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황은 1971년 11월 16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기타를 전공한 덕분에 음악적인 환경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우며 음감을 익혔다. 그는 국민학교 4학년 때 어머니가 치던 클래식 기타를 넘겨받으며 기타를 배웠다. (일렉트릭 기타를 치게 된 계기는 국민학교 4학년 때 TV에서 우연히 보게 된 1969년 우드스탁 페스티벌의 재방송 프로그램이었다.) 그에게 영향을 준 기타리스트들은 많은데 그 중에서도 지미 헨드릭스, 제프 벡, 조 새트리아니, 밴 헤일런 등이 대표적이다.
아버지가 국제외교 관계 일을 하기 때문에 김세황은 미국에서 오랜 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국내 록 기타리스트들 가운데에서는 영어실력이 상당하다. 조 새트리아니나 그외 유명 기타리스트들과 직접 전화통화를 하며 궁금증을 물어보는 것이 그의 취미이기도 하다. 지난 97년 2월 스티브 바이의 한국 공연 때도 그는 통역을 맡았으며 스티브 바이와 무대에서 협연을 벌이기도 했다.
김세황은 다운타운을 결성해 록계에 알려졌고 이후 신해철이 이끄는 넥스트의 기타리스트로 활동하며 크나큰 명성을 얻게 되었다. 김세황은 깔끔한 자신의 용모만큼이나 잘 정리된 연주를 펼친다. 국내의 다른 기타리스트들이 테크니컬한 연주에 몰입하고 있을 당시에 그는 오히려 리듬 쪽에 관심을 가져 건실한 코드웍과 리듬기타에 몰두했다.
또한 그는 뉴웨이브와 재즈적인 어프로치를 적절하게 융합한 연주를 펼쳐 남들보다 앞서가는 기타 세계를 걸었다.한마디로 그의 기타는 리듬이 있고 그 다음에 솔로가 있다는 개념 하에 연주되는 것이다.
김세황의 솔로는 철저히 멜로디지향적이다. 스케일에 기반을 둔 일반적인 록 애드립 패턴이 아니라 테마지향의 멜로디컬 프레이즈 진행이 그의 애드립 패턴이다. 재즈, 퓨전, 펑크, 발라드, 뉴웨이브, 록 등등 특정장르에 자신을 묶어두지 않는 것도 그의 강점이다.
현재는 노바소닉의 기타리스트로, 많은 앨범의 세션으로 바쁘게 활동 중인 우리나라에서 손꼽을 만한 기타리스트 중에 한명이다.
학창시절에 대한 이야기. . . . . .
미국 워싱턴에는 처칠 국민학교가 있다. 이곳은 세계적으로 이름난 국민학교로 워싱턴에 주재하는 각국의 외교관들과 고위관료의 자녀들이 다니는 곳이다. 그리고 이곳은 바로 나의 모교이기도 하다. 네 살때 미국으로 건너간 나는 여기를 거쳐 쿠퍼 중학교를 다녔다. 쿠퍼 중학교 역시 선진적이고도 자유로운 방식의 교육으로 유명한 학교였다.
그래서인지 중3 때 귀국해 한국의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나는 적잖은 혼란에 빠져야 했다. 나름대로는 재미 있기도 했지만 '학생부'라는 조직까지 따로두고 학생과 선생님이 서로 대치하는 상황이 이해하기 힘든 탓이었다. 적응이 잘 안되었기 때문이라고 하면 변명이겠지만, 난 좀 거친 성격으로 변해 갔다.
결국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대구에서 중학교를 다닐때 싸움질을 하다가 그만 제적을 당하고 말았다.그래서 다른 학교로 옮겼는데 몇 달 안있어서 그곳에서도 또 싸움을 해서 제적을 당했다. 이 얘길 들으면 지금 나를 아는 사람들은 모두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놀란다. 지금은 워낙 순하고 명랑해 보이기 때문이라나.
