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원·이지웅·이태윤·김종서가 이루던 디 엔드(The End)는 언더그라운드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두 기타 연주자, 김태원과 이지웅의 다툼 및 김종서의 탈퇴로 해체되었다. 김태원은 친분이 있던 이승철에게 새로운 가수를 알아보라고 시켰으나 괜찮은 사람이 없었다. 결국 이승철이 노래를 맡게 되어 1985년 7월 3일 부활이 결성되었다. 이승철이 합류하기 전 이미 이름이 디 엔드에서 부활로 바뀌었으나 부활이라는 이름으로 음반을 낸 것은 이승철이 합류한 후이다 이후 2집까지 내고 부활은 해체를 하게 되는데 이후, 이승철은 독립하였고 김태원은 홍성석과 게임(Game)이라는 그룹을 만들었다.
6년 후 김태원은 김재기와 음반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막바지 작업을 남겨두고 김재기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정준교·김성태 그리고 김재기의 동생 김재희와 함께 음반을 완성하고 부활 3집이 발표되었다.
그 후로 박완규·김기연·이성욱 그리고 다시 이승철이 잠시 노래를 맡는 등 부활은 구성원 교체가 잦았다. 7집에서는 김태원을 제외한 모든 구성원이 교체되기도 하였다. .... ....
한참동안을 찾아가지 않은 저언덕 넘어거리엔 오래전 그모습 그대로 넌 서 있을 것 같아 내 기억보다는 오래 되버린 얘기지 널 보던 나의 그모습 이제는 내가 널 피하려고 하나 언젠가의 너처럼... 이제 너에겐 난 아픔이란걸 너를 사랑하면 할수록 멀리 떠나가도록 스치듯 시간의 흐름속에 이제 지나간 기억이라고 떠나며 말하던 너에게 시간이 흘러 지날수록 너를 사랑하면 할수록
내 기억보다는 오래 되버린 얘기지 널 보던 나의 그모습 이제는 내가 널 피하려고 하나 언젠가의 너처럼... 이제 너에겐 난 아픔이란걸 너를 사랑하면 할수록 멀리 떠나가도록 스치듯 시간의 흐름속에 이제 지나간 기억이라고 떠나며 말하던 너에게 시간이 흘러 지날수록 너를 사랑하면 할수록
지금 슬픈 내모습을 무대뒤 한소녀 애써 눈물 참으며 바라보고 있네 무대뒤에 그 소녀는 작은 의자에 않아 두손 곱게 모으고 바라보며 듣네 나의 이야기로 소녀는 나를 알기에 더더욱 슬퍼지네 노래는 점점 흐르고 소녀는 울음 참지못해 밖으로 나가버리고 노랜끝이났지만 이젠 부르지 않으리에 이슬픈노래 이노래가 끝이나면 많은사람 환호 뒤로한채 소녀에게 다가가 말없이 안아주리 소녀는 나를 알기에 더더욱 슬퍼지네 노래는 점점 흐르고 소녀는 울음 참지못해 밖으로 나가버리고 노랜 끝이낮지만 이젠 부르지 않으리 이슬픈노래 나나 나나 나나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 나나 나나
손 닿을 수 없는 저기 어딘가 오늘도 넌 숨쉬고 있지만 너와 머물던 작은 의자위엔 같은 모습의 바람이 지나네 너는 떠나며 마치 날 떠나가듯이 멀리 손을 흔들며
언젠간 추억에 남겨져 갈 거라고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루어져 가기를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속에 머문 그대이기에 너는 떠나며 마치 날 떠나가듯이 멀리 손을 흔들며 언젠간 추억에 남겨져 갈꺼라고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루어져 가기를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속에 머문 그대여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루어져 가기를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속에 머문 그대여 그리워하면 언젠간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루어져 가기를 힘겨워한 날에 너를 지킬 수 없었던 아름다운 시절속에 머문 그대이기에
이제 당신께는 포근함이 없어요 사랑의 마음도 보고픈 그리움도 다신 보이질 않아요 *이젠 나에게도 따스함이 없어요 사랑의 마음도 보고픈 그리움도 다신 느낄수가 없어요 이제 우리에겐 지나간 세월만이 남아 아무 말도 없이 우리 스치는 바람처럼 사랑의 흔적만이 고독속에 남겨지네 사랑의 흔적만이 허무속에 새겨지네*
비밀은 2011년 부활이 2011년 발표한 프로젝트 싱글 에 수록된 곡이다. 부활의 5대 보컬로 에 참여했던 박완규와 2007년 사랑해서 사랑해서에 이어 두 번째로 함께 한 작품이다. 당시 음원차트에서 높은 인기를 누렸다. 부활은 이 작품에 이어 과거 부활의 보컬들인 정단, 박완규, 이성욱과 , 윤시내와 ...
