며 내 마음 사로 잡는데 차갑게 식지 않는 미련은 촛불처럼 타오르네 나를 버리신 내 님 생각에 오늘도 잠 못 이뤄 지새우며 촛불만 하염없이 태우노라 이 밤이 다 가도록
눈물에 옷자락이 젖어도 갈 길은 머나먼데 고요히 잡아주는 손 있어 서러움을 더해 주나 저 사공이 나를 태우고 노 저어 떠나면 또 다른 나루에 내리면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서해 먼 바다 위론 노을이 비단결처럼 고운데 나 떠나가는 배의 물결은 멀리 멀리 퍼져간다 꿈을 꾸는 저녁 바다에 갈매기 날아가고 섬 마을 아이들의 웃음소리 물결 따라 멀어져 간다 어두워지는 저녁 바다에 섬 그늘 길게 누워도 뱃길에 살랑대는 바람은 잠잘 줄을 모르네 저 사공은 노만 저을 뿐 한 마디 말이 없고 뱃전에 부서지는 파도 소리에 육지 소식 전해오네
빗줄기 흐르는 나뭇잎 사이로 뿌옇게 비치는 가로등 불빛 나 홀로 외로이 비를 맞으며 젖은 옷깃세우고 어딜 가나 그녀 돌아선 길목위로 촉촉히 적시며 내리던 비 가버린 사랑을 가슴에 새기며 내리는 빗속을 나는 간다 비야 부슬비 그녀의 머리 위에 내려라 비야 부슬비 사랑의 빗물로 내려라 공휴일 고궁의 산책길에 우리의 머리위로 내리던 비 마주 잡은 우리들의 잡은 손에도 사랑으로 적시던 부슬비 이제는 그 길을 홀로 걸으며 그녀 돌아선 길목위로 가버린 사랑을 가슴에 새기며 나 홀로 나 홀로 걸어간다 비야 부슬비 그녀의 머리 위에 내려라 비야 부슬비 사랑의 빗물로 내려라
한 여름 밤의 서늘한 바람은 참 좋아라 한낮의 태양 빛에 뜨거워진 내 머릴 식혀 주누나 빳빳한 내 머리카락 그 속에 늘어져 쉬는 잡념들 이제 모두 깨워 어서 깨끗이 쫓아 버려라 한 여름 밤의 고요한 정적은 참 좋아라 그 작은 몸이 아픈 나의 갓난 아기도 잠시 쉬게 하누나 그의 곁에서 깊이 잠든 피곤한 그의 젊은 어미도 이제 편안한 휴식의 세계로 어서 데려 가거라 아무도 문을 닫지 않는 이 바람 속에서 아무도 창을 닫지 않는 이 정적 속에서 어린 아기도 잠이 들고 그의 꿈 속으로 바람은 부는데 한 여름밤의 시원한 소나기 참 좋아라 온갖 이기와 탐욕에 거칠어진 세상 적셔 주누나 아직 더운 열기 식히지 못한 치기 어린 이 젊은 가슴도 이제 사랑과 연민의 비로 후드득 적셔 주어라 한 여름 밤의 빛나는 번개는 참 좋아라 작은 안락에 취하여 잠들었던 혼을 깨워 주누나 번쩍이는 그 순간의 빛으로 한밤의 어둠이 갈라지니 그 어둠 속에 헤매는 나의 길도 되밝혀 주어라 아무도 멈추게 할 수 없는 이 소나기 속에서 아무도 가로 막을 수 없는 이 번개 속에서 어린 아기도 잠이 들고 나의 창으로 또 번개는 치는데
갇힌 자 더욱 자유로운 땅 이 땅에 흐느끼는 소리여 높은 담벽아래 시들은 풀잎 저보다 더욱 초라한 역사여 깨인 자들에게 쏟아지는 시련 달빛 속으로 쫓기는 양심들 주검없이 죽어간 청춘의 꽃들 다시 활짝 필 참세상은 어디 아 묶여서도 통일이라네 다시 만나야 할 형제 있으니 아 갇혀서도 해방이라네 조국의 역사로 살아 숨쉬니