그렇게 되자 다른 학교에서도 날 받아 주려고 하지 않았다. 딱 한 학교가 받아 주었는데 거긴 정말로 선생님들이 무서웠다. 조금이라도 말썽을 피우면 체벌이 엄청나기 때문에 아예 입을 떼지 않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부터 나는 기타를 본격적으로 만지기 시작했다. 어머니(김정희씨)가 클래식 기타를 치셨기 때문에 기억할 수도 없는 어린 시절부터 기타를 배웠지만 정말 재미가 나서 치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시절이다.
그때 국산 기타줄 하나에 1천원 했는데 내 용돈도 하루에 1천원이었다. 난 거의 매일 내 용돈을 기타줄 사는데 다 써야만 했다. (후배 기타리스트 여러분 이런 건 좀 배워 주세요~). 그런데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는 학생의 절반이 집에서 농사를 짓는 '옥이이모'의 무대였다. 서울에서 기타를 그렇게 쳤다면 괜히 `'음악을 합네' 하고 목에 힘을 주고 다녔겠지만 그 동네 친구들에게 혹 기타연주를 들려주면 "야! 너 그럼 `호랑나비' 한번 쳐 봐라"는 얘기를 듣기 일쑤였다.
others talk about him. . . . >>넥스트시절의 신해철(강현과의 인터뷰에서 맴버들 소개중) : 기타의 김세황은 외교관을 아버지로, 클래식 기타리스트를 어머니로 둔 유복한 가정의 아들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는 어린 시절 미국에서 월반을 거듭하는 똑똑한 아이였고 미식 축구 같은 스포츠와 기타 연주의 재능을 자랑할 만할 만능 교육을 받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일이 여의치 않게 되면서 급작스럽게 귀국했고, 그때부터 너무도 다른 교육환경과 언어의 장애로 인해, 급전직하, 하루 아침의 한국의 중학교의 문제아가 되었다. 지금의 그를 보면 아무도 믿지 않겠지만 그는 폭력으로 한달에 두 번 퇴학 당한적도 있다. 그런 그를 받아주는 곳은 대구밖에 없었고 혼자뿐인 그 가혹한 시간 속에서 그는 그에게 유일하게 남은 재능이자 유일하게 혼자 할 수 있는 것인 기타에 몰두했다. 그런 그의 단 한명의 후견자는 제프 백을 듣는 그의 어머니였다.
>>넥스트 맴버 중 신해철 : 감수성이 지극히 예민한 상처 받기 쉬운 청년이다. (누구한테 상처를 받느냐고? 주로 나한테 상처를 받는다. 히히~~). 애교와 잔정이 많지만 동시에 가끔 히스테리컬 해지기도 한다. 즉 무지하게 이중적이라는 뜻인데 그 정도 이중적인 성격이 아니라면 그런 연주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그다지 융합하기 쉬운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있다는 얘기는 아니다. 팀이란 마치 부부와 같다. 허구한 날 싸우는 부부가 오래가고 천상 배필인 듯싶은 부부가 하룻밤 사이에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는 것처럼 만날 싸우는 사이가 더 끈끈한 사이일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넥스트 맴버 중 이수용 : 세황이는 여러 말 할 것 없이 기타를 너무나 잘 치는 친구이다. 아마 그가 이 페이스대로 꾸준히 나간다면 서른 살쯤 되었을 때는 세계적인 뮤지션이 돼 있을 것이다. 겸손하고 자기 일에 열성적이고 어떤 일이든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다.
>>넥스트 맴버 중 김영석 처음 내가 그룹에 들어와서 세황이를 봤을 때의 인상은 나이가 어리고 순하다는 것이었는데 그건 단지 겉모습일 뿐이었다. 음악을 할 때 그의 고집은 그야말로 경지에 다다라 있다. 난 해철이의 고집이 그룹 내에서 가장 세리라 기대하고 들어왔는데 복병을 만난 것이다. 하지만 자기가 하고싶은 음악 스타일에서가 아니면 정말 순둥이다. 미국에서 살았던 그의 기타 연주는 서구적인 냄새가 무척 짙게 난다. 그건 한국적인 기타 연주의 한계를 벗어났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 덕분에 우리 음악도 상당히 세련되어 졌다.
