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 노래, 우리 이제 다시 흐르니
시작부터 ‘하나옴니버스’는 ‘하나음악’의 정신을 표현하는 활동이었다. 동류의 정서를 묶어냈던 터전으로 하나음악이 특별한 이름이 될 때, 구성원 각자의 음악 활동을 아우르는, 모두가 함께하는 ‘옴니버스’ 음반이 있었다. 시장에 차고 넘치는 컴필레이션 음반들 속에 유독 의미가 달라 눈에 띄었고, 듣는 이도, 만드는 이도 그것이 각별했다. 그 음반들로부터 우리는 그들의 개성을 묶어서 듣기도 하고, 새로운 신인을 소개받기도 하고, 알고 있던 아티스트의 다른 얼굴을 만나기도 하고, 하나의 주제가 개성적으로 변주하는 노래들을 비교적 높은 완성도로 들을 수 있었다.
‘하나음악’이 ‘푸른곰팡이’로 모여 활동을 재개하고, 그때 그 시절의 아티스트가 다시 음반을 내고, 다시 발굴한 아티스트들이 새로이 소개될 때쯤 조금씩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대체 언제쯤이면 또 들을 수 있을까, 그들만의 옴니버스.
조용한 시작이었다. 오래 기다리던 큰 형님, 조동진이 프로듀서의 짐을 지고 나섰다. ‘강’이라는 주제를 스스로를 포함한 모두에게 던지고 신중하고 느린 모두를 분주하게 움직이도록 등을 떠밀었다. 그가 인터뷰에서 밝힌 바, “평생 동안 강을 노래한다 해도 부족할 것이지만 그렇게 하고 싶다”했던 이유가 있었다. 강은 모든 삶을 담을 수 있는 근원적인 은유가 되고 환유가 되기에 다양하게 노래로 불려야 마땅하다. 그리고, 끈질기게 흐르는 강의 모습 자체는 하나음악에서 푸른곰팡이로 끈질기게 이어지고 흘러가는 그들 스스로의 모습을 닮아있기도 하다. 그들이 10년 넘는 시간을 기다려 다시 모여 만든 음반의 주제로 '강'은 너무나 타당하다.
기다린 만큼 풍족하다. 15개의 트랙이 빼곡하게 두 장의 CD에 가득 차 있다. 조동진, 조동익을 필두로 장필순, 이규호, 박용준, 오소영, 고찬용, 한동준, 이경, 조동희와 같은 익숙한 이름들 뿐 아니라 송용창, 소히 처럼 푸른곰팡이 이후 합류한 젊은 아티스트들, 처음으로 소개되는 신인 새의 전부, 그리고 다시 한 가족이 된 고참들 이무하, 정원영의 노래를 만날 수 있다.
앨범 제목과 동명인 조동진의 노래, ‘강의 노래’ 속에 이런 가사가 있다. “고여드는 마음의 강물 / 우리 이제 다시 흐르니.” 다시 흐르는 마음의 강물, 저마다 담은 모습은 달라도 모여서 하나의 흐름이 되었다.
[CD 1]
[조동익, 장필순] 엄마야 누나야, 오래된 슬픔 건너
전체 옴니버스를 여는 시작은 조동익과 장필순의 연이은 두 트랙이다. 이 두 곡은 각각의 트랙이지만 또 듣고 보면 하나의 트랙같이 이어지는 흐름이 느껴진다. 2분여의 엄청난 연주 끝에 비로소 들려오는 장필순의 목소리 ‘엄마야 누나야’는 모두가 아는 그 노래. 모두가 아는 옛 강의 모습은 현대의 파열음 속에 어쩐지 굴절된다. 프로듀서 조동진은 이 곡을 모든 강의 노래 선두에 배치함으로써 수 세대에 걸쳐 우리 가슴에 흘러 내려온 이 아름답고 완벽한 노래를 뒤이어질 노래들의 공식적인 발원지로 선언한다.
바로 이어지는 조동익의 목소리로 시작되는 ‘오래된 슬픔 건너.’ 그의 목소리는 변함없이 정적이 가득하지만 배경이 되는 소리들은 어쩐지 불안하게 서성인다. “눈부신 금빛 모래 언덕”이나 “귀를 간지르는 갈잎의 노래”는 “다시 돌아오지 못할” 슬픔이 되었고 “신 같은 존재”의 상실은 오래된 슬픔이 되었다. 긴 시간의 기다림, 상실, 회고, 그리고 다시 흐르는 것들 모두에 바치는 준열한 시작이다.