사랑할수록은 부활이 1993년 11월 발표한 세 번째 앨범 의 수록곡으로 김태원이 만들고 김재기가 보컬을 맡았다. 100만장 이상 판매된 이 앨범은 김태원이 이승철 없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첫 번째 사례로 기억되고 있다. 이후 박완규, 정동하 등 부활의 보컬들 외에 김영호, 예성, 이기찬 등이 커버 했다. 곡의 시작은 케니 로긴스(Kenny Roggins)의 The More We Try란 곡에서 시작되었다.…...
[대중음악 100대 명반]52위 부활 ‘부활 Ⅱ: Remember’
입력: 2008년 02월 28일 17:22:49
ㆍ록밴드의 자의식 충만한 역작
1987년, 록의 열기가 한층 고조되고 있었다. 해외의 헤비메탈 열풍과 때를 같이해 하드록과 헤비메탈이 한국 대중음악의 중심부로 파고들었다. 이전의 그룹사운드 세대와 차별되는 ‘부활’과 ‘시나위’ 그리고 ‘백두산’ 등이 등장해 성공했고, TV 가요 프로그램에 로커들이 수시로 출연할 정도로 기세등등했다. 방송과 공연, 음반이 제 기능을 하고 있었으며, 음악성과 인기가 떼어지지 않았던 시절이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록 밴드들은 대체로 작곡을 주도하는 기타리스트와 개성 있는 보컬리스트가 역할을 분담하는 체제였다. 시나위의 신대철과 임재범, ...
※ 가슴네트워크, 경향신문 공동기획
‘가슴네트워크 선정 한국대중음악 100대 명반’ 18위
(가슴에서는 매주 월요일/목요일, 경향신문에서는 매주 목요일 1~100위 음반리뷰를 순차적으로 올립니다. 총50주 동안 연재할 예정이고, 32명의 필자가 참여합니다.
*별점은 해당 필자의 의견이 아니라 가슴에서 일률적으로 매긴 평점입니다.)
1985년과 86년은 한국 록의 역사에 있어서 르네상스로 기억될 해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전국의 록커들이 한데 모여 그룹사운드 페스티벌을 열었다.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작은하늘, 블랙홀, 블랙신드롬 등이 전면에 나섰고 학교에서는 신윤철, 손무현, 오태호 등의 기타 연주자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또 신중현의 주도로 국내최초의 록 전문 공연장 이태원 록월드가 생겨났다....
1985년과 86년은 한국 록의 역사에서 르네상스로 기억될 해다. 세종문화회관에서 전국의 로커들이 한데 모여 그룹사운드 페스티벌을 열었다. 언더그라운드에서는 작은하늘, 블랙홀, 블랙신드롬 등이 전면에 나섰고 학교에서는 신윤철, 손무현, 오태호 등 기타 연주자들이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또 신중현의 주도로 국내 최초의 록 전문 공연장 이태원 록월드가 생겨났다. 이 시기 가장 주목할 만한 사건이 신대철, 김도균, 김태원 3대 기타리스트의 등장과 시나위, 부활, 백두산의 삼두체제의 태동이다. 시나위, 부활, 백두산은 86년 나란히 데뷔 앨범을 냈고 그중 부활의 ‘Rock Will Never Die’는 30만장이 넘는 판매량을 기록하며 가장 많은 인기를 한몸에 받았다.
이승철의 합류 전 부활은 ‘디...
그들이 돌아왔다는 상투적인 표현으로 리뷰를 시작한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김태원의 기타와 이승철의 보컬이 함께 돌아왔다. 마이클 쉥커(Michael Schenker)마저도 실패했다는 영혼의 종소리를(^^;;) 기타로 표현해냈던 김태원과 챙이 큰 모자를 쓰고 무릎을 꿇은 채 "희야~"를 외치며 뭇 여인네들의 애간장을 녹이던 이승철이 거의 15년 만에 부활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말이다. 나는 이들의 재결합이 샾의 해체보다 120배는 중요하다고 생각을 하지만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은가 보다. 이 둘의 재결합은 그리 큰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했고 언론과 방송은 한국 음악계에서 한 획을 그었던 이들의 재결합 소식 대신 이지혜가 서지영을 3대 때렸는지 7대 때렸는지를 기사화 하기 바빴다.솔직히...