해는 기울고, 한낮 더위도 식어 아드모어 공원 주차장 벤치에는 시카노들이 둘러앉아 카드를 돌리고 그 어느 건물보다도 높은 가로수 빗자루 나무 꼭대기 잎사귀에 석양이 걸릴 때 길 옆 담벼락 그늘에 기대어 졸던 노랑머리의 실업자들이 구부정하게 일어나 동냥 그릇을 흔들어댄다 커다란 콜라 종이컵 안엔 몇 개의 쿼터, 다임, 니켈 남쪽 빈민가 흑인촌 담벼락마다 온통 크고 작은 알파벳 낙서들 아직 따가운 저녁 햇살과 검은 노인들 고요한 침묵만이 음, 프리웨이 잡초 비탈에도 시원한 물줄기의 스프링쿨러 물 젖은 엉겅퀴 기다란 줄기 캠리 차창 밖으로 스쳐가고 은밀한 비벌리 힐스 오르는 길목 티끌, 먼지 하나 없는 로데오 거리 투명한 쇼윈도 안엔 자본보다도 권위적인 아, 첨단의 패션 엘 에이 인터내셔널 에어포트 나오다 원유 퍼 올리는 두레박들을 봤지 붉은 산등성이 여기 저기, 이리 끄덕 저리 끄덕 노을빛 함께 퍼올리는 철골들 어둠 깃들어 텅 빈 다운타운 커다란 박스들과 후진 텐트와 노숙자들 길 가 건물 아래 줄줄이 자리 펴고 누워 빌딩 사이 초저녁 별을 기다리고 그림 같은 교외 주택가 언덕 길 가 창문마다 아늑한 불빛 인적없는 초저녁 뽀얀 가로등 그 너머로 초승달이 먼저 뜬다 마켓 앞에서 식수를 받는 사람들 리쿼에서 개피 담배를 사는 사람들 버거킹에서 늦은 저녁을 먹는 사람들 아, 아메리카 사람들 캘리포니아의 밤은 깊어가고 불 밝은 이층 한국 기원 코리아 타운 웨스트 에잇스 스트리트 코메리칸 오피스 주차장 긴 철문이 잠길 때 길 건너 초라한 아파트 어느 골목에서 엘 에이 한 밤의 정적을 깬다 "백인들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야. 미국에 와서 백인들을 잘 못 보겠어" (따당, 따당땅, 따당 땅 땅) 한국 관광객 질겁에 간 떨어지는 총소리 따당, 따당땅, 따당
육만 엥이란다 후꾸오까에서 비행기 타고 전세 버스 부산 거쳐, 순천 거쳐 섬진강 물 맑은 유곡 나루 아이스 박스 들고, 허리 차는 고무장화 신고 은어잡이 나온 일본 관광객들 삼박 사일 풀코스에 육만 엥이란다 아... 초가 지붕 위로 피어오르는 아침 햇살 신선하게 터지는 박꽃 넝쿨 바라보며 리빠나 모노 데스네, 리빠나 모노 데스네 까스 불에 은어 소금구이 혓바닥 사리살살 굴리면서 신간선 왕복 기차값이면 조선 관광 다 끝난단다 음, 음 육만 엥이란다 아... 초가 지붕 위로 피어오르는 아침 햇살 신선하게 터지는 박꽃 넝쿨 바라보며 리빠나 모노 데스네, 리빠나 모노 데스네 낚싯대 접고, 고무 장화 벗고 순천의 특급 호텔 싸우나에 몸 풀면 긴 밤 내내 미끈한 풋가시내들 써비스 한 번 볼만한데 음, 음 환갑내기 일본 관광객들 칙사 대접받고, 그저 아이스 박스 가득, 가득 등살 푸른 섬진강 그 맑은 몸값이 육만 엥이란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나니나니나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 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저 평화의 땅을 찾아 가는 배여 가는 배여 그곳이 어드메뇨 강남길로 해남길로 바람에 돛을 맡겨 물결 너머로 어둠속으로 저기 멀리 떠나가는 배 너를 두고 간다는 아픈 다짐도 없이 남기고 가져갈것 없는 저 무욕의 땅을 찾아 가는 배여 가는 배여 언제 우리 다시 만날까 꾸밈없이 꾸밈없이 홀로 떠나가는 배 바람소리 파도소리 어둠에 젖어서 밀려올 뿐 저기 떠나가는 배 거친 바다 외로이 겨울비에 젖은 돛에 가득 찬바람을 안고서 언제 다시 오마는 허튼 맹세도 없이 봄날 꿈같이 따사로운 저 평화의 땅을 찾아 가는 배여 가는 배여 그곳이 어드메뇨 강남길로 해남길로 바람에 돛을 맡겨 물결 너머로 어둠속으로 저기 멀리 떠나가는 배 너를 두고 간다는 아픈 다짐도 없이 남기고 가져갈것 없는 저 무욕의 땅을 찾아 가는 배여 가는 배여 언제 우리 다시 만날까 꾸밈없이 꾸밈없이 홀로 떠나가는 배 바람소리 파도소리 어둠에 젖어서 밀려올 뿐
