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9월 4일 서울에서 3남 중 막내로 태어난 1979년 프로젝트 포크 보컬 그룹 "따로 또 같이"의 일원으로 데뷔한 전인권은 같은 해 1979년 솔로 가수로도 데뷔하였고 1985년 포크 락 밴드 "들국화"의 가수가 되면서 유명해졌다.
이후 1988년에는 영국 남성 가수 Al Stewart의 <The palace of Versailles>라는 곡을 번안한 <사랑한 후에>라는 곡으로 솔로 가수 컴백을 하였다. 이어 1989년에는 자신의 밴드 "전인권과 가야"를 결성, 2004년 이 밴드를 "전인권과 안 싸우는 사람들"로 밴드 이름을 바꾸어 여전히 건재시켰다.
최근에는 2001년 영화 <몽중인>에, 2004년 영화 <안녕! UFO>에 출연한 바 있다. 2005년에는 수필 작품으로 <걱정 말아요, 그대...(출판: 청년사)>라는 책을 썼다. .... ....
아름다웠던 날이 지나고 차가운 바람에 갈길 잊었나 돌아올 수도 없이 찾아갈 수도 없이 내 눈은 발끝만 보고있네 나는 이제 어디쯤 온 건가 아직도 대답은 들리지 않네 어디로 가야하나 어디쯤 온 건가 내 눈은 햇빛에 어지러운데 머리카락이 내 눈 가리고 내 손은 만질 곳이 없으니 다시 가야겠지 다시 가고 싶어 다시 시작될 내일이 있으니 다시 가고 싶어 다시 가고 싶어 다시 시작될 내일이 있겠지
사람들은 손을 들어 가르키지 높고 뾰죽한 봉우리만을 골라서 내가 전에 올라가 보았던 작은 봉우리 얘기 해줄까? 봉우리... 지금은 그냥 아주 작은 동산일 뿐이지만 그래도 그때 난 그보다 더 큰 다른 산이 있다고는 생각지를 않았어 나한테는 그게 전부 였거든... 혼자였지 난 내가 아는 제일 높은 봉우리를 향애 오르고 있었던 거야 너무 높이 올라온 것일까?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일까? 얼마 남지는 않았는데... 잊어버려! 일단 무조건 올라보는 거야 봉우리에 올라서서 손을 흔드는 거야 고함도 치면서 지금 힘든것은 아무 것도 아냐 저 위 제일 높은 봉우리에서 한숨 잘텐데 뭐... 허나 내가 오른곳은 그저 고갯마루였을 뿐 길은 다시 다른 봉우리로 저기 부러진 나무등걸에 걸터앉아서 나는 봤지 낮은 데로만 흘러 고인 바다 작은 배들이 연기 뿜으며 가고 이봐 고갯마루에 먼저 오르더라도 뒤돌아 서서 고함치거나 손을 흔들어 댈 필요는 없어 난 바람에 나부끼는 자네 놋자락을 이 아래에서도 똑똑히 알아 볼 수 있을 테니까 말야 또 그렇다고 괜히 허전해 하면서 주저앉아 땀이나 닦고 그러지는마 땀이야 지나가는 바람이 식혀주겠지 뭐 혹시라도 어쩌다가 아픔 같은 것이 저며 올때는 그럴 땐 바다를 생각해 바다... 봉우리란 그저 넘어가는 고갯마루일 뿐이라 구... 하여 친구여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바로 지금 여긴지도 몰라 우리 땀 흘리며 가는 여기 숲 속의 좁게 난 길 높은 곳엔 봉우리는 없는지도 몰라 그래 친구여 바로 여긴지도 몰라 우리가 오를 봉우리는