>>노바소닉의 김진표 (jphole) : 패닉3집 공연 때문에 한동안 연습만 할뿐 녹음작업을 일단 중단시켜놨었다. 연습하던 어느날 연습이 끝나고 세황이형이 날꼬신다. 여자친구소개시켜줄께... 여자친구가 있긴했지만...형의 여자친구소개시켜줄께란 말에는 거절해도 넌 가야만 한다라는 아주아주아주 강한 의지가 섞여있었다.. -진표합리화.^^- 따라나간장소는 신사동 큰손횟집이라는 말그대로 횟집. 얼마후 킹카라는 여자들은 온데간데없고 수용형과 영석형이 나온다. -그당시 진짜 황당했다. 세황이형이 게이라고까지 생각했으니까..- 그 다음부터는 다 상상할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렇게 노바소닉은 탄생하게 된다.
세황이 형은 너무 여성스러운 나머지 가끔가다가 성별이 의심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기타 치는 폼부터 시작해서 솔로 연주에 들어가면 정말 그 경지가 놀랍습니다.
>>재즈트럼펫터 이주한 (10+1) : 록음악계에 몸담고 있는 그와 재즈 세계속에 있던 나는 김동률 콘서트에서가 아니었으면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1997년 나의 서툴은 한국말과 그의 완벽한 영어는 우리를 아주 자연스럽게 친구로 만들어 주었다. 4년이 지나고 보니, 그는 아주 따뜻하고 편안한 사람이었지만 그는 자기 일에 있어서는 확실한 사람이었다. 이 메톡사이드라는 곡은 나에게 있어 이번 10+1 앨범중에서 가장 트럼펫을 불기 힘든 곳이었으며 흥미로운 곡이었다. 녹음시에 많은 트랙을 썼지만(세황은 이것으로 유명하지요^^) 이곡의 완성도를 보면 하나두 낭비가 아니었구 헛된 요구가 아니었다. 요사이 녹음때 보다 더 그를 많이 만난다.. 왜냐면 우리가 압구정동의 같은 게임방을 다니기 때문에... 세황아 너 진짜 스타 죽이게 잘한다.. 물론 기타는 말할 것두 없구.. .... ....
아주 오래전,내가 올려다본 그의 어깨는 까마득한 산처럼 높았다 그는 젊고 정열이 있었고 야심에 불타고 있었다 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었다 내 키가 그보다 커진 것을 발견한 어느 날,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서히 그가 나처럼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다 이 험한 세상에서 내가 살아 나갈 길은 강자가 되는 것뿐이라고 그는 얘기했다 난, 창공을 나는 새처럼 살 거라고 생각했다 내 두발로 대지를 박차고 날아올라 내 날개 밑으로 스치는 바람 사이로 세상을 보리라 맹세했다 내 남자로서의 생의 시작은 내 턱 밑의 수염이 나면서가 아니라 내 야망이, 내 자유가 꿈틀거림을 느끼면서 이미 시작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저기 걸어가는 사람을 보라 나의 아버지, 혹은 당신의 아버지인가? 가족에게 소외받고, 돈벌어 오는 자의 비애와 거대한 짐승의 시체처럼 껍질만 남은 권위의 이름을 짊어지고 비틀거린다 집안 어느 곳에서도 지금 그가 앉아 쉴 자리는 없다 이제 더 이상 그를 두려워하지 않는 아내와 다 커버린 자식을 앞에서 무너져가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한 남은 방법이란 침묵뿐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아직 수줍다 그들은 다정하게 뺨을 비비며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를 흉보던 그 모든 일들을 이제 내가 하고 있다 스폰지에 잉크가 스며들 듯 그의 모습을 닮아 가는 나를 보며, 이미 내가 어른들의 나이가 되었음을 느낀다 그러나 처음 둥지를 떠나는 어린 새처럼 나는 아직도 모든 것이 두렵다 언젠가 내가 가장이 된다는 것. 