[새의 전부] 너와 나
새로운 이름, 새의 전부는 ‘강의 노래’를 통해 처음 이름을 알리는 신인이다. 어색하지 않게 한 자리를 차지한 이 조용한 듀오는 선배 박용준의 편곡, 연주와 훌륭한 화학작용을 보여준다. 그들에게 강은 ‘너와 나’의 배경이기도 하고 연약하게 흔들리는 둘의 관계를 비추는 대상이기도 하다. ‘강’이라는 단어 한 마디 없이도 새의 전부는 훌륭하게 자신들만의 강을 그려낸다. 흔들림과 흐름이라는 가장 핵심적인 본질을 부드럽고 미묘한 기분에 담아서. 말 줄임표를 가장 적절하게 담아내는 박용준의 건반이 이 그림의 완성도를 더했다.
[조동진] 강의 노래
이 음반 전체의 표제곡이 될만한 조동진의 곡은 장구하고 유려하게 굽이쳐 흐른다. 7분에 가까운 대곡은 조동익의 편곡으로 장황하지 않은 장관이 되었다. 조용한 독백에서 시작하여 합창이 되고 연주로 휘돌아 엔딩 부분에 문득 건반으로 수렴하는 가운데 맹렬함은 평온함을 품고 같은 주제를 반복하며 영겁의 회귀를 그려낸다. 강가에서 바라본 흐름은 그렇게 찰나가 영원을 품고, 시선은 수평에서 수직으로 확장된다. ‘돌아오는 새들의 행렬, 저 먼 종소리’는 그 또한 끈질긴 회귀를 통해 저마다 강이 된다.
[Kyo] 시냇물
자신의 목소리를 쌓아 아카펠라로 시작하는 아름다운 이 곡의 도입부는 단연 귀를 잡아 끈다. 이규호다운 맑고 슬픈 아이러니가 조용히 파문을 일으킨다. 강이 되기 이전의 물, 시냇물은 소박한 처음의 모습이지만 강의 유구함을 모두 품고 있다. “겹겹이 쌓이는 무게”를 무거운 것이 아닌 흐르는 것으로 “끝없이 떠밀리는 기억”은 사라지진 않아도 작아져 가는 것으로, 소리는 종횡으로 쌓이고 움직이고 흔들리며 환상의 빛으로 반짝인다. 소리가 사라져도 여운이 사라지지 않는다.
[조동희] 유리강
유리강은 흐르는 것과 잠기는 것을 나누어 그린다. 유리와 같은 수면 아래 남겨지는 것은 “다정히 안아주던 너.”
다정한 모습을 남기고 흘러가는 것은 외로울 수 밖에 없다. 안개가 먹먹하게 차오르는 새벽 강가, 물결은 꿈처럼 우주를 유영하고 상처는 사라지지 않지만 나는 흘러간다. “유리강 속의 너” 혹은 “나”는 타임캡슐이 되어 심연 속으로 멀어진다. 박용준의 편곡은 여기서도 발군의 공간감을 만들어내고 조동희의 음색은 공기를 머금고 흘러간다.
[박용준] 지수리
금강 근처의 샛강이 흐르는 지수리는 박용준과 하나음악 멤버들에게 특별한 곳이다. 낚시와 여행을 좋아하던 무리들이 어울려 자주 찾곤 했던 곳이다. 신성했던 그 곳은 특별한 추억이 머물렀고 개발이란 이름으로 파괴되기에 이르렀다. 물안개가 올라오듯 무럭무럭 숨을 쉬는 건반 뒤로 째깍째깍 시간이 흐르는 듯 하다. 바람, 나무, 별들은 저마다의 전설을 이야기하고 흐름은 멈추지 않는 가운데 여러 질감의 소리가 입체적으로 쌓이고 이야기도 쌓인다. 조동익, 박용준의 촘촘한 편곡이 첫 번째 CD의 마무리를 한다.
[CD 2]
[이경] 봄날의 따뜻한 강
두 번째 CD를 여는 첫 곡은 제목처럼 따뜻한 이경의 연주곡이다. 얼었던 강물이 풀리고 땅이 부드러워지기 시작할 무렵의 기분 좋은 느낌이 가득한 정갈한 피아노 곡이다. 뉴페이스 시절 이경이 선보였던 모던한 곡과는 또 다른 포근한 색깔의 이 곡은 작지만 예쁘고 편안하다. 작곡과 연주를 겸한 혼자만의 작업이었지만 녹음이 끝나고 그 감상을 옴니버스 멤버들과 나누는 가운데, 프로듀서 조동진이 ‘봄날의 따뜻한 강’같은 곡이라는 감상을 전해 그대로 제목이 되었다.
