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이후 서구의 물결이 본격적으로 한국에 들어오면서 대중가요도 서양 유행 음악의 영향을 받게 된다. 트로트라는 엔카풍의 노래들이 서민들에게 전쟁과 가난의 애환을 표현하면서 대표적인 유행가로 지금까지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서구의 대표적인 장르인 락 음악은 60년대와 70년대 미8군이라는 무대를 통해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들과 대중들 사이에 점차 어필해가고 있었다. ‘신중현’과 ‘히식스’등 스타들이 나타나고 히트곡도 점점 늘어 갔지만, 본격적인 락 그룹의 열풍을 일으킨 80년대의 한국 락의 붐을 일으킨 주인공은 ‘사랑과 평화’와 ‘산울림’이 아닌가 싶다. 산울림이 형제들로 구성되어 단순하고 쉬운 멜로디와 오리지넬리티로 음악세계를 펼쳤다면 미8군무대의 최고의 프로 뮤지션들이 모여 결성된 사랑과 평화는 당시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연주와 편곡 그리고 팀웍으로 한국 락에 20년이 넘도록 영향을 끼치는 슈퍼그룹으로서 흔들리지않는 위상과 매니아들을 확보하고 있다.
그럼 지금부터 사랑과 평화의 결성과 지금까지의 활동, 그리고 그들이 한국 락의 역사와 발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살펴보자 이남이(B) 최이철(G) 김명곤(K) 이근수(K) 이철호(V) 김태홍(D) 이들이 사랑과 평화의 창단라인업이다. 미8군 무대에서 뛰어난 연주로 활동하던 이들을 오랫동안 살펴보고 오버로 이끌어낸 사람은 다름아닌 당시의 유명한DJ겸 가수였던 이장희 였다. 특히 이들은 당시 한국에서 연주하기 힘 든 펑키라는 장르의 연주에 능해 미8군 무대에서 흑인들 사이에서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미8군 무대는 연주자의 실력에 따라 등급을 메겨 게런티와 무대도 차별화하여 세웠는데 8군 역사상 최고 등급인 SPECIAL AA(스페셜 더블에이)를 받은 한국 밴드는 사랑과 평화 밖에 없었다는 사실이 이들의 연주가 얼마나 뛰어났던 것이었는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78년 사랑과 평화의 ‘한동안 뜸 했었지’가 라디오 전파를 타고 처음 흘러나왔을 때 일반인들과 연주자들은 큰 충격에 휩싸였다. 마치 지미 핸드릭스가 기타를 불태웠던 센셔이널처럼 최이철의 와우와우 액서사리에 의한 연주와 리듬, 김명곤의 화려한 편곡, 이남이의 스테이지 매너는 정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한가지 안타까운 점은 앨범라인업에는 이남이와 이철호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빠지고, 대신 최이철의 보컬과 이태리인 사르보가 베이스를 쳤지만, 일반 라이브 무대에선 이철호와 이남이가 함께 활동했다.자세히 다루겠지만 사랑과 평화의 1집은 여러 가지면에서 의미가 있다. 락 그룹을 계속해 가기엔 척박한 토양의 한국에서 20년 이상을 살아남은 슈퍼그룹의 탄생을 알린 것이고 이후에 발표된 수많은 락 음반 중에서도 뮤지션들과 팬, 그리고 평론가들에게 극찬을 받은 앨범은 흔치 않은데, 이 앨범과 사랑과 평화 멤버들은 지금까지도 전설이라 표현될 정도의 평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한동안 뜸 했었지'의 생각보다 큰 반향에 고무된 이들은 또 하나의 명반 2집 ‘장미’를 79년에 발표한다. 2집의 라인업은 이남이가 빠지고 불세출의 베이시스트 송홍섭이 빼어난 연주력을 보여주는데 훗날 그는 잡지 인터뷰에서 그의 연주가 본격적인 프로로서 소리를 내게 된 것이 사랑과 평화에서 활동 했을 때라고 술회한 바 있다. 그들은 당시로서는 보기 드물게 연주곡을 정규앨범에 수록하였는데 베토벤의 '운명','여왕벌의 행진', '앨리제를 위하여', '아베마리아'등의 클래식곡과 '축제','솔바람','할미새'등 창작 연주곡을 삽입 훗날 뮤지션들의 필수 마스터링 레파토리가 될 만큼 훌륭한 연주를 보여주었다. 여기까지가 1기 사랑과 평화라 할 수 있는데, 마치 딥 퍼플과 레드 제플린이 그랬던 것 처럼, 훗날 그룹의 멤버 각자가 아티스트로서 펼친 활동을 살펴보면 사랑과 평화가 락 음악에서 얼마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영향을 끼쳤는지 알 수 있다.