어제는 비가 내리고 오늘은 다시 멈췄다 다시또 태양이 빛나고 들꽃한송이 세월이 그렇게 했다 나도 모르는새 아무도 몰래 흘린 나의 눈물위로 비 내리고 바람불고 다시 햇살 비추고 목말랐던 대지위로 다시 꽃피고 다시 사랑 할 수 있을까 다시 사랑할수 있겠지 다시또 태양이 빛나고 들꽃한송이 세월이 그렇게 했다 나도 모르는새 아무도 몰래 흘린 나의 눈물위로 비 내리고 바람불고 다시 햇살 비추고 목말랐던 대지위로 다시 꽃피고 다시 사랑 할 수 있을까 다시 사랑할수 있겠지 다시또 태양이 빛나고 들꽃한송이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포기할 순 없었다 늦었을 때가 시작이란 생각으로 내 발아래 줄을그었다 이제부터 시작하는 거다 하늘한번 쳐다보고 한 걸음씩 앞만보며 걸어 걸어 걸어갔을 때 붉은 태양이 눈부시게 저 산들이 나를 오라 얘기했다 그 누구도 그대도 내 나이도 문제될수 없었다 (강해야지) 나 자신을 위해 (강해야지) 오직 나를 강하게 (강해야지) 나 자신을 위해 (강해야지) 그 누구도 그대도 내 나이도 그 누구도 문제될 순 없었다 오직 나를 강하게 만들고 싶었을 뿐 이제 모든것이 달라졌다 안주할 순 없었다 노래할 때가 가장좋은 마음이란 즐거움에 노래한다 그 누구도 그대도 내 나이도 문제될 순 없었다 (강해야지) 나 자신을 위해 (강해야지) 오직 나를 강하게 (강해야지) 나 자신을 위해 (강해야지) 그 누구도 그대도 내 나이도 그 누구도 문제될 순 없었다 오직 나를 강하게 만들고 싶었을 뿐
전인권이 리드보컬로 참여했던 밴드 ‘들국화’의 1집은 한국 대중음악 최고의 명반이다. 누구도 범접하기 힘든 불멸의 금자탑을 쌓은 들국화는 그러나 채 5년을 넘기지 못하고 시들어 버렸다. 수많은 이들의 안타까움 속에서 멤버들은 각자의 음악을 향해 흩어졌고 전인권은 들국화 시절보다 훨씬 로킹한 음악들을 선보이며 들국화에 미련이 남은 이들의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었다.
허성욱과 함께한 전작 ‘머리에 꽃을’ 앨범에서 그는 자신이 뛰어난 보컬리스트이며 동시에 뛰어난 창작자임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흡사 상처 입은 야수가 절규하듯 울부짖는 그의 보컬은 김현식과 함께 1980년대의 치열함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민주화의 열기가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던 시대의 격랑만큼 에너지 들끓는 보컬리스트였던 그는 밴드 파...
전인권 5집 수록곡. 들국화의 '제발'과 함께 정말 좋아하는 트랙.
인권이형 사랑해요 공연 다녀온 다음부터 이 곡 포스팅해야지 그랬는데
이제사 하네. 그런데 2월 말, 3월 초 분위기에 딱 잘 어울리는 곡이라는 생각이 든다.
정말 3월이 오는 게 너무너무 싫네. 그치만 또 닥치면 다 하겠지ㅎㅎ
그리고 3월되면 해야겠다 마음 먹은 것도 많고....
들국화의 ‘영광의 시대’는 너무나 짧게 끝나버렸다. 당시 젊은이들의 송가였던 ‘행진’과 ‘그것만이 내 세상’의 시대는 단 한 장의 앨범을 정점으로 해서 빠르게 저물어갔다. 물론 이듬해 들국화의 두번째 앨범이 나오기는 했지만, 사실상 데뷔 앨범을 마지막으로 들국화의 역사는 끝나버린 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들국화의 2집 앨범은 네명에서 여섯명으로 멤버가 더 늘어난 채 발표됐지만, 이주원(따로또같이)의 이야기대로 들국화의 창단 멤버였던 조덕환이 음악 외적인 이유로 빠지게 되면서부터 본래의 빛남은 깨진 거나 마찬가지였다.
들국화의 2집 앨범은 1집 앨범처럼 각 멤버들의 역량이 모두 집결된 게 아닌, 그저 단순히 각 멤버들의 소품들을 모아놓은 성격이 강했다. 그래서 1집 앨범에서 ‘그것만이 내 세상’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