내 아이들의 아버지가 된다는 것이 무섭다 이제야 그 의미를 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그 두려움을 말해선 안된다는 것이 가장 무섭다 이제 당신이 자유롭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나였음을 알 것 같다 이제,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다고 더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오랜 후에, 당신이 간 뒤에, 내 아들을 바라보게 될 쯤에야 이루어질까 오늘밤 나는 몇 년 만에 골목길을 따라 당신을 마중 나갈 것이다 할 말은 길어진 그림자 뒤로 묻어둔 채 우리 두 사람은 세월 속으로 같이 걸어갈 것이다
in the darkest night when it don't feel right one place to go just take me home 누구든지 나를 좀 데려다줘 (take me home) 상관없어 정말 너무나 피곤한걸 (take me home) 가고싶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take me home) 옛추억을 떠올리고 싶어 (내 집에 가고 싶어) 누구든지 나를 좀 데려다줘 (take me home) 상관없어 정말 너무나 피곤한걸 (take me home) 가고싶어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take me home) 옛추억을 떠올리고 싶어 (take me home) 이젠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아. 왜 더러운 냄새만 맡아. 나를 쳐다보지마 오늘난 네게서 앞에서 날 위해서 떠날래 집에 가고 싶어 반갑게 맞이해줄 집으로 그 곳으로 그리움이 기다리는 집으로 그 곳으로 그리움이 기다리는 집으로 어!(집으로 어!) 아득히 멀리 멀어져가리 내 모든 것으로 함께 했던 추억도 아쉽게 지친 어깨 위를 짓누르는데 이제는 아득히 멀리 멀어져가리 내 기억 속으로 오래전에 자리로 내 모습 받아줄 수 있는 그 곳으로 사람들 뭐그리 할말들이 그리도 많나 그렇게 서로들 잘 났다고 크게 떠들어대나 지쳐 쓰러져 버릴 것만 같아 난 너무나 내게 이젠 강요하지마라 그냥 내버려둬봐 시간이 지나면 아무런 소용없는 것이잖아 머잖아 어차피 우린 똑같은 신세잖아 내버려둬봐 날 좀 가만히 그냥 내버려둬봐 내게 집에 갈 수 있는 또다른 기회를 줘봐! 모두들 내가 비겁 비겁자라며 놀리겠지 난그래도 누가 뭐래도 정말 아무 상관 없지 모두들 내가 비겁 비겁자라며 놀리겠지 난 그래도 누가 뭐래도 정말 아무 상관 없지 모두들 내가 비겁 비겁 놀리겠지 난 그래도 누가 뭐래도 아무 상관없지 모두들 내가 비겁 비겁 놀리겠지 난 그래도 누가 뭐래도 아무 상관없지 take me home 오래전 추억이 가득 담긴 아픔은 모조리 삼킨 내 모습을 치료해줄 수 있는 환하게 불을 밝힌 언제나 내 모습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게 그 곳 반갑게 맞아주는그 곳으로 take me home
요즘 지내기는 어때? 기분은 좀 Up돼? 잘 살고 있니? Oh~ 그렇게 지겹다고 말하던 내가 그리워 지진 않니?
때론 한잔 술의 힘으로 잘 지낸다는게 안돼 잊어보려... 그게 난 잘 안돼 때론 다른 여자를 만나 너무 힘들어 지워보려....했었지만 Oh~그렇게 싫증난다 떠나면 너는 편하게 살수 있니?