온종일 불던 바람 잠들고 어둠에 잿빛하늘도 잠들어 내 맘의 창가에 불 밝히면 평화는 오리니 상념은 어느새 날아와서 내 어깨 위에 앉아 있으니 오늘도 꿈속의 길목에서 날개 펼치려나 내방에 깃들인 밤 비단처럼 고와도 빈 맘에 맞고 싶은 낮에 불던 바람 길은 안개처럼 흩어지고 밤은 이렇게도 무거운데 먼 어둠 끝까지 창을 열어 내 등불을 켜네 긴긴밤을 헤메이다 다시 돌아온 상념은 내방 한구석에서 편지를 쓰네 나도 쓰다만 긴 시를 쓰고 운따라 흠흠 흥얼거리면 자화상도 나를 응시하고 난 부끄럽네 이런 가난한 밤 이런 나의 밤
1996년 6월 7일 우리 대중음악계에 복음이 찾아왔다. 강산에, 넥스트, 윤도현, 노래를 찾는 사람들 등 여러 뮤지션이 이를 축하하며 그날부터 3일 동안 기쁨의 노래를 불렀다. 물론 여기에는 가요계가 환희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정태춘도 함께했다. 사흘간 치러진 콘서트 이름은 [자유]였다. 20년 전 6월 '음반사전심의제도' 폐지를 골자로 하는 음반 및 비디오에…...
카세트테이프 형태의 ‘아, 대한민국…’ 출반은, 한국 대중가요사상 최초로, 이미 상당한 명망성을 지니고 있던 대중가요 가수가 스스로 제작자가 돼 자신의 정규음반을 비합법음반으로 내놓은 사건이다. 그는 이 행위만으로도 음반법에 의거, 2년 이하의 징역 혹은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이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더 험악했던 유신정권 말기에 김민기는 ‘공장의 불빛’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그나마 도시산업선교회라는 종교단체가 법적 책임을 져주기로 한 것이었다. 한때 잘 나가던 인기가수였고 1980년대 중반 성공적으로 작가주의적 언더그라운드로 자리잡은 정태춘이라는 가수가, 법적 책임을 져줄 외피조차 없이 불법행동을 감행해버린 이 사건은,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대투쟁...
현재 거장의 위치에 당당히 서 있는 정태춘의 시작을 알렸던 데뷔 앨범이 바로 본작 ‘시인의 마을’이다. 군에서 갓 제대한 정태춘은 모든 곡의 작사와 작곡을 혼자 이뤄냈으며 약간의 편곡만을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 만들었다. 특유의 구수함을 바탕으로 솔직하면서도 시적인 그의 노래들은 당시 젊은 층을 사로잡았다. 실제로 시를 좋아하는 정태춘의 곡들 속에서 한국 특유의 정서를 읽어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앨범 타이틀곡으로 잔잔하게 흘러가는 포크송 ‘시인의 마을’, 마치 비틀스의 ‘When I’m Sixty Four’를 연상하는 인트로를 가진 ‘사랑하고 싶소’, 이후 박은옥과 함께 발표한 앨범에서 다시 녹음했던 히트곡 ‘촛불’을 필두로 앨범은 차분하게 진행된다. 너무나 한국적인 ‘木浦의 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