[고찬용] 그 강을 따라가겠지
고찬용의 강은 죽음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죽은 이들이 떠내려가는 인도의 어느 강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강은 사람 뿐 아니라 많은 생명들의 삶인 동시에 죽음인 곳이니 “영겁의 그늘”을 보는 이유가 수긍이 간다. 고찬용의 감성을 거칠게 나누어, 치밀하고 독창적인 코드와 멜로디가 만들어내는 완벽한 세계가 한 편에 있다면, 또 다른 한편에는 이렇듯 비틀거리는 비애가 있다. 이 곡은 후자의 세계에 속한다. 비틀대는 흐름, 깊은 슬픔은 그렇게 그 강을 따라간다.
[소히] O Coração 그 마음
브라질 음악에서 자신만의 음악으로 스스로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는 소히는 이 곡에서 적절한 지점의 만남을 보여준다. 브라질 음악이 가진 고즈넉한 관능이 이국적인 느낌이 아니라 개성으로 재현된다. 플루트와 첼로의 클래식하고 낭만적인 음색이 강에 비친 둥근 달을 그린다. 차오르고 다시 기우는 달처럼 부풀어 올랐다가 기우는 마음. 소히의 달은 여기에 더해 강물에 비치는 풍경이 된다. 달이 풍경과 하나의 그림이 되고, 같은 흐름이 되고 반짝이는 모습, 그 자체가 어찌보면 ‘노래’이다.
[송용창] 비행
삼바의 리듬 속에 새들의 비행이 보인다. 젊은 신인이지만 가장 뚜렷한 개성을 보이는 아티스트 중 하나인 송용창은 높은 새들의 시선에서 미끄러지듯 멀리서, 전체를 보며 강을 따라간다. 하늘에서 바라본 강은 군데 군데 욕심이 만들어둔 파괴의 흔적이 역력하다. 거칠고 불균형한 파열은 흔들리는 재즈 멜로디와 스캣으로 그려지는데 그것이 진창이 아닌 까닭은 거리감을 유지하는 모던함 때문이다. 이 역설적인 세련됨은 낭만적일 수 있는 플루트 소리도 냉정한 비애로 마무리한다.
[오소영] 흐르는 물
가야금 연주자 정민아의 연주와 함께하는 오소영의 강은 특별한 전통의 색채를 갖고 있다. 외사랑의 모습을 고전적인 기품과 관능을 담아 그린다. 애절한 마음이 담긴 가야금의 음색에는 오랜 기생의 시조 같은 은밀한 취기가 스며있다. 그러나 신파가 될 수도 있는 세계를, 오소영은 자신의 신비로운 음색으로 아우르며 독특한 색깔의 강을 만들어 내었다. 언제나 그녀의 곡은 조금은 다른 세계에서 건너오는 신비감이 충만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한동준] 당신은 그렇게 흘러
오랜만에 만나는 한동준의 신곡은 다정하고 포근하다. 강물 따라 흘러가버린 당신과 나의 청춘을 기억하는 쓸쓸한 순간에도 그는 자기다운 온기를 잃지 않는다. 흘러가버린 기억은 멀고 따뜻한 바람의 위로는 가깝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언제나 어루만지는 그의 따뜻함은 간혹 폭발적인 대중성을 가지고 모두의 배경음악이 되곤 했다. 음악이 주는 위로라는 본령에 충실한 세계이다.
[이무하] 돛
때로는 준엄하고 때로는 신성한 이무하의 곡은 이번에는 강의 끝, 바다로 향한다. 그러나 그곳은 자유의 광활함이 아닌, 깊은 물 속에 남겨진 아이들이 있는 곳이다. 그리하여 그는 “괜찮아 문제없어 니 잘못 아니라고” 떠나간 아이, 남겨진 아이, 살아남은 아이 모두에게 위로를 건네며 함께 떠나자고 손을 내민다. 얼핏 고전적인 포크의 형식으로 들리지만 섬세한 멜로디와 정직한 연주는 시간을 넘어서는 경건한 품위를 갖고 있다.
[정원영] 새는 걸어간다
가장 최근 ‘강의 노래’에 합류한 정원영의 곡은 흘러가고 빛나고 굽이치고 아름답고 슬픈 모두의 강을 조용히 마무리하는 마지막 트랙이 된다. 차분한 건반은“뚜벅뚜벅 걸어”가며 시가 된다. 그의 강은 무심히 흘러가지 않고 조용히 걸어간다. 그 뒷모습은 소나무 숲과 구름을 따라 조용히 멀어지고, 그 안에는 “너의 얼굴”과 “그 봄날 부르던 노래”가 있다. 추억이 어리는 강의 뒤태는 허망한 것이 아닌 그리운 것이다.
- 2015. 03. 기린그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