1기의 멤버들이 음악적 견해차와 드러머 김태홍의 갑작스런 교통 사고로 인한 사망으로 팀 전체가 커다란 충격에 빠지고, 그 슬픈 마음을 ‘울고싶어라’라는 곡에 담고 몇 년 동안의 공백기를 갖게 된다. 그 외에도 몇몇의 멤버들이 사랑과 평화를 거쳤는데 그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최고의 재즈피아니스트 김광민과 정원영, 드러머 문영배등이 있는데, 이들 사랑과 평화의 멤버들은 각자 작곡과 세션, 편곡 등으로 80.90년대 한국 대중음악을 이끌어간다.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몇몇 재즈 팀에서 활동하던 기타리스트 최이철은 사랑과 평화에서 했던 음악과, 지금은 퓨전 재즈라 하지만 당시엔 재즈락이라 불렀던 실험적이고 색다른 음악을 하고픈 열망에 이남이를 찾게 되고 또다시 새로운 신화창조를 위해 의기 투합한 이들은 당시 세션계의 촉망 받던 젊은 연주인들을 가세 시켜 2기 사랑과 평화의 라인업을 구축한다. 이후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는 드러머 이병일과 최태일 한정호등이 가세한2기들은 '울고싶어라','겨울바다','노래는 숲에 흐르고' 등이 수록된 또 하나의 역작 3집 '노래는 숲에 흐르고'를 88년에 발표하는데 당시의 청문회 정국과 이남이의 열창에 힘입어 한때 전국의 길거리는 온통 울고 싶어라로 뒤덮이는 진풍경을 연출하였다. 원래 이 앨범의 타이틀곡은 최이철의 작품인 노래는 숲에 흐르고 였는데 우연히 업소에서 이남이가 부르는 '울고 싶어라'를 듣게 된 mbc pd가 당시의 최고 인기 프로였던 일요일 밤의 대행진에 출연, 방송을 타자 기인인 이남이의 스테이지 매너와 오랫동안 기다려온 슈퍼그룹의 부활을 보면서 팬들은 열광하였던 것이다.
그룹이라는 것이 멤버 중 한명 인기를 끌다 보면 꼭 휴유증이 남는다. 이남이의 생각지도 않은 인기에 솔로 독립으로 이어지고 리더 최이철은 새로운 라인업을 구상하는데 김현식과 봄여름가을겨울을 이끌어가던 재능 있는 뮤지션 박성식과 장기호를 영입 퓨전 재즈로의 팀컬러를 확실히 구축, '샴퓨의 요정', '조바심','그대 떠난뒤'가 수록된 4집 앨범을 발표 하는데 이앨범은 레코드 회사의 사정으로 시중에 얼마 풀리지 않아 대중들은 잘 구할 수 없는 희귀음반이 되었지만 박성식 장기호의 물오른 작곡과 연주가 팀을 한층 더 세련되고 퓨전적인 음악을 하는데 견인차가 되었다. 이 즈음 사랑과 평화는 한국을 대표하여 환태평양 락 오사카 음악제에 출전 사물 놀이와 퓨전을 접목시킨 덩더쿵이라는 곡으로 일본 관계자들로부터 격찬을 받았고 경주 엑스포 특별 무대를 통해 최고의 그룹으로서 변함없는 연주를 보여주었다.