Come on 너 하나야 때론 한번 기횔 달라고 Come on 따져보려... 믿기지 않니? 때론 이게 남자답다고 Come on 말하려고... 내말들어봐
Well 날봐 I gotta make it love 알고있어 Come on 그만! 대답해봐 솔직해져봐 Come on 거봐! 뜸들이지마 날 원하잖아 Come on come on 내게 말해봐 똑바로봐 I wants you, come on wants you 망설이지마 wants you come on wants you 내게 돌아와 I wants you, wants you, wants you, wants you, wants
나는 남들과 다르다 - N.EX.T (2집) (Rap1)남들이 아무리 얼굴까지 붉히면서 천번 만번을 말해도 난 "노"라고 그냥 한마디 할뿐이지 이젠 그만 왜 그리 남의 일들 에 쓸데없이 관심이 그렇게 이러쿵 저러쿵 많은지 아마도 바쁜 세상에 남아도는 시간들이 많을걸까 1. 미래를 위해선 언제나 오늘은 참으라고 간단히 말하지마 현재도 그만큼 중요해 순간과 순간이 모이는 것이 삶인걸 **평범하게 태어났지만 남들과 똑같이 살수는 없잖아 가슴속에 숨겨둔 말을 해봐 그래 나는 남들과 달라 누가 뭐라고 말해도 그래 나는 남들과 달라 이제 너의 말을 해 봐 (Rap2) 남들이 아무리 자기일도 아니데 이래라 저래라 말해도 넌 "예스~"그냥 한마디할 뿐이지 이젠 그만 언제까지나 그렇게 줏대없이 끌려다니며 세월아 네월아 살려니 흐 아닌건 아니라고 큰 소리로 말을 해봐 2. 세상은 이렇게 넓은데 볼 것도 느낄 것도 남길 것도 많잖아 살아갈 시간은 짧지만 오늘도 내일도 똑같은건 정말 싫어 ** (Rap3) 이세상 모든 게 변하는게 두려워 벌벌 떠는 사람들 물론 그렇게 사는건 자유지만 우린 아냐 어떻게 남들이 나와 똑같이 행동을 하고 생각하고 말하나 어찌 됐거나 당신들의 세상은 지나 갔다<하하....>
너에게 전화를 하려다 수화기를 놓았네 잠시 잊고 있었나봐 이미 그곳에는 넌 있지 않은 걸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마지막 작별의 순간에 너의 눈 속에 담긴 내게 듣고 싶어 한 그 말을 난 알고 있었어 말하진 못했지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너에게 내 불안한 미래를 함께 하자고 말하긴 미안했기에 내게로 돌아올 너를 또다시 혼자이게 하지는 않을 거야 내 품에 안기어 눈을 감을 때 널 지켜줄꺼야 언제까지나 너를 기다려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만남의 기쁨도 헤어짐의 슬픔도 긴 시간을 스쳐 가는 순간인 것을 영원히 함께할 내일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기다림도 기쁨이 되어』『』반복
햇살속에서 눈부시게 웃던 그녀의 모습을 전 아직 기억합니다. 그녀는 나의 작은 공주님이었지요, 지금도 전 그녀가 무척 보고싶어요. 우리 어릴적에 너는 내게 말했지 큰 두 눈에 눈물 고여 난 어두운 밤이 무서워 나의 인형도 울고 있어 난 누군가 필요해 나는 잠에서 깨어나 졸린 눈을 비비며 너의 손을 꼭 잡고서 내가 너의 기사가 되어 너를 항상 지켜줄 거야 큰 소리로 말했지 *(이제는) 너는 아름다운 여인 (이렇게) 내 마음을 아프게 해 (언제나) 그 말은 하지 못했지 오래전부터 사랑해 왔다고 하얀 웨딩드레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오월의 신부여 어린 날의 기억속에서 영원히 내게서 떠나네 행복하게 웃으며 * 너 떠나가는 자동차 뒤에는 어릴 적 그 인형이 놓여있었지 난 하지만 이제는 너의 기사가 될 수 없어 작별 인사를 할땐 친구의 악수를 나눴지 오랜 시간이 지나갔어도 널 잊을 순 없을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