박성식과 장기호가 종교적인 이유로 빛과 소금을 결하여 팀을 떠나고 사랑과 평화는 3기 라인업이 짜여지는데, 3기 라인업은 8년 동안 멤버 교체 없이 팀웍을 과시 하게 된다. 박성식의 빈자리에 화려한 연주를 하는 안정현이 들어오고 이병일과 함께 한국 최고의 리듬라인을 만드는 베이시스트 이승수가 가세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는게 된다. 댄스 가요가 메인이 돼 버린 가요계에서 5집 못생겨도 좋아, 6집 얼굴 보기 힘든 여자를 발표하는데, 이때 이들은 클럽 연주와 후배 가수 김종서의 라이브 쎄션, 정동극장의 장기 콘서트, 라이브 소극장의 콘서트등 매니아를 위한 직접적인 만남을 시도 하던 시기이다.
여기서 한가지 언급 해야 할 것은 3기 라인업부터 가세한 한국 최고의 소울 보컬리스트 이철호를 주목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는 결성 당시의 원년 멤버였지만 잇따른 불운으로 앨범에 참여하지 못하고 아웃사이더로 남아있었지만 그가 최고의 솔가수라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음악계에서는 없을 것이다. 특히 그는 흑인 필의 노래를 잘 소화 하였는데 제임스 브라운 오티스 레딩 등 한국가수는 잘 부르지 못하는 흑인 필의 펑키한 곡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국보급 보컬리스트이다. 그가 부르는 아빈 러빙 유나 키스 엔 세이 굿바이,쓰리 타임즈 레이디 같은 곡들은 원곡을 능가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독특한 창법과 음색에 맞는 곡들을 만나기 힘들어 큰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지만 사랑과 평화의 리더로써 그의 활약을 기대해도 좋으리라 본다.
99년 사랑과 평화의 주축이었던 최이철과 안정현이 팀을 떠나는 대형사고가 터진다. 그이유는 미국으로 음악공부를 하기위해서 였는데 남은 멤버들은 커다란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팀을 계속 할 것인지 아니면 해체 할 것인지 오랜 고민을 하게 되는데 이들이 낸 결론은 팀을 계속 끌고 나간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비록 대중들에게 큰사랑을 받고 있지않지만 록 음악을 하는 많은 후배들에게 최고참 그룹으로서 본보기와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이고 사랑과 평화 그 이름만으로 가지는 락씬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였다. 사실 그룹음악을 한다는 것은 돈을 포기하고 순수하게 음악만을 한다는 것과 다름없고 팀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 없이 20년이 넘게 팀이 유지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관점에서 88년도부터 자리를 지킨 드러머 이병일과 이승수, 이철호의 음악적 열정은 높이 평가 받아야 한다고 본다. 최이철과 안정현이 나간 빈 공백을 기타리스트 송기영과 피아노와 키보드에 이권희가 가세 새로운 사랑과 평화가 탄생되는데 이들은 일산에 자기들만의 연습실 공간을 마련, 보다 탄탄해진 팀웍과 연주로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새로운 멤버 키보디스트 이권희는 국내에서 세션활동을 하던중 일본으로 건너가 선진 연주기법과 편곡을 공부한 학구파 뮤지션으로서 현재 김포대학에 출강하고 있는 교수 뮤지션이기도 하다. 이권희의 가세로 사랑과평화는 보다 세련되고 꽉찬 사운드를 들려주리라 기대된다. 세로운 기타리스트 송기영은 최이철의 뒤를 잇는다는 면에서 음악계의 주목을 받았는데 현제 활동하는 젊은 기타리스트중 가장 안정되고 탁월한 연주기량으로 인정받고 있다.
지금까지 사랑과 평화의 23년의 긴 역사의 변천을 살펴보았다. 3년 활동하고 은퇴 발표하는 요즘의 가요계 풍토에 이십년이 넘게 그룹음악을 한다는 자체만으로도 이들의 가치는 영롱한 것이 아닐까.
- 사랑과 평화 공식 홈페이지의 소개 글에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